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2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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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by 최연수 Jan 09. 2025

다리가  길었다면

깊은 강물에 우뚝 서있지,

오죽 못 났으면

이렇게 엎드러 있겠니?

     

그래도

나뭇짐 지고 건너고,

 이래봬도

샛참 이고 건너더라. 

    

미끈거린다고

투덜거리지 마렴.

흔들거린다고

짜증내지 마렴.  

   

바짓가랑이 걷어올리고

치맛자락 걷어붙이고,

내 등을 밟고 건너가렴.

사뿐 사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렸다.

서두르지 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세 아이를 얻어 기쁘기도 하지만 짐도 무거워졌다. 더구나 셋째 아이에게는 세제(稅制) 혜택(惠澤)도, 학비(學費) 보조(補助)도 없었다. 둘만 낳으라는 정부의 시책(施策)에 역행(逆行)했기 때문이다. 

 생질(甥姪)까지 양육하게 되어 식솔(食率)은 갑자기 늘고, 막내 동생 교육문제 등 박봉(薄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게다가 집도 마련해야 하고.... 우리 집안에서는 없으리라는 고부간(姑婦間)의 갈등(葛藤)도,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신앙생활로 극복(克服)하고자 하였으나 나에게는 힘이 부쳤다. 

 약혼(約婚) 시절 구름다리를 건널 때의 생각이 되살아났다. 서로 붙잡아 주고 껴안아 주면, 신명나는 춤판이 되지만, 토라져 등 돌리면 ‘님’자에 점(点이) 하나 더 붙어 ‘남’이 된 채, 비틀거리다 넘어진다는...역시 연애(戀愛)는 꿈이지만 결혼(結婚)은 현실이다. 

 일찌기 각오(覺悟)한 바가 있었지 않은가? 나의 꿈의 날개를 접고 좌절(挫折)할 때, 나 자신의 영달(榮達)은 이미 포기(抛棄)하고, 동생들을 위해서 지팡이 구실이나 하자고...게다가 아내를 맞이하고 아기를 낳는 가장(家長)이 되면, 내 개인 목표(目標)의 성취(成就)만을 위해서 독주(獨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않은가?

 나는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큰 강 위에 우람한 교각(橋脚)을 세워 대교(大橋)를 건설할만한 위인(爲人)이 아닌 바에야, 얕은 개울 물에 잠긴 채 납작하게 엎드려, 내 등을 밟고 건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내 여생(餘生)의 사명(使命)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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