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14화

벼룩시장

by 최연수

“날 잡아라 톡. 날 잡으면 용하지 톡톡”

“네까짓 못 잡아? 요놈 봐라, 제법이네...”

어렸을 적에 발갛게 술에 취한 채 갈지자로 뛰는 요놈을 잡느라고 무던히 애를 썼지. 그런데 요놈을 송곳으로 잡았다니... 아이치고는 그 재간과 집념이 대단했겠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 책 중에서 나온 것인데, 누구인지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나도 송곳으로 잡아보겠노라고 벼르고 별렀지만 어림도 없었지.

가까운 곳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이름부터 재미있어 호기심으로 찾아가 보았다. 높이뛰기 선수인 벼룩처럼 뛰는 사람들과, 송곳을 들고 순라군(巡邏軍)처럼 쫓는 사람들이 뒤엉킨 북새판을 떠올리며 말이다. 과연 왁자지껄한 판이 옛날 시골 장터를 옮겨놓았다. 거칠고 약삭빠르다 해서 장돌뱅이를 업신여기던 시절, 큰 잘못이나 저지른 것마냥 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장돌뱅이가 되어 장터를 기웃거리던 추억이 새롭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이건 얼마예요?”

“천원이요”

“......"

훔쳐온 것이나 죽은 사람 것 아니면 큰 흠이나 있지 않을까? 너무 천연덕스런 그 젊은이의 모습이 미덥지 않았으나, 그 눈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어 보여 덥석 샀다. 행여나 실수했노라고 물러주겠다면 어떻거나 벼룩처럼 뛰다시피 줄행랑쳤다. 지금도 봄. 여름이면 잘 입고 있는 양복저고리다. 족히 몇 만원은 될 양복이 천원이라니....

설마 벼룩이 힘에 눌려 납작해진 빈대가 있거나, 벼룩에게 얻어맞아 가슴에 멍이 든 이가 있으랴. 그 후 맛들여 이따금 벼룩시장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샀다. 싸면서도 좋고, 흥정하노라 실랑이질 안해도 좋고... 아무래도 백화점보다 동네 구멍가게, 슈퍼 마켓보다 재래시장이나 이런 벼룩시장이 내 체질에 맞는가 보다.

그런데 딸내미가 벼룩시장에 나가보겠다는 게 아닌가? 자기가 입었거나 선물 받은 옷․가방․신발․액세서리 등속을 팔겠다고 구청에 신청했는데 4:1 경쟁에서 당첨됐다는 것이다. 이사를 앞두고 짐도 줄이고, 어차피 안 쓸 바엔 이번 기회에 처분하겠단다. 장사에는 이골 난 엄마도 망설이는 장사를, 아무 경험도 없는 아이 혼자 장터에 내보내는 일이 마음 내키지 않고, 싸구려로 파는 건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체면 문제도 생각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학창 시절 클럽활동의 일환으로 학교 매점에서 학용품을 팔았던 경험 외에는 전혀 장사에 어두운 나는 찬성이었다. 뭐든지 경험해 보라, 삶의 현장에서 인생 공부를 해보라, 투자한 것이 아닌데 손해 볼 일이 없고, 설혹 금전적 이득은 없더라도 용기와 의지와 인내력등 배울 게 적지 않다고, 오히려 부추기었다.

자정이 넘도록 힘껏 그의 일을 도왔다. 두 오빠들과 올케도 도와주기로 했다. 드디어 토요일 두 대의 승용차로 짐을 옮겼다. 9시부터 개장인데 차를 세울 수 없도록 주차가 힘들고, 비집고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물건들로 붐비었다. 사당역 쪽 220번 자리를 찾아가 물건을 진열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들이 기웃거리고 흥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뒤에서 구경만 하는데도 딸내미는 한사코 부담스럽다며 돌아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구경이나 하자고 두루두루 돌아다녔다.

없는 것 빼놓고는 오만 가지가 다 있는 시장, 못 팔아서 아우성치며 호객하며, 흥정만 하고 돌아서는 손님을 째려보는 장사치 없는 시장. 지폐 몇 장으로 흡족한 얼굴로 푸짐하게 사가는 시장. 이렇게 치열한 생존경쟁 없이 주거니 받거니 너 좋고 나 좋은 잔치 같은 분위기.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디시 쓰자) 운동의 참모습을 이곳에서 찾는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그리고 딸내미가 백 번 잘한 것 같았다.

때마침 ‘구름 빵’이라는 콘텐츠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대박 난 예를 들면서, 박대통령은 문화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을 세우라고 강조하였다. 한솔 ‘구름빵 상상나라’의 ‘벼룩시장’을 통해, ‘아나바다’ 정신과 생활이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유익하고 값진 교훈을 주는 것임을 깨달아, 어린이들의 현장학습에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품을 사람들이 직접 사고파는 이 시장은, 원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 야시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세기말 경부터 생겼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파리의 포르트 드 클리냥크르로 라고. 사업자의 유통 마진을 저렴하고 유용한 제품의 공급을 위해 열렸다니, 우리나라가 원조가 아니다. Flea Market! 경찰이 가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나? 사람이 벼룩처럼 많이 모여들거나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판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니 당초 내가 호기심을 가진 게 이상한 건 아니구나. 중국에서도 跳蚤(타이오 자오)가 곧 벼룩시장이라니까 내가 그동안 과문천식(寡聞淺識)이었지.

잠깐 집에 와 쉬는 사이에 돌풍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부랴부랴 현장에 갔더니 이미 파장이다. 3시에 폐장이라는데 1시간이나 남겨두고 말이다. 다행히 슬쩍 스쳐가는 비는 멎었으나 바람은 자지 않았다. 딸내미와 오빠네는 바삐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파장 무렵에 가장 손님이 몰린다는데 허탕이었다는 불쾌함이나 불평불만이 없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가 그랬다. 다음 기회에 또 오면 된다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이게 벼룩시장의 풍속도가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서 인생의 여정에 기복(起伏)과 부침(浮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맑다가도 이와 같이 별안간 비바람이 치기도 하고, 밝은 낮이 저물면 어둔 밤이 있으며,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다는게 우리 인생이란 것을 가르쳐주는 좋은 학교이고말고. 때로는 잡히지 않겠노라고 벼룩처럼 죽어라 톡톡 튀어야 할 일이 있고, 기어코 잡고야 말겠다며 송곳을 쥔 채 끈질기게 쫓기도 해야 될 일이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냐는 것을 체험했던 뜻깊은 날이었다.

그로부터 한 철이 지난 가을, 이번에는 초6 손자가 벼룩 시장에 나갔다. 학교 바자회 경험은 있었지만, 벼룩시장은 처음이라 긴장했으리라.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들고나갔다. 애지중지하던 것을 팔아버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그런 아쉬움은 없고 현금이 생긴다는데 여간 흐뭇해하지 않은 것 같다. 대견스러워 격려차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모두 가보았다. 아빠 엄마가 도와주고 있었지만 제법이었다. 좋은 경험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그마치 14만 여원 매상을 올렸다. 대단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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