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매끄러워
누르면 터질 것 같아
조심스럽구나.
한 껍질 두 껍질
벗기고 또 벗겨도
속을 드러내지 않는구나.
달콤 새콤 할 바엔
차라리 떫기라도 하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구나.
햇빛에 바래지도
달빛에 젖지도 않았기에
미덥기만 하는구나.
하늘 이슬 흠뻑 마셨기에
흙 한 점 안 묻었으려니,
품 안에 꼬옥 묻고 있구나.
*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
감겨진 오색 테이프를 걷어치우고 교회 뒷골목으로 빠져나갔다. 우리는 처 형부(兄夫)의 안내로 해운대로 향했다. 극동호텔 313호실.
주위가 퍽 조용하고 깨끗하며, 시설들이 참 좋았다. 해변(海邊)쪽 창에 황록색(黃綠色) 커튼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curtain을 젖히니까 오른쪽으로 넓은 바다, 왼쪽으로는 산이 바라다 보이는 침실(寢室). 이미 어두컴컴해서 돛단배도 보이지 않고, 갈매기도 너울거리지 않았다. 해조음(海潮音) 소리만 들려올 뿐 사방이 정적(靜寂)에 휩싸였다.
아늑한 방 안에 2대의 큰 침대(寢臺)가 주인을 기다리고, 머리맡 탁자에는 전화기와 예쁜 전등(電燈)․물병이 놓여 있었다. table 위에는 radio와 재떨이, 그리고 꽃병에는 망울진 매화(梅花)나무 가지와 하얀 칼라꽃꽂이. 빈 방에 두 사람만 덩그렇게 남아있으니, 모든 것이 싱거워 멋쩍게 싱긋 웃었다. 매운탕을 시켜먹고, 바다 구경을 할까 했으나, 고단해서 곧장 들어왔다. steam을 넣고 shower를 했다.
나는 연두색 줄무늬 pajamas, 아내는 분홍색 sllip을 입었다. 남들은 첫날 밤 앞날의 행복을 설계(設計)한다지만, 나는 먼저 예배(禮拜)를 드리고자 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자기 침대에서 벌써 기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발 늦었다. 나도 곁에 앉아 따라서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신대로 부부(夫婦) 되었음을 감사하고, 마련해주신 이 보금자리가 기쁨과 복된 잠자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밀월(蜜月=honeymoon)이라는데 그믐께라 달은 없으니, 꿀맛만 봐야 하나? 깨가 서 말은 쏟아질 거라고 했는데... sponge권총(拳銃) 차고 다니는 노총각이라고 놀리던 동료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원격조종(遠隔操縱)이 먹혀들지 않았다.
중력(重力)이 너무 강하여, 빛까지 빨아들인다는 black hole. 우주(宇宙)를 창조한 최초의 대폭발(大爆發). 그리고 생명의 탄생(誕生)! 천체물리학(天體物理學)의 용어들을 생각해볼 새도 없이,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 극히 짧은 역사는 긴 밤에 이루어졌다. 눈을 떴을 때는 새 아침.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인 아내는 벌써 일어나 부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