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이 피운 꽃인데
장마철이 되었으니,
붓 깨끗이 빨아
가루받이 했노라.
열매 하나 열렸는데
가뭄에 잎들이 시들하니,
물 지게로 길어다가
흠씬 물을 주었노라.
열매 한 개 더 열렸는데
태풍이 불어온다니,
받침대 곧게 세우고
봉지로 고이 쌌노라.
열매 많은 가지는
휘어져 찢긴다고
안타까워들 하지만,
그냥 흘려 들었노라.
빨강 주황에
덤으로 노랑까지
거뜬히 가꿀 수 있기에
마냥 기뻐했노라.
가을 볕에 알차게 익어라.
사랑의 열매들아.
똑똑 여물어라.
희망의 씨앗들아.
만혼(晩婚)이었기 때문에, 임신(姙娠)을 한다 해도 노산(老産)이 은근히 걱정이었다. 누님이 해산(解産)하다 세상을 떠났지 않았는가? 그 악몽(惡夢)이 머릿속에서 지워질 리가 없었으니까.
다행히 곧 임신이 되었다. 아내는 특별히 입덧을 하지 않았다. 출산 예정일이 되어 아내는 친정으로 갔다.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자연분만(自然分娩)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했으나, 생사를 가늠하는 난산(難産)을 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3개월 만에 간신히 회복되어 상경하였다.
심장(心臟)이 아주 약하므로 임신하면 안 된다는 주의(注意)를 받았다. 그런데, 첫돌을 지나서 건강이 원상으로 회복되자 욕심(慾心)이 생겼다. 하나만 더 낳으면 아이 홀로 외롭지 않겠다고 기도(祈禱)하기 시작했다. 1년 후 정말 임신이 되었다. 기도의 응답(應答)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다. 이번에는 친정으로 가지 않고, 개인병원에서 출산한다는 계획으로 동네 은하의원(醫院)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또 태아가 크다는 것이다. 산모와 함께 나도 고통(苦痛)을 분담(分擔)하겠다며, 의사의 만류(挽留)에도 불구하고 분만실(分娩室)에 들어갔다. 유도분만(誘導分娩)을 하는데 역시 난산(難産)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임신하면 안 된다는 강력(强力)한 경고(警告)를 받고 퇴원했다. 둘을 얻었으니 만족(滿足)했다. 이후 피임(避妊)을 위해 노력하였다. 안심(安心)하고 있는데, 원치 않게 5년만에 또 임신이 된 게 아닌가? 주위 사람들이 염려(念慮)를 했다. 나도 후회(後悔)를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산(順産)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예정일 전에 조기파수(早期破水)가 되어, 흑석성모병원으로 갔다. 출입이 금지(禁止)되어, 산모 혼자 분만실로 들어갔다. 나는 로비(lobby)에서 초조하게 밤새도록 기도하고 찬송하였다. 이튿날 드디어 해산했는데, 또 아이가 커서 난산이었다. 그러나 비교적 회복이 빠르고, 여아(女兒)였기 때문에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제는 세 아이가 된 것이다.
하나만 낳으라는 것인데, 셋을 주었으니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잘 기르겠다고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