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부터 다채로운 센스와 능력을 요구한다. 각종 수행평가들로 아이들에게 공부 외에도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 협업력, 발표력, 리더십 등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이 과제들을 성심을 다해 노력하고 도전하여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을 테다. 누군가는 내일 아니라는 식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기도 할 테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매주 월요일 아침 ‘한주 열기’라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자유롭게 자신이 정한 주제로 pvt를 만들고 전교생 앞에서 작은 도서관에 모여 발표를 한다. 이 프로그램이 참 매력적이다 생각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정성껏 준비한 화면을 띄우고 소개하는 모습. 긴장되고 무척이나 떨리겠지만 끝난 후의 뿌듯함 성취감 말해 무엇 할까. 예전엔 그렇게나 번거롭던 작업들이 미리캔버스, 캔바 같은 정해진 플랫폼에 들어가 필요한 글과 요소 이미지만 넣으면 뚝딱 하나의 ppt가 완성되는 좋은 세상이다. 이 ppt 만들기에 꽤 시간과 정성을 쏟게 된다.
초등 때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 만들기를 하고 그리기를 하고 좋아하는 달리기 보드 타기에 시간을 쓴 아이이다. 흔한 방과 후 수업도 시간표가 나올 때마다 보여주며 의견만 물어볼 뿐 강요하진 않았다. 워낙 개인적인 시간을 쓰며 할 거리들이 넘쳤던 아이라 시간 때우기 요량으로 방과 후를 돌릴 필요는 없었다. 유일하게 한 방과 후는 컴퓨터와 클레이 수업이었다. 신기했던 건 스스로 선택했고 2-3년 꾸준히 빠지지 않고 갔었다. 그때 배운 컴퓨터 실력이 고학년이 되어 수행평가에서 발휘되었다. 가끔 나오는 수행평가 과제를 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초등 때 조별과제로 속상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행평가는 분명 한조에 3-4명의 아이들이 함께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기획한다. 서로 맡은 바 역할을 나눈 뒤 함께 준비하여 발표하는 건데 아이들 중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는 우리 딸뿐이었다. 과제를 잘해 내고 싶은 마음에 거의 혼자 준비하고 혼자 ppt를 만들어 수행평가 발표를 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함께 하는 협업력을 키우기 위해 수행평가를 시행하는 것 아닌가? 학원 스케줄 때문에 바쁘다고 빠지고 내일 아니라는 마음으로 빠진다면 이 수행평가를 하는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학교에서 과제만 아이들에게 던져주어선 안 된다. 아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불편사항에 귀 기울여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잠깐의 도움으로도 아이들은 슬기롭게 배우고 헤쳐 나갈 거라 믿는다. 6학년 때 어찌 됐든 몇 번 ppt 수행평가를 경험한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더 잦아진 ppt 만들기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학교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 아이는 의연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점수와 실력향상을 위해 수고스러움을 자처하고 있다. 모듬활동에서 모든 아이가 나 몰라라 손 놓고 있지만은 않지만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라는 ‘대충’이 잘 안 되는 아이는 똑같은 양과 질의 균등한 참여가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다. 만일 같은 모둠에 불편해진 관계의 친구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내 점수를 놓칠 수 없다는 기준을 세우고 주어진 상황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한만큼 아이의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할 것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불공평해 보이는 수행평가 조별과제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나의 일로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실력을 묵묵히 올려가며 제일 공정해지는 실력향상의 결과를 이미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내 실력이라는 진리를 말이다.
또 하나의 방과 후 수업은 클레이 수업이었다. 처음엔 친한 친구가 클레이 수업을 한다고 웬일로 따라 신청했다. 여간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이 없는 아인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바로 신청해주었다. 2학년 때 시작한 클레이 수업을 5학년 1학기까지 꾸준히 3년 반을 했다. 매번 같을 것 같은 클레이 수업에 아이는 질리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5학년인데도 클레이 수업을 듣는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었다. 조물조물 만지며 만드는 클레이가 아이에겐 휴식이고 쉼이었나 보다. 뭔가를 그리고 만들면 마음이 참 편안해지고 좋아진다고 했다. 타고난 곰손인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진듯한 딸이 참으로 신기하고 부러울 때가 많다.
자신이 선택해 시작하고 선택한 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걸 아는 순간이 온다. 다른 누가 뭐라 해도 아이들은 이제 그것을 최선을 다해 즐길 수 있게 된다. 역량은 억지로 길러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 거기에 쓰는 에너지는 식은 죽 먹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