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흡과 두통, 수면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지 수차례,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내게 엄마를 돌보기 위해 그렇게 까지 애를 쓰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는 거지’란 생각이 스쳤지만 그렇게 답하지는 못하고 우물쭈물 대며 잘 모르겠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의 질문은 문득문득 뇌리에 떠올라 한동안 사라지지 않곤 했다.
왜일까. 나는 왜 엄마에게 이렇게까지 집중하는 걸까.
어느 가을날 엄마가 갑작스레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뒤, 나는 밤마다 습관처럼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첩을 뒤적였다. 너무도 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또렷이 기억해 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기에 최근 몇 해는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1년에 두세 번 나들이나 여행을 다녀왔으니 제법 사진을 많이 찍어 두었다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크나큰 착각이었다. 여행사진이 많긴 했으나 사진 속 주인공은 대부분 부모님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 조각모음을 해 보면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보다는 마치 주어진 일을 처리하듯, 아이들을 챙기고 함께 갈 식당을 예약하는 등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었기에 특별한 줄도 모르고 모두 지나쳐 버렸다.
모든 것이 다 아쉬웠다.
그때 좀 더 엄마의 사진을 많이 찍어 둘 걸.
아니, 일상의 모습이라도 그냥 사진으로 담아 둘 걸.
이왕이면 동영상도 막 찍어 둘 걸.
전화 통화할 때 자동 녹음 기능을 켜 둘 걸.
그런 바보스러운 후회들이 매일 밤 몰려왔다.
엄마가 쓰러지시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엄마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조차 그토록 귀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한 번쯤 올 지도 모를 그 언젠가가 내게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 한편에 넣어두고 있었음에도 어리석은 나는 그게 바로 지금일 줄은 추호도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찾았다. 나만의 답을.
“다시 그런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라는.
물론 어떻게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부분들이 많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순 없을 까’에 대해.
아쉬운 데로 나는 매일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가끔 동영상도. 멋없는 환자복에다 콧줄에 목관까지 하고 있어 남들에게 내어놓기에 썩 괜찮은 사진들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싶어 그냥 찍는다. 나만 좋으면 되었지. 지금이라도 이렇게 엄마의 모습을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어디란 말인가. 조금 더 활짝 웃어 보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언젠가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오게 된다면 이 버겁고 힘든 시간조차 아주아주 특별하고 소중하겠지 싶어서.
엄마의 쓰러짐, 뇌출혈은 내게 엄마의 삶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명확히 인지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지금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고도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괴롭고 버거운 순간들을 앞으로는 조금 달리 바라 보기로 결심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모르니까. 버겁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론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들로.
그것은 어쩌면 엄마의 생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얼마간이 될지 모를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에 대한 나만의 예의. 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