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비단 길 오기까지
서른 네 고개.
흰 너울 들추는데
서른 고개
바들바들 떠는 손
건네 잡고서,
봉우리 가리키며
발맞추던 날.
아내는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서투르게 외울 때
문득 다가오는 십자가.
그 햇무리 같은 빛에
눈이 부시고,
그 달무리 같은 빛에
코끝이 시리고.
성경에 손을 얹고
굳게 다짐하던,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사랑 사랑.
아내는 내 팔을 끼고
나는 주님의 팔을 끼고,
한 몸 되어 걷던 날
사월 초 이틀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
1970년 4월 2일 드디어 결혼했다. 맞선 본지 한 달만이다. 부산영락교회에서 예식을 거행했다. 만 34 세 노총각과 30 세 노처녀의 결혼도 드물지만, 손 아래 처남(妻男)과 합동결혼식(合同結婚式)이 특종(特種) news 때문일 것이다. 하객(賀客)들이 북적이었고, 화제(話題) 거리가 되었으니까.
입장(入場)하는 신랑에게 천천히 걸어가라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노총각이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농담(弄談)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입장하는 신부의 부케(bouquet)가 떨렸다. 긴장(緊張)하여 손이 떨리라 짐작했다. 예식이 진행(進行)하는 동안에도 진정(鎭靜)되지 않아 몹시 안타까웠다.
성경(聖經) 위에 손을 얹어놓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약(誓約)을 했다. 하나님께서 짝 지어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노라고. 퇴장(退場) 할 때, 신부는 나의 팔을 끼었다. 나는 예수님의 팔을 붙들었다. 입장할 때는 서로 마주 보았으나, 그러나 퇴장할 때는 2인 3각(脚)으로 한눈팔지 않고 보조를 맞추어 걸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十字架)만을 목표로 삼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는 생 택쥐벨리의 말을 되새김했다.
피로연(披露宴) 자리에서 우리는 비숍 곡 ‘home sweet home’을 2중창(二重唱)으로 불렀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다짐이었다. 불과 한 시간 남짓 이 예식을 위해서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 한 여인을 고르느라고 몇 십억 여인(?) 들을 후보(候補)로 올렸단 말인가? 대단한 확률(確率)로 만났으니 행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