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달 무슨 달 / 항아리 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 湖林 위에 떴지.
호림박물관으로 달맞이를 갔다. ‘백자호-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이란 긴 이름의 전시회에 간 것이다. 이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서 이미 전시회의 반은 음미한 셈이다. 수화(樹話) 김기환 화백이 성북동 집 정원에 달항아리를 놓고 ‘달 뜬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지 않은가? 그의 그림에 달항아리와 새들이 자주 등장한 까닭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먼저 2층으로. ‘순백의 강건한 멋’을 주제로 풍만하고 남성적인 입호(立壺)를 전시했다. 달항아리에 비해 예술적 가치를 주목받지 못한 입호의 조형미를 부각하고자 했다는 해설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3층으로.
‘순백의 온화한 둥근 맛’을 주제로, 조선 백자 중 달항아리들만 옹기종기 전시되어 있다. 원호(圓壺)인 달항아리의 비밀은 가운데의 이음매에 있다고 한다. 높이 40cm가 넘는 큰 항아리는, 젖은 태토(胎土)가 주저앉아 물레로 뽑아올릴 수 없어, 두 개로 빚은 사발을 맞대어 붙이는 기술을 썼다니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그래서일까 약간 이지러진 어리숙한 형태가 오히려 멋스럽다.
4층으로. ‘순백과 절제의 미’가 주제인데, 성리학(性理學)적 이념에 기반을 둔 조선 왕조의 미의식과 통한다는 해설이다. 무엇보다도 독립 공간에 전시한 18세기 백자 대호(大壺)가 이번 전시의 백미다. 3면 거울에 비친 대호의 여러 형태가 신비스럽다. 왕실의 향연(饗宴)에서 사용된 큰 항아리의 웅장한 자태와, 발산하는 흰 빛깔은 하늘에서 내려온 달 그대로이다. 으스름한 공간에 희다못해 눈이 시릴만큼 푸르스름한 달빛에 넋을 잃고 한동안 석고상(石膏像)이 되어버렸다.
문득 괴괴한 달밤, 초가 지붕 위에 피어있는 박꽃이 연상되었다. 화려하게 성장(盛粧)한 도시 여인보다, 소복단장(素服丹粧)한 시골 여인이 오히려 아름다울 때가 있듯이, 아무런 꾸밈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그 모습이 얼마나 맑고 고운가?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를 찾아보겠노라며 뚫어져라 쳐다보던 일, 정월 대보름 달맞이 하러 남산 위에 올라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며, 달빛을 휘감고 쥐불놀이를 즐겼던 일, 한가위 휘영영 밝은 달빛 아래서 그림자와 함께 강강술래를 했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저 달항아리에 투영되었다.
서양(西陽) 비낀 해에/ 호올로 박물관 창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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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진실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산림처서(山林處士)의 하얀 도포(道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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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의젓한 너그러운 맵시여.
라고 읊었던 옛적 박종화(朴鍾和)의 시 백자부(白瓷賦)가 늘그막에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미술학자요 박물관인인 최순우(崔淳雨)가 일찍이, ‘백자 항아리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경탄했는데, 문외한인 내가 사족(蛇足)을 달아 무엇하랴.
박물관을 나오면서 호림(湖林) 윤장섭을 생각해보았다.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과 함께, 3대 사립 미술관의 하나인 호림박물관을 세운 선각자 그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국보급 문화재가 어떻게 보존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졌을 것인가?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몇 점의 자기(瓷器)를 꺼내어 보았다. 그 동안 너무 홀대한 것을 미안스레 생각하면서, 이제 새 집으로 이사가면 귀중하게 보관하리라.
비록 짝통이지만 딱 벌어진 어깨로 남성미를 뽐내는 청자(靑瓷) 상감운학(象嵌雲鶴)과, 풍만한 둔부로 여성미를 자랑하는 산수화 백자 한 쌍이 요철(凹凸)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40여년 전 도요지 이천에서 근무했던 H장로의 선물이다. 또 하나의 산수화 백자는 28년 전 장로 장립 축하로 O장로의 선물이며, 소품 2 개는 결혼 주례의 사례로 제주도 신혼 여행을 다녀온 제자 Y의 선물인데, 그 중 매화 문양의 원호는 아깝게도 깨뜨려졌다. 그밖에 청자 사발은 60년 전 초임 시절 어느 학부모의 선물인데, 못 생겨서 시선조차 끌지 못했으나,·오랜 역사와 함께 이제는 그 치졸(稚拙)함이 오히려 정답다. 한편 20여 년 전 중국 여행 기념으로 산 장난감 칠보(七寶) 병 2개와 주전자, 일본 여행 기념으로 산 소품 4 개의 종지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잡혀간 도공(陶工) 후예의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샀지. 다른 선물 제쳐놓고 이것만을 산 것은 내가 자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작품들은 혼혈 다문화 가족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진품이건 모조품이건, 값지건 싸구려건 소중한 선물이요 기념품들이기에 이사할 때는 꼭 챙긴다. 어렸을 적 누나와 소꿈놀이를 할 때 조개 껍데기와 사금파리로 그릇을 삼았는데, 그 곳엔 유독 사금파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곳 강진 대구가 요즘 각광을 받는 사적 제68호 고려 청자의 요지(窯地)가 아닌가? 도공의 후손은 아니지만 그런 인연 때문에 어려서부터 관심이 큰 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