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16화

울타리와 담

by 최연수

며칠 전에도 북촌에 다녀왔다. 생활사․민화․자수․동양문화 등 작은 규모지만 아기자기한 박물관을 비롯해서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멘트 아파트 숲 속에서 살다 보니 흙과 나무와 창호지 냄새를 풍기는 한옥이 그리워진다. 함부로 남의 집 안을 기웃거릴 수는 없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며 옛 사대부(士大夫) 집 담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양반화라는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와 바깥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사랑하는 이를 찾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짝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특히 가회동은 60년 전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시골뜨기가 햇병아리 선생이 되어 서울에 첫발을 딛고 잠깐이나마 기거했던 곳이다. 친지의 집을 찾아가는데, 솟을대문에 기가 질려 入闕(입궐)하듯 옷깃을 여미고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격조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한옥이 마치 궁궐 같았다. 기와 용마름에 수막새까지 붙이고 이방 연속무늬로 허리띠를 두른 높은 담장과, 그 앞의 윤나는 장독대의 첫인상이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刻印)되어 있다. 대문이나 담장은 껍데기인 셈인데, 왜 알맹이보다 겉 껍데기에 더 흥미를 가졌는지...


모든 고궁이 다 비슷하지만 특히 덕수궁 돌담길은 언제나 정답다. ‘덕수궁 풍류’를 구경하느라고 매주 가지만, 낙엽을 밟으며 가을빛으로 물든 이 돌담 길을 걷는 것은 낭만적이다. 나도 옛적에 저 젊은이들처럼 연인과 팔짱을 끼고 밀어를 속삭이면서 이 길을 감돌았다면 아마 시인이 되어 돌팔이 글방이라도 차렸을 것이다. 때로는 담벼락을 배경으로 그림들이 전시되어 길거리 갤러리로 탈바꿈하는데, 나도 이런 운치(韻致)를 머릿속에 스케치하는 뜨내기 화가가 되기도 한다. 키를 훌쩍 넘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 딱딱한 돌덩이들에게서 무슨 온정(溫情)을 느끼기에...

이따금 서울 도성을 산책한다. 담쟁이덩굴 속에 묻혀있으면서 얼굴을 내밀어 외로움을 달래고자 하는 돌들을 통해서, 영고성쇄(榮枯盛衰)의 역사를 들어본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도성․남한산성․수원화성 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있는 모든 일은, 곧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발자취이기 때문이 아닌가? 어렸을 적 땅 따먹기 놀이할 때의 줄 긋기와 금방 파도에 휩쓸려버릴 모래성 쌓기나, 각 가정에서 울타리를 두르고, 나라에서 성곽을 쌓는 일이 뭐가 다르랴. 밀림의 맹수는 물론 공중을 나는 새들도 자기네 영역을 지키기 위해 사투(死鬪)를 하거늘, 하물며 에덴동산 시대를 빼놓고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는 건 곧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제주도 여행 때의 현무암 잣담(돌담의 제주 사투리)들은 아주 인상 깊었다. 삼다도(三多島) 답게 숭숭 뚫린 구멍을 통해 갯바람을 빨아들여 밭발림(바람으로부터 흙을 보호하는 일)을 돕지 않는다면, 제주도의 여인들이 부르는 ‘오돌또기’ 민요는 더더욱 처량했으리라. 시골 농촌을 여행할 때면 토담에 매달린 주황색 여주와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장독대, 그리고 주위의 봉숭아․맨드라미․채송화․접시꽃․해바라기가 향수(鄕愁)를 자극하기도 한다. 가는 데마다 이렇게 울타리와 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서이다.


작은 포구에서 살다가 예닐곱 살 때 읍내로 이사 간다고 마음이 들떴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며 말이다. 비록 싸리울타리지만, 나팔꽃 메꽃이 피고 지고, 팥잠자리가 넘나들며 나와 술래잡기를 하자 했던 이웃집 시헌네 집이 늘 부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랜 장맛비에 폭삭 내려앉은 흙담 꼴이 되었다. 여전히 연이어진 행길가 점포 하나가 우리 집이었으니까. 뒷집은 일본인 병원인데 공원 같은 정원이 내게는 꿈의 동산이었으며, 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피가 났을지라도 마당 한쪽의 예쁜 명자꽃 울타리가 그럴싸하게 좋아보였다.


