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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22. 2023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엄마의 뇌출혈, 그 후 엄마에게 남겨진 여러 가지 장애. 추측하건대 그로 인해 엄마가 가장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화장실 문제였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기저귀를 갈 때마다 두 손으로 기저귀를 꼭 쥐고는 놓지 않곤 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를 돌보며 내가 가장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화장실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의사소통.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문제였다.  


첫 번째 뇌출혈 이후, 재활병원에서 생활할 당시 엄마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귀가 안 좋은 아빠는 엄마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가끔 재활이 힘들 때면 “이걸 또 해야 하냐”라고, 본인의 상태에 가슴이 답답할 때면 “이렇게 살아 뭐 하냐”라고, 내가 안쓰러워 보일 때면 “관리하는 사람(간병인)을 써”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럴 때 보면 너무도 정상적인데, 또 꼭 그렇지 만도 않아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치면 이내 이상한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게다가 엄마는 나를 종종 사촌언니로 착각하곤 해선 "너네 엄마가..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주로 하며 외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는 외숙모가 잘하는 반찬 이야기부터 해서 길게는 함께 동생들 결혼 준비를 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아주 가끔은 나를 알아봐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내게 항상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의 뇌리 속에 당신 딸은 결코 여기에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듯했다.


답답하게도 이제 와서야 나는 엄마의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같은 것들이. 여러 번 엄마의 답을 들으려 질문을 던지곤 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그럴싸한 엄마의 답변은 그 무엇도 들을 수 없었다. 속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무관심하기만 했던 내가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찾아온 장기간의 뇌전증 이후, 엄마는 생존을 위해 목관을 하며 목소리를 잃었다. 이후 무슨 질문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도리도리를 하는 등으로만 의사표현을 할 뿐 이제는 어떠한 말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그리워했던 내가 이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으나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던 그때를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를 완전히 잃을 뻔하고야 알았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지금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현재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며 사는 삶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그래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두기로 했다. 여전히 엄마의 지난날이 엄마의 마음이 궁금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엄마의 손을 잡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그럴 수 있는 오늘을 지금 이 시간을 감사히 여기기로 말이다. 꼭 언어가 아니어도 괜찮다. 도리도리와 끄덕끄덕이면 충분하다. 속속들이 엄마의 사정을 몰라도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함께 있다. 그리고 엄마는 눈빛으로 고갯짓으로 내게 말을 걸고 내 질문에 답을 한다.


그래.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것보다 더한 축복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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