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15화

동백과 구피

by 최연수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에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그들도 목청 높이 이 노래를 합창하며 희망의 나라 제주도로 향하였으리라. 나도 현제명 작사. 작곡의 이 ‘희망의 나라로’를 콧노래로 날리며 이곳으로 이사 왔으니까.

그러나 여객선 세월호가 절망의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사건은 곧 온 국민에게 페닉 상태에 빠져들게 했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300여 명 청소년들의 수장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이삿짐을 풀어놓았으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멍하니 서있기 일쑤고, 엎치락뒤치락 깊은 잠도 이룰 수가 없다. 게다가 베란다의 동백나무마저 고사 직전이다. 잎이 하얗게 오그라들고, 남아있는 초록 잎사귀들도 잎자루․잎맥마다 온통 깍지벌레다. 30여 년 전 아끼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이 병충해로 잃었는데, 또 한 그루를 장례 지내야 하느냐? 더구나 고인이 된 처형으로부터 물려받은 나무인데...

잡념을 쫓는 데는 화초 가꾸기가 좋다. 가까운 꽃가게에서 깍지벌레 약을 사려고 했으나 그 농약은 허가 없이 팔지 못 하므로, 일일이 손톱으로 긁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했던 대로 칫솔로 긁어내는 깍지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파리가 대략 300여 개. 한물간 이파리는 모조리 따버리고, 소망이 있는 건 망사걸레로 일일이 닦은 후, 시원하게 샤워를 시켰다. 그리고 진딧물․진드기․개미 구충제 ‘그린킬’을 뿌렸다. 기도하는 맘으로.

“되살아났다!”

며칠 만에 황록색 새 잎들이 일제이 돋고, 다른 이파리들도 동백기름을 바른 여인들 머리처럼 반지르르 윤기가 났다. 그리고 한 송이 꽃봉오리까지 가냘프게 피어났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처럼, 아니 세월호 실종자의 부모들처럼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실종자 모두가 이렇게 살아 나왔으면... 생명의 귀중함과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오는 겨울에는 새빨간 동백꽃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도 저 봉오리처럼 부플었다.

6.25 전쟁의 포화와 1.4 후퇴의 혹한 속에서도 독야청청했던 소나무의 기개와, 흰 눈 속에서도 새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의 정열로부터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얻었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생사를 넘나들던 환난 속에서 ‘松柏’이란 시를 쓰게 되었다. 중2 소년은 그 후 동백을 무척 좋아했다. 백운산 자락과 백계산 남쪽 언덕엔 100세가 넘는 동백이 7000그루나 있다는데,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 두 번 핀다고 하지 않은가? 잘라낸 듯 송이 째 떨어져도 여전히 생기 있고 곱기 때문이리라.

13그루의 화초를 화분에 심어, 한 그루에게는 가룟 유다의 이름을 붙여놓고 물 줄 때마다 저주했더니 시들시들 자라지 못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한편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잘 못 자라는 나무를 베지 않고, 증오의 욕설을 퍼부으면 드디어 말라죽는다고 한다. 말속에 독이 있고 식물도 감정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꽃과 나무도 사랑을 먹고 마시며, 정성을 숨 쉬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체험한 지 오래다. 어떤 이들은 관상용으로 즐기다가 꽃이 지고 잎이 시들면 아낌없이 버리기 일쑤지만, 나는 버려진 그 화초를 주워다가 잘 길러내는 기쁨으로 화초를 가꾼다. 그렇게 해서 몇십 년 번성한 화초가 여러 그루 있는데, 이사 올 때 많은 짐을 버렸으나 피아노와 함께 귀빈이 되어 용달차에 실려 왔다. 내 정성이 깃든 기른 정과 하찮은 것이라도 생명체 하나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세월호의 생명들이랴.

며칠 후, 우연히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이리 와봐!”

귀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구피 아줌마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어머! 누가 낳은 거야?”

“몰라, 어서 뜰채나 가져와!”

꼬물거리는 새끼를 떠서 다른 어항에 넣었다. 다른 녀석이 먹어치운다기에 말이다.

“또 낳았어!”

그런데 꽁무니를 줄기차게 따라붙은 녀석이 잽싸게 와서 냉큼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저런 야만인 좀 봐!”

“야만인이 아니라 야마어(野蠻魚)지”

뿅 뿅....... 배지느러미 뒤쪽(출산관)에서 물방울 같이 나오더니 이내 꼬물거린다. 마치 공수특전단이 낙하산을 펴고 떨어지듯. 곧바로 산모도 격리시켰다. 그는 산실에서 마음 놓고 계속 낳았다. 자그마치 한 놈 먹히고 모두 열한 마리를 낳은 것이다. 까만 점 같은 개 생명체라고 꼬물거리며 헤엄치는 저 모습! 생명의 경이를 보았다. 구피는 난생(卵生) 이 아니라 난태(卵胎) 송사리과 어류라 치어를 낳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2일 친지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니 5개월 만에 첫 출산 인 셈. 암수도 구별하지 못했는데, 출산의 징조를 어떻게 알고 준비를 했으랴.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구피에 관한 정보를 너무 몰랐던 것을 깨닫고, 구피 아줌마에게 퍽 미안했다.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이진 못했어도 먹이를 덤으로 주고, 새끼들은 보육실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Happy birth day to you....

새 생명 탄생의 축하를 통해서 세월호의 참사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되니까 제법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9월 11일 또 다른 구피 아줌마가 무려 2 시간에 걸쳐 자그마치 40 마리를 출산했다. 진통을 할 때는 몸부림을 하다가 잠잠해지면 어김없이 두, 세 마리씩 낳았다. 온 가족이 지켜보고 있다가 낳자마자 새끼들을 보육실로 옮겼다.

“저 새끼들을 어떻게 다 양육하며, 교육은 어떻게 시키려고 다산을 한담...”

실레네 스테노필라는 패랭이꽃의 일종이다. 그런데 최근 시베리아 강둑의 다람쥐 굴에서 발견된 이 씨앗과 열매를 방사선으로 측정한 결과 3200년 전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씨앗이 싹터 꽃까지 피웠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편 흙밤버섯은 소나기 힘으로 씨앗을 퍼뜨리며, 어떤 사막 선인장은 말라죽으면서 몸속에 수 백 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수 십 년이 지난 후 적당한 환경이 되면 발아한다고 하니, 생명의 신비가 놀랍기만 하다.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짓다가 개미굴을 발견하고, 병원 터를 옮겼다는 슈바이처의 전기를 읽고, ‘생명의 외경’ 사상에 접한 바 있거니와, 한 그루 동백을 살려내고 구피 열 한 쌍둥이를 새로 얻는 바람에, 세월호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면서, 가치관 확립이 얼마나 중차대(重且大) 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노란 리본은 옐로 카드가 되고, ‘잊지 않겠습니다’의 프랑카트는 말 잔치가 아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행동강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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