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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30. 2020

감정 줄다리기 : 운동과 코로나 사이 (하)

슬기롭게 운동하기 : 코로나 시대에 현명한 정신 건강 관리 방법 (하)

각기 다른 희망의 끈을 갖고 운동에 임하던 그들, 코로나로 그들만의 루틴에 위협을 받고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코로나를 받아들이며 그들의 정신 건강을 영위할까?


*이 글은 (상) 편에 이어 연재되는 글입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 (상) 편을 먼저 읽어 주세요.

눌러주시고 읽어 주시는 당신의 정성에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감정 줄다리기 : 운동과 코로나 사이 (상) 편 : https://brunch.co.kr/@thinkontrainer/26


O

 "선생님, 시간이 되시면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O는 3년간 함께 한, 큰 아들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그리고 그녀의 건강을 그녀만큼 걱정하는 담당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메신저를 보내 도움을 구했다.

 "저도 저지만 선생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그녀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받아들여야 할 것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구별 해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 같은 트레이너는 그녀의 친절함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회원님께 운동은 운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간 트레이닝이 어떤 부분에 있어 회원님께 도움이 되셨나요?"

 "비싼 금액을 지불했음에 대한 책임감이랄까요?"

O는 다른 사람이 했으면 거북했을 법한 농담도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혹스러워하는 트레이너의 눈동자를 읽으며 가벼운 미소로 그 당혹함에 반응하며 말했다.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 우선 가장 큰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은퇴하며 저는 주로 '누구 엄마'로 불리며 살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O 회원님'이라며 제 이름 석 자를 온전히 불러주셨습니다. 역할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와 내 몸을 위한 시간, 그것이 가장 의미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근육과 심장이 요동치는 만큼 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것도 좋고요."

 트레이너는 그녀의 말에 본인의 묵직한 사명감을 다시금 상기하며 진솔한 O의 말에 감사함을 표현하며 극복할 방법을 모색 후 연락드리기로 했다.

  그날 밤, 트레이너는 회원님의 파일을 갖고 집으로 와 책상 앞에 앉았다. '참 많이 좋아지셨네. 체력적으로도..'라고 생각하며 그간 기록들을 훑어보며 트레이너는 낮에 했던 O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해결책을 고민했다.

 그녀에게 운동은 기분전환에 있어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몸이 건강해질수록 자존감이 상승하며 기분전환의 선순환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실제로 운동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중재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양한 연구에서 불안과 관련된 민감도나 심각도가 운동을 통해 완화됨을 증명하였다. 이때 운동은 심박수를 올리는 유산소성 운동이 주였으며 연구에 따라 저항운동 역시 불안에 대한 민감도를 완화시켜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일시적이나마 미약하게 우울증을 완화시켜준다는 연구도 있다. 그녀에게 운동은 일차적으로 불안 중재 수단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운동을 매개체로 한 '트레이닝' 자체의 역할의 부재라는 것이다. 트레이닝을 통해 트레이너와 O는 사회적 측면에 있어 자존감을 향상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공간이 없어지거나, 트레이너 없이 운동을 한다면 이러한 이점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발생한다.

 '꼭 운동을 통해 이런 효과를 누려야 할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 후 해결 방법에 대해 트레이너는 O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O 회원님,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정리해보았습니다.

참고하여 이번 주 주말까지 기반을 잡고 그다음 주까지 준비하여 일상을 수정해주세요.


1. 앞으로 홈트를 기반으로 퍼스널 트레이닝에 임해주세요.

    피티 스튜디오가 오픈하면 일주일에 한 번, 운동 능력을 점검받고 프로그램을 확인받으러 옵니다. 출가한 아드님 방이 비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방을 홈트 공간으로 바꾸어 주세요. 필요한 운동 소도구와 프로그램은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집에서 하지만 절대 만만치 않으실 거예요 :)


2. 지난번 서양미술사를 재미있게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비대면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 관련 비대면 콘텐츠를 다음 달부터 진행하더라고요. 링크 보내드릴 테니 함께 공부했던 분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3.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막중한 사명감을 띠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회원님이 갖고 계신 재능을 베풀어 보면 어떠실까요? 번거롭지만 분명 회원님께 도움이 되실 겁니다.


늘 진심으로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스레 권유해드린 부분을 살펴 주시고 다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오길 바랍니다. 평안한 저녁 보내세요.



 트레이너의 정성스러운 연락에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O는 잠을 청했다. 오래간만에 아무 꿈도 꾸지 않는 구름 같은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 되어 O는 애틋한 그 공간에 운동기구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실내 사이클을 필두로 매트와 작은 아령, 밴드 등을 구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들은 심박수가 트래킹 되고 핸드폰과도 연동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O에게 선물했다.

