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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20. 2023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냐

엄마의 간병을 위해 병원 생활을 하던 중 두 번째로 찾아온 뇌질환, 뇌전증 때문에 조금씩 회복되어 가던 엄마를 다시 중환자실로 들여보내 놓았을 때 그러고 얼마 뒤 의료진과 연명치료 중단 이야기까지 논했을 때, 나는 정말 조금의 에너지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를 보러 중환자실에 들르는 것 말고는 하루 종일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나의 엄마가 곧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엄마의 상태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빠져버리면서 그 무엇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기력감.

지난날을 곱씹으며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한 후회와 그로 인한 죄책감까지.


엄마에게 두 번째 기적이 찾아와 아주 조금씩 희망이 생겨가고 있었지만 내 상태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이따금 과호흡이 생기고 가슴이 저릿저릿했는데 이게 밤이 되면 심해져 도무지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심각한 수면부족 때문에 두통까지 겹쳐졌다. 몸이 이러니 계속 엄마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간병인을 쓰기로 하고 쉬어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내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부정적 감정을 끌어안은 체 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을 쳐 두고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남편은 그런 내게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권했고 나는 그렇게 남편의 권유로 병원을 방문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장기간 지속된 스트레스로 뇌와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그 의사 선생님은 내게 뇌파치료와 약물 치료를 권했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을 일단 충실히 따라 보기로 했다. 엄마를 돌보려면 내 상태부터 고쳐 놓아야 하니까.




엄마의 병원 전원 이슈 때문에 나의 치료는 약 한 달 정도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지만 임의로 먹던 약도 끊어 버렸다. 처음엔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까 봐 불안했지만 충분히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그저 부모님과 오래 살았던 예전 주택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 아빠와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단 둘이 외식을 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었다. 엄마가 쓰러지시면서 함께 멈춰버린 나의 달리기도 다시 시작했다. 먼지만 가득 쌓여 있던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젖히고 건반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내가 편함을 느끼는 것.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며 충분히 에너지를 충전 한 다음 매일 같은 시간 엄마에게 가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엄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재롱을 떨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던 어린 시절의 내게 된 듯이. 하루 종일 병원에만 있는 엄마가 웃을 일이 무에 있을까 싶어 나는 애써 과하게 유쾌함과 웃음을 전하려 애썼다.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엄마의 손과 발을 깨끗이 씻겨 드리고 좋은 향이 나는 로션까지 발라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늘 시간에 쫓기는 의료진에게 전적으로 내 시간을 맞출 수가 없기에 주치의와는 주로 전화통화로 소통하곤 했지만 서로 여유가 되는 시간에 통화하는 것이었으므로 충분히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간병인을 쓰기 시작하면서 온종일 병원에서 엄마와 함께 머물던 시간에 비해 늘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래서 항상 엄마에게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스스로를 너무 내몰지 않기로 한다. 간병인을 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돌볼 필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울대학교병원 종양내과 교수이자 작가이기도 한 김범석 교수는 그의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오랜 기간 하려면 스스로를 돌보기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지치기가 쉽고, 그러고 나면 그 누구도 돌볼 수 없어진다. 그건 그 딸의 아버지인 환자도 원하지 않을 일이었다”라고.


정말 그렇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이기적이라며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오히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보하자라면 더욱더. 우리는 지키고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고 그들보다 먼저 지쳐서는 안 되니까. 장거리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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