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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가족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가족공원으로. 한산하다. 프랑스에서 되돌려 받은 외규장각 의궤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국립박물관으로 빨려들어간 탓이겠지. 나만 외로운 방랑자 같다. 이곳은 남산과 한강의 중간에 위치하여 서울의 허파요, 뉴욕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인근 주민들의 앞마당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소에는 유치원생들의 소풍과 가족 나들이, 그리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인데.

봄철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지금은 입구의 자귀나무꽃만 나를 반긴다. 만남의 장소 옆 연못은 장마철이라 맑지는 못 하지만, 못가에 갈대 잎이 무성하고, 수면 한쪽에 하얀 수련이 몇 송이 피어있다. 으례 보이던 오리들이 안 보인다. 아직도 조류 인프렌자인가? 엄마․아빠와 함께 노니는 그들을 통해 가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했는데. 휘늘어진 수양버들 그늘 아래로 비숍 작곡 ‘홈 스윗 홈’을 허밍으로 노래 부르며 거닐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 오! 사랑 나의 집 / 즐거운 내 벗 나의 집 뿐이리.

그런데 작사자 페니의 일생은 참 기구했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은커녕, 미혼으로 평생 방랑생활이었다고. 하지만 그의 유해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올 때, 대통령을 비롯한 고관․귀빈들이 영접한 것은, 이 노래가 오페라로 불리워진 때문이었다고.

우리 집안도 늘 노랑․빨강불이 번갈아 깜박거렸다. 끝내 비상벨과 함께 빨간불이 켜졌을 때, 나는 이미 파란만장의 반생이 지나갔다. 청운의 꿈을 접은 채 청춘을 땅에 묻고, 빈사 상태에서 가까스로 일어나 늦장가를 들었다. 그래도 페니의 팔자보다는 나은 셈.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부와 함께 이 노래를 2중창으로 불렀으니까.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이었다.

머릿속은 이렇게 옛날로 돌아가는데, 발걸음은 푸른 제1잔디광장을 지나 오른쪽 자연학습장으로. 홍예문 터널에는 조롱박․수세미 따위의 넝쿨이 지붕을 뒤덮고, 여러 채소․화초 가족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도시 아이들을 위한 학습장이라면 이름표 쯤은 메달아 놓았으면....그 바깥쪽 느티나무 산책길에는 머리가 희끗거린 몇 사람만이 눈에 띄었다. 제2잔디광장에는 커다란 철제 조형물. 우락부락한 검정 손이 잔디밭을 힘껏 움켜쥐고 있다. 그런데 비록 여위어 힘줄이 불거졌어도, 만지면 따스한 체온이 옮겨올 것만 같은 여인의 손이었다면...보리꽁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려던 시골 외할머니, 6.25 때 검정 보를 둘러쓴 채 우리의 생사를 확인하러, 잠깐 들러 손을 꼬옥 쥐어주며 또 도망쳐야만 했던 그 부드럽던 어머니의 손 말이다.

어린이놀이터가 텅 비어 너무 쓸쓸했다. 생태․습지 못은 공사 관계로 출입을 못해 바로 태극기공원으로. 무궁화 꽃잎 모양의 조형물에 50 봉의 태극기가 게양되고, 주위에는 무궁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병참기지, 청일전쟁 때는 중국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해방 후로는 미군이 주둔하여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했던 곳이 아닌가? 이곳에 국기를 세우고 국화를 심은 것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함이겠지. 오는 2017년부터 새로 조성될 대규모의 공원을 ‘치유의 공원’이란 이름으로 바뀐다니 그런 연유이리라. 태극기 공원 언덕을 내려와 제3잔디광장으로. 몇 점의 조형물이 그나마 초원의 단조로움을 장식해 주었다. 그러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주제로 하는 조형물이었으면 가족공원으로서 걸맞을 텐데.

맨발 산책을 위한 왕모래길을 U턴하여,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운동시설과 원두막을 지나왔다. 뭐니뭐니 해도 녹음은 느티나무라야 제격이다. 그늘 아래 벤치가 많았으나 여기도 나 혼자다. 매미들이 한가롭게 합창하고, 쥐똥나무 사이에서 참새들이 재잘거린다. 다 큰 새끼가 엄마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먹여달라고 날개를 바들거리며 어리광이다. 다 큰 우리 손주 녀석들이 밥을 떠먹여 달라고 입을 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새끼들은 어미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제 엄마 제 새끼를 아는 조류 세계가 늘 궁금하다.

며칠 전 놀웨이의 살인마 브레이빅은 무고한 사람 70여 명을 사냥하듯 죽여서 떠들썩했다. 그는 어김없이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16년 동안 남남으로 살아온 그의 생부도, 면회는커녕 자살해야 했다고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히틀러와 함께 600만 명을 학살했던 냉혈동물 아이히만에게도, 물보다 진한 피는 흐르고 있기에, 가족 때문에 자살을 못한다고 했는데.

’73년 영국 서머렌드호텔의 화재로 51 명이 죽고 400여 명이 화상을 입었다. 3000여 투숙객 중 무사한 그룹은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가족의 67%가 서로를 찾으며 함께 움직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온 손님 75%가 각자 행동했다는 것이다. 한편 1846년 미국의 개척민 80 명이 켈리포니아 산맥을 넘다 눈보라를 만나 도너 계곡에 갇혔다. 젊은 독신 남자 15 명을 빼곤 8 살 여자 아이부터 65 살 할아버지까지 가족들이었다. 이듬해 봄 구조된 독신 청년은 3 명뿐이었으나, 가족들은 노약자가 많은데도 60%가 생존했다. 서로 보살피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도널드 그레이슨은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라고 했다.

이렇게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다. 그런데 집은 있는데 가정은 없고, 가정은 있는데 가족이 없는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 사귀는 남친과 결혼하겠다는 딸에게 아버지가 “그 앤 내 아들이야”라 만류하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더니, 엄마 역시 “저 분도 네 아빠가 아니야”고 고백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 아들과 당신의 아들이 우리 딸을 욕 보였다는 뉴스가 등장할 날도 멀지않았다. 벤치에 앉아 이런 노파심에 잠긴 사람은 나만일까? 심리학자들은 가족의 파괴와 해체가 제2의 브레이빅을 양산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괜스레 혼자 심각한데, 건너편에서 문득 꼬마들 웃음소리가 청풍에 실려왔다. 천사들의 웃음소리 그것이다. 위쪽 연못에서 흘러내린 도랑물에서 물장난 치는 오뉘들이다. 그리고 아빠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린 아이가 또 보였다. 한 편의 영화 ‘스윗 홈’을 본 것 같았다. 지난 봄 비눗방울을 뿜어내고 풍선을 날리며, 공을 차고 즐겁게 뛰어놀던 손주들이 떠올랐다. 봄․가을 날씨가 좋을 땐 잔디 광장은 이런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사랑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는데...공교롭게 오늘은 한산했지만, 가족공원답게 3대나 4대까지의 대가족들이 나들이를 왔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는 시인 정호승의 시를 되뇌이며 문을 나왔다. 가족을 뛰어넘어 세계를 품에 안을 내일의 한국판 센트럴파크의 위용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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