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가
1:1 가도 가도 가없는 가시밭길.
가리산 지리산 헤매었네.
가도 가도 가파른 고갯길
가쁘게 숨 쉬며 올라갔네.
가슴 가랑가랑 떠돌던 꿈은
가년스럽게 가라앉고,
가냘픈 가릿대만 드러내며
가로 누웠네.
1:2 나부끼던 깃발은 찢기어
나부랑이 되고,
나달거리던 나팔은 오그라져
나동그라졌었네.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네.
나부대었노라고.
나를 납작하게 나무랐네.
나팔거렸노라고.
2:1 다릿돌 건너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다사로운 손길로
다독거리는 소리.
2:2 다정한 목소리로
다물다물 속삭이는 당신.
다듬지 않은 그 얼굴이 고와라.
다소곳한 그 모습이 좋아라.
3:1 라일락 은은한 향기.
라르고처럼 은은한 노래.
4:1 마파람에 실려 오렴아,
마당으로 들어 서렴아.
마음 문을 열고 마중하리니
마루로 어서 올라 서렴아.
4:2 마른 나무에 단물 오르고
마디마디 꽃을 피우리니,
마무리 짓자 기나긴 지난날을
마름질하자 우리 내일을.
5:1 바람이 휘몰아쳐도
바위처럼 꿋꿋하게.
바퀴가 삐끗거려도
바다처럼 넓게.
5:2 바늘 가는데 실 가듯
바라보며 마주보며,
바깥세상 바드득거려도
바동거리지 말자.
6:1 사래질해서 얻은 내 알곡.
사근사근하구나.
사로자면서 지킨 내 사슴
사분사분하구나.
6:2 사랑은 주어도 줄지 않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
사랑은 뜨겁게 불타도
사위지 않는 것.
7:1 아내를 맞아 아기를 낳고
아버지가 되는 것.
아무나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구나.
7:2 아들 둘 딸 하나 안고 업고
아름차 아릿거릴 때,
아스러지는 목숨을 붙잡고
아, 당신은 기도만 하더이다.
8:1 자투리 땅에 자리 깔고
자린고비 쳐다보면서,
자족하면서 산다 한들
자랑할 수 있으랴.
8:2 자리 잡고 어엿이 살랴
자식들 떳떳이 뒷바라지 하랴,
자나 까나 살림에 파묻혀
자지리도 자기를 버린 당신.
9:1 차도가 없기로서니
차라리 가시라고 할까마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차례를 기다리던 불효한 나.
9:2 차분하게 마음먹고
차근차근 챙기던 그 손길.
차갑게 식어가던 시어머니 손 쥐어주며
차고 앉아 하늘나라 보내드렸소.
10:1 카아네이션 달아드리리다.
카메라에 그 모습 담으리다.
11:1 타자꾼이 큰 소리치는
타분한 세상에서,
타이른들 타박한들
타레만 헝클어지기에,
11:2 타고난 재주 없어도
타박타박 걷지는 말자고,
타고 남은 불씨는 없어도
타올타올 살아가자고.
12:1 파란 하늘 새 하늘
파란 들 새 땅으로,
파드득 날개 치며
파랑새 되어 날아가리.
12:2 파란만장의 유랑 극장
파할 때가 되었나니,
파리한 탈 무대 뒤에
파묻을 때도 되었구나.
13:1 하나님 아버지여,
하찮은 이 아들 딸에게도
하늘나라 소망을
하사하셨나이다.
13:2 하고 많은 사람들 중
하나 되게 짝 지어준 우리,
하나님께 찬양을.
하나님께 영광.
* ‘그림자의 발자국(2)’에 게재.
2000년 4월 2일. 결혼 30주년 기념일. 특별한 행사는 갖지 않았으나, 이 장시(長詩) 한 편을 썼다. 맞선을 기점(起點)으로 결혼생활 30년을 돌아보고, 앞날을 바라보는 희망(希望)을 담았다.
여호와의 율법(律法)을 찬양(讚揚)하는 성경 시편(詩篇)은, 176절(節)로 된 장시(長詩)다. 그리고 그 짜임이 독특(獨特)하다. 소위 답관체(踏冠體)로 씌어 있다. 곧 히브리어 자음(子音) alphabet 순서(順序)로 되었으되, 22 자음에 각각 8절씩 모두 176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성경 아가(雅歌)는 ‘노래 중의 노래’인데 사랑의 노래라고도 한다. ‘주님과 교회’ ‘주님과 성도’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으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제목을 ‘우리의 아가’라 한 것은, 내용은 아가(雅歌), 형식은 시편 119편의 짜임을 흉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