 특정 요일과 시간을 고정해서 운동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차고 트레이너가 설정한 목표 심박수 구간까지 피치를 올려 열심히 사이클을 탄 다음, 여러 근력운동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하는 '서킷 트레이닝' 방식으로 트레이너가 만들어준 운동 프로그램을 5세트 반복했다. 장소가 바뀌어 어색해서 그렇지, 그간 해온 운동이라 동작 자체는 익숙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렇게 시원한 줄 몰랐다.

 비대면으로 인해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은 운동 대신 다른 것들로 대체되었다. 트레이너가 이야기해준 미술사 강의를 스터디했던 지인 2명과 함께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회적 유대를 이어가게 되니 공원에서도 지인들과 종종 만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며 미술사 이야기를 필두로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코로나 얘기 등 한바탕 이야기 꽃을 피우고 돌아오기도 한다.

 코로나 초기, 순간 요동치던 불안의 파도는 이내 잠잠해졌다. 이런 O라면 앞으로도 마음의 심해를 그녀 스스로 잘 조절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녀의 마음 안에 생기기 시작했다.



B

 코로나로 인해 에어로빅 클래스가 폐강이 되고 땀으로 맺어진 동료들과 열기를 나누지 못 한지 어언 3개월이 지나고 있다. 순탄할 것만 같던 삶의 틴이 코로나, 운동, 식사 순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외출할 일이 적어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낮잠을 자다가 식사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고, 지금이 몇 시 인지 시간 개념 없이 하루를 지내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식후 챙겨 먹어야 할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불규칙하게 챙겨 먹는 날이 빈번했고 그만큼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다시 늘어나는 뱃살을 바라보며 '코로나가 지나가면 영광의 순간을 되찾으리라' 다짐하곤 하지만 그때가 과연 언제일지, 그리고 올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늘어져만 가는 B를 보며 가족들은 걱정했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 주변에서 많은 시간과 마음 모두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을 함께 체감한 그들이었기에 B의 좋지 않은 생활 패턴은 온 가족의 고민거리였다. 나이가 들며 아버지와 더욱 애틋해진  B의 딸은 방법을 강구하다 회사 동료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과체중이었던 그녀의 친구 역시 헬스장에 가지 못 하면서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 SNS에서 홍보하는 유료 운동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는데 나름 체계적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강의 수요가 늘며 다양한 강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자마자  B의 딸은 해당 교육 플랫폼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창에 다음 검색어를 검색해보았다.

'에어로빅'

 다행히도 에어로빅과 관련된 여러 콘텐츠가 있었다. 에어로빅 국가대표의 클래스부터 칼로리 폭파 클래스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콘텐츠에 그녀는 새삼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 망망대해 같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중 그녀의 눈에 띄는 클래스가 있었다.

'5060 실버 에어로빅'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목욕탕에 들어가다 깨달음을 얻고 알몸으로 밖으로 뛰쳐나간 아르키메데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20년 차 베테랑 에어로빅 강사 선생님은 에어로빅 강사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젊은 또래가 보기에는 약간 레트로 해 보였지만 부모님 연배에게는 친근한 이미지였다. 걸걸한 목소리로 당당한 자기 PR 영상에서 확신을 얻고 샘플 수업 영상을 보며 그 확신에 쐐기를 박았다.

 커리큘럼도 다양하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기간도 넉넉했다. 월별로 계산해보면 오프라인 클래스보다 저렴했다. 게다가 밴드와 같은 운동 소도구와 층간소음 방지 매트 등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추가 구성 물품도 함께 판매하여 B만 잘 이용한다면 본전 이상의 수확을 걷을 수 있을 것이라 B의 딸은 생각했다. 몸은 따라주지 않지만 혁신과 융합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아버지에게 이 정도 시도는 충분히 정복할만한 과제일 것이다.

 5060 에어로빅 콘텐츠와 층간 소음 방지 매트를 함께 구매한 B의 딸은 그날 퇴근 후 그날 저녁, 역시나 늘어져 있는 B와 결렬 없는 협상을 진행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의 '기(機)'자는 '기회(機會)'의 '기(機)'자와 같기에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는 그녀의 발언에 B는 저항 없이 똑똑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저녁에 누워 아내와 누운 침대 위에서는 '딸 하나 잘 키웠다'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오전이 되어 B는 지난 저녁에 그의 딸이 알려준 대로 핸드폰을 티브이에 연동하고 5060 에어로빅 영상을 재생해보았다. 전문가 냄새를 물씬 풍기는 40대 정도 돼 보이는 강사가 인사하며 뒤에는 또래로 보이는 2명의 남, 녀가 그녀를 보조한다. 아내에게 3달 동안 바가지 긁히며 구매했던 98인치 티브이 화면은 마치 강사와 온라인 동료들이 눈 앞에 실재하는 것 마냥 생생하게 보였다. 할부가 남아 있는 골칫덩이가 드디어 제 구실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B는 내심 흐뭇해했다.

