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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Jan 28. 2025

“야, 신난다!”

 40여 년 전이었지. 너희 아빠 서너 살 때였으니까. 그 날이 어린이날이었거든. 만원 버스가 터질뻔했단다. 1973년에 골프장을 공원으로 고쳐 처음 문을 연 거야. 커다란 정문을 쳐다보고 왕방울 눈이 되고, 바다만큼 넓은 잔디밭과 산만큼 높은 나무들을 보고 함박만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고. 손가락에 매달린 풍선을 놓쳐서 울고, 껌을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짜증내었거든. 다리가 아파 업기도 하고, 코끼리 구경할 때는 목말을 태웠잖아?  

 그 땐 없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환경연못이 있구나. 물레방아가 시원스레 돌아가고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네. 연꽃은 유교뿐만아니라, 불교에서도 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맑고 깨끗함이 극락세계를 상징한다고 해. 빗물에도 젖지 않겠노라고 연잎에 빗방울을 구슬처럼 굴리는 그 고상함이, 세상 검댕을 묻히지 않겠다는 고답주의자 흉내를 내던 나의 젊었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원래 조선 순조의 비 민씨의 능터 유강원이었으므로 아직 석물․석상․지석이 남아있네. 

 전래동화 마을로. 처음 본 거야. 이야기 줄거리가 솔솔 생각나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군. 오줌싸개 도깨비의 오줌 줄기가 어찌나 센지, 철없이 너털웃음을 웃었지 뭐야. ‘웬 할아버지가 아이 같지?’ 이상하다는 표정들. 하기야 아직도 어린이지. 손주들 앞에서 재롱떠는 할아버지로 소문나고, 스스로 만년 어린이로 여기고 있거든. 피터펜 컴프렉스인지도 몰라. 어렸을 때도아이들을 퍽 좋아했어. 사범학교 시절 페스타로치를 존경했고,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귀여워했지. 그들을 위한 글을 썼고, 그 중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단다. 새싹회 주최 동화구연대회에서 상도 받았고 말이야. 이렇게 40여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으니, 아직 아이 티를 못 벗은 거 같아. 

 나무 뿌리 야생원에서 본 뿌리들이, 줄기와 가지 모양만큼 다 다르더라. 튼튼하고 잘 생긴 뿌리를 보니 그 나무를 짐작할 수 있겠더라고. 용비어천가에서 노래하듯이 사람도 나라도 뿌리가 크고 깊어야지....작은 생태 연못의 앙증맞은 개구리분수가 시원스럽군. 오조의 나라 마법사 놀이터와 새싹마루를 지나 밀밀한 숲속으로. 5000 석 정도의 객석이 있는 야외음악당이 있네. 이곳이 어른․어린이의 동요합창이 사철 샘솟는 옹달샘이었으면...동심을 노래하는 동요가 아이들에게도 푸대접 받는 세상이 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단다. 

 식물원으로. 식충식물을 비롯한 360여 종류의 나무․꽃들을 잘 가꿔놓아, 너희들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겠더라. 녹지가 많은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일수록 집중력이 높으며,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미국 환경심리학자 테일러가 보고한 바 있어. 많은 어린이들이 이런 녹지에 자주 찾아와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겠지?      

 동물원으로. 역시 아이들은 동물 팬이야. 옛날에는 아주 초라했는데, 서울대공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3000여 마리나 있다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지. 맹수들도 바짝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고, 야외 방사장에서는 동물과 함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성경의 ‘평화의 나라’(이사야11:6〜8)를 연상케 하는군.

  2 개의 어린이헌장 비. 이 헌장이 아니라도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대접은 두드러지게 향상되어 있어. 그러나 인권 보호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벌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얻어맞고, 심지어 일기장 검사까지도 못한다면서?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말리는 부모가 있나, 오히려 부모가 자식들 눈치를 보면서 주눅이 든 채 살고 있지. 이런 과보호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아동문학가 강소천선생 비를 보니 반갑구나. 이원수선생과 함께 나의 신춘문예 동시 심사위원이었거든. 소파 방정환선생의 동상 앞에 섰다. 마음의 꽃다발을 바쳤단다.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 시절, 이 겨레의 희망을 오직 아이들에게서 찾았어. 어른들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던 ‘애놈’들을 ‘어린이’로 높여 부르자고 했고,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했거든. 3.1운동 때 옥살이까지 했던 애국자요, 어린이들의 영원한 스승이었단다. 그 분 유골은 비석과 함께 망우리공원에 있지만, 동상은 이곳에 서있는 거야. 어린이를 곁에 안고 있는 그 사랑스런 모습은, 예수님 그리고 페스타로치가 어린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 그대로야.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진솔한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인권을 떠들었으면 좋으련만.

 녹음이 짙은 산책길을 1시간 넘게 걸었는데도 끄떡없구나. 마음의 산책로가 내 가슴속에 이리저리 뚫려서이겠지. 무궁화동산을 끼고, 체육 시설을 지나니 옛 기차․전차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네. 후문에서 U턴하여 팔각정으로. 옛 모습대로 한복판에 우뚝 서있군. 남문쪽으로 내려오는데, 놀이동산은 어린이 나라야. 모든 기구들이 아이들 좋아하는 만화의 세계로 되어 있으면....   어린이 수영장에는 때마침 여름방학이라 어린이들로 북새통. 우리 어렸을 적에는 알몸으로 헤엄을 쳤는데, 지금은 젖떼기들도 수영복을 입고 물장구치는 게 여간 귀엽지 않구나. 이렇게 좋은 시설을 우리 어른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니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아니 어린이 천국이지. 어린이 세계에서 어린이로 되돌아간 신나는 하루.  

  날아라 아이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아이들아 푸른 벌판을....

 이 노래를 남기고, 흰 머리 백두산(白頭山) 소년 이제 난 떠난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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