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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희엄마 Jul 14. 2022

난 충분히 마음에 들어 – 방학숙제를 대하는 자세

3학년 때의 일이다. 방학식을 마치고 오면 하루 이틀 푹 쉬다 아이에게 방학숙제에 대한 계획을 잠시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연습장에 달력 모양 표시를 해주고 하루 동안 할 분량들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적어주는 것이다. 필수과제 계획을 달력에 표시하고, 선택과제 중 원하는 과제를 정해 스스로 정한 일정대로 적어주면 나의 할 일은 끝난다. 이제 그 일정표를 보며 방학숙제를 해 나간다. 물론 하기로 한 날 제때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쉬고 노는 것에 밀려 버린 거다. 그럼 다음날 몰아서 하기도 하고, 결국은 어떻게든 끝낸다.


1학년이 되고 첫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큰 스케치북을 꺼내어 방학식을 마치고 온 아이와 테이블에 앉아 방학숙제 계획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여름방학, 겨울방학 한 번씩 도움을 준 뒤 그 뒤부터는 표를 그리는 일도 자신이 할 방학숙제 과제를 고르고 선택하는 일도 다 아이 몫이다.     



한 번은 내 방에서 밀린 일들에 집중해 있는데, 아이가 숙제했다며 자신 있게 들고 와 자랑을 한다. 만들어온 것은 미니북 레시피. 처음엔 반갑게 받아 들었지만 그 작은 미니북을 훑어보니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고 아주 작은 미니북에 깨알 같은 글씨와 그 안에 그림까지 있다. 레시피북이란다. 이 작은 책 모양에 글씨랑 그림까지 그리다니 대단했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방학숙제로 내겠단 말에 나도 모르게 나의 속마음이 나와 버렸다. “이렇게 작은걸 방학숙제로 내게? 너무 작지 않아?” 그랬더니 아이가 이런다. “왜? 난 좋은데! 난 마음에 들어”그 말에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 좋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만족감과 뿌듯함을 온몸과 표정으로 나타내는데! 과제로 제출한 걸 받아 들고 황당해하실 수 있는 선생님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모두 끝나 겨울방학식을 마치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1년 동안 썼던 온갖 물품들을 다 챙겨 오느라 짐이 한 가득이다. 거기서 시크하게 꺼낸 것. 상장이었다. 유치원, 1학년 이후로 아이가 상장을 받아온 건 드문 일이라 깜짝 놀라서 상을 찬찬히 보니, 창의력 최우수상이었다. 일단 아이에게 상장 받은 거 축하해. 라는 말을 신나게 해 주었다. 처음엔 아이도 어안이 벙벙했지만, 상장 받은걸 두고두고 기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엄마 덕에 큰 자랑거리와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거실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쉽게 받을 수 없는 상이다. 이야~ 창의력 상을 받다니 하며 호들갑을 떨며 오래도록 기뻐해 줬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창의력 상을 주신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이렇다 할 성과를 3학년 내내 크게 낸 것은 없었다. 혹시 그것 때문일까? 만들기를 유달리 좋아하던 아이는 1학년 때부터 학교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주신 재료로 신나게 수업한 후 선생님께 수업 재료가 많이 남으면 말씀드려 그 재료들을 몽땅 받아오곤 했었다. 받아온 재료로 집에서 다시 한 번 만들어 놀고 그 재료가 마음에 들면 나에게 필요한 재료들을 사 달라고 요청하곤 했었다. 그렇게 만들기를 하나하나 해나가던 중 3학년 무렵엔 우리가 아는 근루건 심을 녹여 조형물을 만드는데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근루건 심을 녹여 백조도 만들고 장미모양 핀도 만들었다. 한동안 집에는 근루건 심 타는 냄새가 가득하기도 했다.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을까? 아이 몸에 해롭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저렇게 몰입하고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만하라는 말은 못 했다. 진심으로 행복해했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핀이나 작은 조형물들을 선물하러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아이가 1년 동안 만든 작품들을 보신 모양이다. 가져온 걸 보고 신기해서 놀라시고 그걸 3학년 아이가 만들었다니 또 한 번 놀라신 모양이다. 스쳐 지나가 버릴 수 있는 관심을 아이에게 쏟아주시고 좋게 봐주신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 계기로 아이가 큰 자신감을 얻었으니.     



1학년 방학이 끝나 방학과제 상장을 받은 한 친구는 그 친구의 엄마가 며칠 밤을 새워서 모든 과제를 빠짐없이 해줬다는 이야길 엄마들을 통해 들었다. 그 과제가 과연 아이의 과제인가. 엄마의 과제인가. 분명 아이의 과제이다. 아이가 과제를 잘 해낼 수 있도록 옆에서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아이가 원하는 선에서 아이가 할 수 있다고 하면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믿고 경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할 수 있음을 기다리고 믿어줘야 한다. 처음엔 물론 서툴고 엉망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하다 보면 점점 더 나은 숙제를 해내고 잘 해낼 것이다. 그러면서 더 큰 과제가 와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개입해 도와주면 당장의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섣부른 내 행동으로 아이가 느낄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생각하면 좋겠다. 엄마 눈에 아이가 해온 것들이 부족해 보여도 스스로 해서 뿌듯하다면 충만해진 아이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스스로 해내는 걸 지켜보는 건 때로 힘들다. 내 손을 뻗고 후다닥 돕는 게 더 편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 지켜보는 나에게도 힘이 생기고 묵묵히 지켜봐 준다면 아이에겐 더없이 큰 힘이 된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립을 키우는 근본이 된다.    


 

초등기간 동안 한 학년이 마무리되는 종업식날 늘 하던 것이 있다. 미리 준비한 손편지를 아이 손에 들려보내 한 해 동안 수고해주신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전하는 일이었다.



아래는 답장으로 3학년 담임선생님께 받은 문자내용이었다.      


어머니. 편지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그냥 흘러서 많이 울었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순수한 oo이와 이야기하면서 힐링 많이 되었습니다.

oo이는 항상 맡은 일 스스로 잘하고 정직해서 볼 때마다 대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4학년 생활은 당연히 잘할 거고 정말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항상 행복한 일만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아이의 관심사와 재능에 직접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비춰주신 첫 선생님이셨다. 이때부터 난 확실히 느꼈다. 우리 아이가 참 인복이 많은 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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