 첫 강의는 에어로빅에 필요한 기초 스텝 연습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B에게 식은 죽 먹기와 다름없는 동작들이었다. 기본을 다진다는 기분으로 첫째 날은 무리 없이 지나갔다. 아는 동작이라도 신나는 노래와 함께 이렇게 움직이니 틀어진 일상 패턴이 제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둘째 날이 되어 층간 소음 매트가 도착하고 B는 본격적으로 5060 에어로빅 클래스에 참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차고 어려운 동작들이 나와한 강의를 틀리지 않고 따라 하려면 일주일은 연습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날은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머리도 몇 올 남지 않은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가 러닝 셔츠만 입고 어그적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면 웃기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는 그에게 쥐어진 건강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S

 불안할수록 그녀는 일기를 쓰며 현재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쓰고 난 다음 그 내용을 보면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워 보였다. 과연 관성의 굴레를 외력 없이 깨부술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도무지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워 그녀는 소속되어 있는 고등학교의 육상 코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서도 잘하는 S였기 때문에 그녀의 도움 요청에 코치도 적잖이 당황했다. S가 이렇게 감정이 흐트러져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치는 운동 퍼포먼스를 증진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왔던 터라 이러한 부분에 공감은 하지만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해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고민하던 코치는 석사 시절 연을 맺었던 동기에게 연락했다. 코치로써 커리어를 쌓는 동안 그의 동기는 박사까지 마치고 대학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스포츠 심리학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메일 한 통에 그의 동기는 흔쾌히 그 부탁을 수락하며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S와의 약속을 잡고 그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온라인 미팅을 통해 S의 히스토리를 들은 그녀는 이야기를 듣고 철저히 계획적이던 S가 그토록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몇 가지 찾았다. 우선 S는 육상 선수이다. 보통 육상 경기는 개인 스포츠로 기록을 갖고 타인과 경쟁하는 형태의 스포츠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개인 스포츠가 팀 스포츠보다 두배 가량 높은 불안과 우울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개인 스포츠는 팀 스포츠보다 목적 지향적인데, '대학 진학'과 '입상'이라는 목적이 확고한 S에게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다른 스포츠 선수보다 크게 흔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S는 운동을 통해 불안을 중재하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은 보통 불안을 중재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S와 같이 경쟁적인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 같은 경우, 비경쟁적인 스포츠나 팀 스포츠 선수보다 상대적으로 운동의 순기능을 경험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런 특성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S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를 먼저 떠올리며 '실패'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 실패에 대한 공포가 더욱 S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직 10대인 그녀에겐 그것들을 중재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아직 부족했고 이는 또 다른 펜데믹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상담을 진행하다 이따금 모니터 너머 S의 코 끝이 빨개지는 것을 봤지만 S는 제법 씩씩했다. 그녀는 S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며 공감해주었다. 분석은 혼자서 철저히 하면서 말이다. S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불안을 중재하기 위해 조심스레 인터뷰를 시작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결과는 S가 잘 못 했기 때문이 아님을 짚어주고 조절할 수 없는 운과 환경적인 부분으로 인해 S가 현재 상황을 처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대회를 참여 못 하고 체육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S를 비롯한 모든 운동선수에게 마찬가지라는 것도 잊지 않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S에게 준비해온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해주었다.

"이 기록들 보이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최근 육상에서 여러 세부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이 나왔단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위기의 순간이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선수들에겐 그만큼 충분히 체력을 끌어올리고 기존 부상 부위 등을 관리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생겼다는 거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S가 원래 하던 루틴들을 해낼 순 없지만 체력을 끌어올리고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S가 원한다면 주변에 유능한 컨디셔닝 코치를 소개해 줄게. 뿐만 아니라 경기력은 단순히 운동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S도 잘 알 거야. 영양과 수면 습관 등을 최적화해서 코치 선생님과 함께 주기화를 다시 한번 세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기록'과 '대학 진학'과 S의 인생은 생각보다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어. S의 인생은 그런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닐 거야. 그런 것과 별개로 S는 소중한 존재고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어. 뒤섞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지나갈 거야. 항상 바뀌는 구름처럼 말이야."

