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개팅녀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딸은 엄마를 닮아~”라는 말이 예외도 있었다. 사교적이고 대인배 이시면서도 항상 긍정적인 장모님과는 달리 와이프는 엄청 불같은 성격에 너무 단호하고 칼 같은 성격은 어쩌면 장인어른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신혼과 육아기 때는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싸웠고 그렇게 빈번한 싸움에 한때는 나중에 애들이 다 커서 출가하면 졸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우리가 잘 맞는 것도 있었다. 가장 잘 맞는 순간은 여행에서 빛이 난다. 엄청 빠르고 퀵하게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내릴 때도 서로 눈빛만 오가도 서로 무엇을 먼저 챙기고 들쳐업을지 그렇게 입국 수속을 빨리 해치울 때면 최고의 콤비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어려서부터 절약이 몸에 배어 자라다 보니 늘 아끼고 저축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데 그런 나보다도 더 짠순이다. 하지만 필요한 게 있는데 좋은 걸 하나 크게 지르는 건 나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와이프 덕분에 유니클로 스파오와 같은 옷들만 입던 내게 오래 두고 입어도 좋은 옷들이 쌓여가고 있다.
소개팅 이후 연애를 할 때에도 와이프의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이 없는 그런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서로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칭찬해 주면 좋으련만 장모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렇게 해주시는데 와이프는 그런 모습이 1도 없다. 이런 모습에 불만을 토로하면 와이프도 똑같이 나도 원하는 모습을 오빠도 해주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렇게 되는 무한 루프의 싸움이 10여 년이 넘게 지속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은 여느 부부처럼 서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자녀에 의해 결속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10여 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와이프에게 기대고 살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따지고 물어보고 하는 걸 잘 못하는 나를 대신해 많은 부분의 민원을 해결해 준다. 2년 전 엄마가 아팠을 때에도 어쩔 줄 몰라 하면 발만 동동 구를 때 서울 상급병원 예약하고 조율하고를 와이프가 다 해줬다. 부모님이 오신다고 살뜰히 밥 차려드리고 챙기고는 못해도 그래도 든든한 큰며느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연애하면서 4계절을 다 겪지 못하고 결혼해서 졸혼을 꿈꾸며 후회를 했지만 이제는 와이프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다.
20일간의 발열과 두통 근육통 오한이 호전되다 안 좋아지다를 반복해왔는데 말라리아일 줄 알았던 병명을 찾아 멀리 파주의료원까지 와서는 폐렴 판정을 받고 입원을 했다. 와이프도 똑같이 이야기한다. “오빠 없음 나도 힘들어~ 아프지 마”
아버지의 40대 무렵의 인생 사이클에서 나도 비슷한 상황에 살고 있다. 회사에선 치이고 바쁘고, 집에선 애들 보고, 또 더 나은 삶을 위한 자기개발을 하고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 바쁜 삶에서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나를 잘 돌보는 건 날 위한 것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집에서 한참 먼 파주까지 와서 보호자 없이 홀로 입원한 병원에서 웃픈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한마디를 해주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비록 폐렴으로 왔지만 입원해 있는 동안만은 푹 쉬렴.”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잘 먹고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