한약방을 하신 할아버지 댁에 가면 엉성한 초록 가시들 틈새에서 누런색으로 영글어가는 탱자가 어린애 고환처럼 귀엽고 신기했다. 탱자는 한약재로 쓰였지만, 마을 전체가 이런 탱자 울타리어서인지, 지로리(枳路里)라고 했다. 외갓집에 가면 지네 같은 이엉을 이고 있는 흙담 위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조롱박이 아주 사랑스러워 보이고, 긴 수염을 점잖게 늘어뜨린 채 흙담에 기대어 서있는 옥수수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여․순 사건 이후 우리 읍내는 늘 치안이 불안했다. 해가 어스름하면 먼 산에 봉화가 타오르고, 이 날 밤은 어김없이 공비들의 습격이 있었다. 성 밖 변두리에 사는 우리는 저녁 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성 안 친척 집으로 피신을 하곤 했다. 경찰은 성안을 지키기 위해 통 대나무 울타리를 높이 세웠는데,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커다란 성책(城柵)이었다. 넘어오기도 힘들 뿐 아니라 설혹 넘어온다 할지라도 날카롭게 깎아 세운 대쪽 밭에 떨어지면 큰 부상을 입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총알을 쏘아도 미끄러져 빗나간다고 하니 안성맞춤이었다.

성안에 들어오는 두 길목에 기관총 사수가 초소를 지키고 있어, 이 문만 닫으면 귀신도 얼씬거리지 못해 주민들이 다리를 펴고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허를 찔렸다. 성안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로를 따라, 물귀신이 되어 물속으로 헤엄쳐 스며든 공비들과 경찰 사이에 접전이 벌어져 아수라장이 된 날도 있었다.


한편 6.25 전쟁 때 할아버지 댁에 은신해 있었다. 흙담 위는 기와 용마름이 덮여있고, 담벼락은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뒤덮고 있었다. 덩굴을 헤치면 왕벌 집이 있고, 때로는 구렁이가 슬슬 담을 넘기도 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판도라의 상자를 감출 수 있는 천연(天然)의 요새(要塞)로 눈독을 들였다. 명함만 한 쫑이 쪽지에 깨알만 한 글씨로 빼곡히 적어둔 반공(反共) 시와 일기 메모를 그만 어른들께 들켜 불사르게 되었는데, 눈을 속여 빼돌린 몇 가지 밀서(密書)를 담장 속에 감추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빨간 머리띠를 두른 공산당들이 대창을 가지고 아무 곳이나 들쑤시는 바람에 막판에 그만 포기한 것이다. 문득 마당 한 귀퉁이 감나무 아래 널브러진 기왓장들이 눈에 띄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납작한 돌멩이를 놓고 암키와를 뒤집어 덮은 후 그 안에 판도라의 상자를 감추어둔 채 때를 기다렸다. 큰 성공이었다.

수복이 되자 뒤늦게 복학을 했다. 고학과 자취로 늘 허기졌는데 특히 김치가 몹시 먹고 싶었다. 주인집 대나뭇가지 울타리에 주저리주저리 말리고 있는 호박, 가지, 시래기들에 입맛을 다시었다. 아마 용기가 있었다면 제2의 장발장의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흘 굶으면 담 안 넘어간 사람 없다’는 속담을 창자로 느낀 시절이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6.25 수복 후 일천(日淺)해서 폐허 그대로였다. 북촌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청계천에는 판잣집이 즐비하고, 산자락에는 쪽방집 심지어 천막집이 따개비 같이 다닥다닥했다. 담장은커녕 울타리가 있었으랴. 반면에 좀 사노라는 집 벽돌담 위에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촘촘히 박혀있거나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꽂혀있고, 심지어 철조망까지 둘러쳐있어 중무장한 DMZ가 따로 있나? 이렇게 수도(首都)가 마치 수도(首盜) 같아, 시골뜨기의 머리끝을 쭈뼛쭈뼛하게 만들었다.


마당과 함께 담이 둘러싸인 내 집 마련은 40대에 들어서면서였다. 어린 시절의 꿈대로 화초와 나무를 가꾸고, 아이들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놀이기구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불록 담을 몰래 넘어와 앵두 서리를 하지를 않나, 복(伏) 날 사랑하는 개를 독살해서 끌어가지를 않나 정나미가 떨어져 우리 담장도 중무장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집을 지니고 있을 팔자가 못 되어, 이내 아파트로 이사한 후 단독 주택을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울타리와 담은 한 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렸다.


아예 헐 수는 없어도 담벼락이 애송이들의 저속한 낙서판, 정상배들의 선동 게시판, 잡상인들의 광고판이 되고, 취객들의 해우소(解憂所)가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혹은 계엄사령부가 되어 으스스하게 하거나, 지붕까지 파묻을 듯 보는 이들을 제발 숨 막히게 하지 말았으면... 요즘 유행하는 휀스로 대체하여 덩굴장미 같은 화초를 올리는 등 나름대로 품위 있고 아름다운 울타리와 담장은, 집 주인에게는 아늑함과 평안함이, 행인에게는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누를만큼 즐거운 눈요기감이 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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