 화상 상담이 끝나갈 무렵 S의 눈에는 다시 반짝이는 별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S는 일기장에 오늘을 기록했다.

'2020년 X월 XX일, 몸은 멀지만 마음은 가까웠던 날.'



H

 운동은 사회적 유대감을 증진시키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수단이다. 규칙이 있고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몸을 사용하며 상대방과 교류하며 운동 자체에 몰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이러한 운동의 순기능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있어 체육 시설은 운영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유대감을 기르기 위해 운동하던 H와 동료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나 H는 낙담이 컸다. 동료들과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순간만큼은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한바탕 뛰고 나면 피로가 쌓여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아침은 개운했으며 업무에도 자신감이 생기는 선순환을 경험했다. 이젠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일수가 줄어들며 근무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H는 방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 눈에 띈 게시글을 클릭한다.

'최악의 저녁을 예방하는 방법'

핸드폰은 어찌 내 상태를 알고 이런 게시물을 내게 노출시키는가 의아해하면서 게시물을 클릭해 내용을 확인한다.

'밤늦게 자지 않고 술 마신 상태로 생각의 늪에 빠지지 마세요.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몸을 쓰고 집에 돌아와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고단한 하루를 얼른 마감합니다.'

 술은 잘 먹지 않은 H는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불행하게도 이 생각은 새벽녘에 시작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은 H를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술만 빼면 완벽하게 최악의 저녁을 경험하고 있는 H였다. 퀭한 눈으로 그가 출근하면 동료들은 이내 한숨도 못 잔 H를 캐치하며 안쓰러워했다.

 이대로 둘 순 없다는 생각에 풋살 멤버들은 점심시간에 잠시 믹스 커피와 함께 모여 앞으로 H를 위해 풋살 동호회를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했다. 평상시 제품을 생산하는 그들이었지만 오늘은 소중한 생명을 위해 기계가 아닌 생각을 붙잡고 아이디어를 모색했다. 밖에서 보면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깟 동호회 쉬면 좀 어때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사뭇 진지했다. 불의의 사고로 A는 떠났지만 H는 아직 그들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틀 연속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나온 방안은 다음과 같았다.


1. 풋살 동호회 운영은 유지한다.

    단, 모이는 빈도를 격주로 줄이고, 운동하는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이용 가능한 사설 업체를 이용한다.

2. 모이지 않는 주에는 풋살에 필요한 개인 훈련을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다.

    예를 들어, 볼 컨트롤에 필요한 리프팅 훈련을 혼자 진행하며 촬영한 뒤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다.

    매주 빠지지 않고 훈련 영상을 올린 회원은 회비를 할인해준다.

3. 살을 빼고 싶은 사람들만 따로 모여 H와 일과 후 러닝 혹은 캐치볼을 한다.

    야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며 주 1회 정도는 H와 함께 러닝하고 거리를 두고 할 수 있는 놀이인 캐치볼을 실시한다.



 이렇게 코로나 기간 동안 필요한 임시 회칙을 만들어 안건을 올렸고 과반수 이상이 동의하며, 그다음 주부터 적용되었다. 자신을 위해 고민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 H는 누구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했다. 동료들과 함께 달리기도 했으며 빈도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모여 풋살을 한다. 혼자 있는 날에는 리프팅 영상을 촬영하며 단체 채팅방에 업로드하며 동료들과 개수 내기를 하여 커피 내기를 하기도 했다.

 H는 동료들 덕분에 구렁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사고가 난 현장에 가면 여전히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며 업무에 임한다. 일과 후에는 풋살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설프지만 코드 하나, 하나 배워서 노래를 한 곡 완성시키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배우고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이 기타를 배워 본인들이 연주한 영상을 올리곤 한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엔 업로드 양이 약 20%가량 증가한 것 같다. '언젠간 나도 멋지게 연주해서 영상을 업로드해야지.'라고 생각하며 H는 그의 삶에서 균형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몸은 마음은 움직임으로 연결되어 있다. 몸은 운동을 통해 건강해질 수 있고 몸이 건강해지며 마음 역시 건강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로나가 이런 운동의 순기능을 방해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얹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팬데믹으로 인해 바뀌어 버린 나의 상황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면 지금보다 나아진 상태로 개선 가능한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주변을 한 번씩 더 돌아보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 도움을 건네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 기분 전환이 되며 마음이 한결 건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S와 상담을 해준 스포츠 심리학 박사의 대화 피드백 중 일부는 다음 기사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929/103185951/1


**이 글은 ACSM(Americal College of Sports Medicine)에 게재된 Exercise-related Mental Health Problems and Solutions during the COVID-19 Pandemic이라는 논문을 참고하여 각색한 글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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