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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09. 2023

다시 찾아온 위기, 연명치료를 중단하자는 말

돌아온 재활병원은 여전했다. 배정받은 병실에서 먹고 자며 짜인 스케줄표 대로 재활 프로그램을 받으면 되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재활을 완전히 쉬었던 일주일 때문이었는지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던 엄마의 장애가 일보 후퇴한 것처럼 느껴졌다. 속상했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엄마를 괴롭히던 호흡곤란 증세가 사라졌으니 집중해서 재활을 받을 일만 남았을 테니까. 그럼 곧 돌아갈 수 있겠지. 답답하고 고되었던 병원 생활 가운데에서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던 지난날처럼.


나 역시 지속적인 수면부족, 잦은 외래 진료, 전원, 수술 등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일어서야 할 때이니까.


수술 후 엄마의 몸은 조금 더 기운이 없고 허약해진 느낌이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삼킴 장애 때문에 식사량이 늘질 않아 체력회복이 더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강도를 낮추어 짜인 스케줄표 대로 다시 재활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재활병원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새벽, 엄마는 다시 119에 실려 큰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처음 뇌출혈이 발생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고요한 새벽, 엄마의 숨소리가 어딘가 이상해 눈이 떠졌다. 엄마를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다. 느낌이 이상했다. 불을 켜고 다시 본 엄마는 눈은 뜨고 있었지만 눈 맞춤이 전혀 안 됐다. 본능적으로 산소포화도부터 측정했더니 찍혀 있는 수치가 34. 그간 호흡곤란을 겪어 왔던 엄마 때문에 산소포화도 측정 기계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수치를 재어왔던 나였지만 이렇게까지 낮은 수치는 처음이었다.




큰 병원 응급실은 고요한 새벽에도 대기자가 많았다. 나는 응급의학과 선생님을 시작으로 신경과와 호흡기내과에 이어 흉부외과 선생님들까지 차례로 만나 오늘 새벽 내가 엄마를 발견했을 당시의 상태부터 시작해 과거 수술이력, 현재 복용 중인 약, 최근 엄마의 컨디션, 식사량, 대소변량 등을 소상히 전달했다. 그 무엇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엄마 옆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지 꼬박 24시간. 엄마는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약물 꾸러미를 잔뜩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명은 상세불명의 뇌전증.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매일 면회시간마다 중환자실을 방문했지만 엄마는 잠을 자듯 자그마한 미동조차 없이 누워만 있었다. 말을 걸고 몸을 닦여 드리고 팔과 다리가 굳지 않도록 몸을 움직여 드려도 엄마는 자그마한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상태 변화 없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주치의는 내게 이제 그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엄마의 우뇌에서는 뇌파가 잡히질 않고 있고 아주 강한 약물을 쓰고 있음에도 좌뇌에선 여전히 경련파가 나오고 있으니 지금 상태에서 의식이 깨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연명치료 중단이라니. 머리가 멍했다.


아빠는 이제 그만 엄마를 보내주자고 했다. 나 역시 머리로는 그러자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우리는 엄마를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엄마의 형제자매, 친한 친구분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드리고 장례식장과 장지도 알아보았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나는 의료진에게 이제 그만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단, 마지막으로 뇌파검사를 한 번만 더 해 볼 것을 조건으로.


그리고 그날 오후, 중환자실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뇌파 검사 결과, 놀라울 만큼 엄마의 뇌파가 좋아졌다고. 이 정도로 호전된 것은 좋은 신호이니 결정을 좀 더 미루고 엄마가 의식이 깨어나길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말이다. 기적이었다.


이후 엄마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인공호흡기도 승압제도 경련파를 잡는 약물도 끊었다. 중환자실에서 재활의학과로 옮겨 본격적인 호흡 재활을 시작하면서 산소줄도 떨어졌다. 인지치료(약물)를 시작하면서 멍해 보이기만 하던 엄마와 눈 맞춤도 다시 가능해졌다. 나와 아빠를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으나 그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편마비가 온 것처럼 오른쪽은 전혀 움직임이 없고 왼쪽만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몸은 지난번 보다 훨씬 더 약해져 있는 듯했지만 어쨌든 엄마는 다시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두 번째 기적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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