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남산은 우아한 한복을 차려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이다. 곧 달려 가서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산이다. 멀리서 북악산․관악산 들이 수술처럼 이 암술을 감싸고 둘러 서있다. 외국인들이 한복의 우아함을 찬탄 하듯이, 서울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이 남산과 한강만은 가져가고 싶다 할만하다. 이 산이 땅속에서 솟았을 리 없다. 하늘의 선녀가 살포시 내려와 앉아있는 것이지. 그래서 떠나온 친정 하늘이 그리워 N-서울탑은 저렇게 높이 솟아있으리라. 그 마음을 헤아려 서울 렌드마크로, 서울 역사 60년의 상징 대표 건물로 선정했을 것이다.
이 우아한 치마폭에 소나무와 학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나무는 우리의 영혼을 하늘에 올리는 나무요, 학은 만년을 산다고 하지 않은가? 이 소나무가 남산에 울울창창했다고 한다. 소나무와 함께 남산은 천년수를 해야 하거늘, 이 치맛자락을 들추려고, 바지춤을 내린 채 추군추군 달라붙은 남정네가 얼마나 많았던가? 조선조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북악산 기슭에 왕궁을 짓고 남산에 태조와 그 스승인 무학대사의 위패를 모신 국사당을 지었다. 이곳에서 하늘에 국태민안을 빌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 많으니....’
이렇게 용비어천가를 읊으며 태평성대를 읊은 사이, 바다 건너 사무라이가 덮쳤다. 서슬 푸른 일본도를 휘두른데, 한낱 노리개인 치마폭 속 은장도가 숨이나 제대로 쉬었으랴. 치마폭은 갈갈이 찢겨지고, 철갑을 두른 듯 천년수 하리라는 소나무는 어이없게 오백년 만에 베어지고 찍혔다. 물론 학들도 어디론지 다 날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벚나무가 심겨졌다. 국사당을 헐고 그 대신 일본의 시조 아마데라스 오오카미와 메이지천황을 주신으로 하는 조선신궁을 지었다. 뿐만아니라 식민통치의 핵심 기구들이 야금야금 들어섰다. ’30년 대에는 남산 기슭에, 벚꽃 무늬의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이 10만 여명이었다니, 서울 인구의 1/3인 셈이다.
그 시절 일장기 앞 세우고 384계단을 올라가 조선신궁으로 신사참배를 갔다. 미국․영국을 쳐부수고 일본의 승전을 합장하며 빌었던 서글픈 우리네들 자화상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시인 이은상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시조로 읊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은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어찌 시인 한 분 뿐이었으랴.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사, 남산은 35년만에 부랑배의 품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는 통 좁은 벚꽃 무늬의 기모노를 입은 채, 무릎 꿇고 앉아있는 여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잠겨 하늘차를 타고 남산에 올랐다. 넓게 펼쳐진 치맛자락이 새삼스레 아름답고 정겹다. 우리 한복 치마를 맵시있게 입으려면 속옷이 제 구실을 다 해야 하는 법. 속옷도 둘러보았다. 무너졌던 성곽과 봉수대가 복원되었다. 조선신궁 헐린 자리 남산광장에는 국사당 대신 현대식 건물인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새로 건립되었다. 입구의 안의사 동상과 친필로 새겨진 10여 개의 돌비석들이, ‘구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는 소나무의 절개,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는 소나무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치마 주름을 따라 이리저리 벋어있는 오솔길과 산책길, 골짜기 물길을 따라 키를 재며 자라는 갖가지 나무들과, 철따라 피고 지는 여러가지 꽃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안에 안 듯이, 심지어 일본 국화라는 벚나무 까지도 다시 심어, 품에 안고 있는 포근하고 넉넉함이 어른스럽다.
팔각정에서 쉬었다.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시원하구나. 사진을 찍느라 북적이는 외국인들 가운데는 일본인도 있으리라. 그들이야 남산의 영욕의 역사를 알 리가 없겠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고층 빌딩 숲 사이로 개미떼 같이 오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환성이다. N-서울타워 전망대에서 야경을 바라보면 더욱 환상적이리라. 6.25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2,30년 만에 이렇게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노구를 이끌고 땅 끝에서 찾아온 6.25참전용사들은 감탄의 눈물을 흘린다는데, 막상 우리에겐 그런 자긍심이 있는 것인가? 남산의 역사가 곧 한국의 역사 아닌가?
젊은이들이 운집해있는 광장 한 쪽에 수 십만 쌍의 자물쇠! 루프 테라스와 트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채, 맞물린 자물쇠들이 사랑의 연가를 합창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알콩달콩 가정을 이루고, 사랑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저토록 녹이 슬었거나, 어딘가에 던져버린 열쇠를 되찾기 위해 풀섶을 헤집고 다니지나 않는지...아무튼 남산공원의 명물로 자리매김 했다니 그 사랑 변치 않기를. 그리고 남산 사랑 나라 사랑도 영원하기를....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탔다. 차창을 통하여 바라본 남산공원은 볼수록 귀태가 난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행복해 보인다. 조깅하는 외국 젊은이들의 팔 다리가 푸른 나무만큼 싱싱하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 국회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하겠노라고 쇼를 벌이는 시점에, 남산공원을 찾은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