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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1)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청제를 드렸으니, 이제는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내렸다. 여전히 남녀노유 가리지 않고 북적대는 곳. 코끼리열차를 타고 정문 앞까지 갔다. 여러 갈래 길이 있어, 오늘은 동물원쪽으로.

제1아프리카관. 얼룩말이 한가롭다. 얼룩 무늬가 초원에서는 경계색이 아닌 보호색이라고. 왼쪽으로 유인원관. 역시 원숭이는 대단한 인기다. 다이아나․망토 등 이름․생김새․성질이 각양각색이라 기록하기도 어렵다. 별별 재롱이 다 귀엽지만, 얄망스럽게 사람의 흉내를 내는 데는 어이없다. 저래뵈도 공동생활에 필요한 위계 질서는 끝내준다. 특히 인도네시아 톤키안 머커크라는 원숭이 사회의 다수결 원칙에 따른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두 마리의 오랑우탄이 타이어를 가지고 공중 서어커스를 하다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을 실증한 셈. 천장에 설치한 난방용 열선에, 철망 틈새로 나뭇가지를 집어넣어 불을 지핀 사고가 있었다는데, 지능이 탁월하다는 증거가 아니냐며 연구진을 흥분시켰다고. 며칠 전 태국 동물원에서 침팬지 도도가 새끼 호랑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가 하면, 서아프리카 침팬지는, 죽은 새끼의 미라를 두 달씩이나 들고 다니고, 아프리카 잠바비아에서는 죽은 새끼를 업고 다니는 것을 촬영했다는 보도도 있다. 죽음을 대하는 동물들의 다양한 태도가 흥미롭다.

웬일로 침팬지가 보이지 않아 고릴라에게로. 영화 킹콩에서 본 해골섬의 전설적인 야수 킹콩이 저런 고릴라를 모델로 하는 것일까? 그러나 영화처럼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으며, 한국에서는 저 고릴라가 유일하다고. 이런 유인원을 바라볼 때마다 진화론이 궁금하다. 최근 남아공서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가 고대 인류 호모로 진화하는 연결 고리의 가능성이 있다고 학계의 논쟁이 일었다. 인중 안에 혀를 모으고 한쪽 볼을 긁으며

“어이, 자네가 우리 조상인가?”

하였더니, 시러베아들 다 보았다는 표정으로

“저 사람같은 원숭이 좀 봐...또 심심한 모양이구먼.”

“진화론자들이 그렇게 주장하거든”

“그렇다면 조상 대접 해줘야잖아?”

“.............”

“우린 그런 거 관심 없다구. 그 바나나나 주쇼!”

철망 밖으로 불쑥 손을 내민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저 놈들 후손이라니 마음 내키지 않는다. 앞으로 또 몇 백만 년 후에도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고 낳고 할 것 같다.

그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사자에게로. 아이들이 고함을 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모습이 과연 백수의 왕 답다. 아이들의 관심은 호랑이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 것인데, 아빠들은 모두 사자편이다.

“전하, 호랑이와 겨루면 누가 이기시옵니까?”

“에헴, 2008년 전주 동물원에서 한판으로 이긴 걸 모르나?”

그 때는 10Kg 짜리 암호랑이와 110Kg짜리 숫사자의 대결이었다.

“동물원 수의사․사육사의 말은 다르옵니다. 2부 리그 수준이라는데요.”

“무엄하도다. 저리 물렀거라!”

야생 세계는 변수가 많아 정답이 없다고 한다. 호랑이들은 홀로 떨어져 살고, 사자는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사자가 유리하지 않겠냐는 대답 뿐. 실제 유도로 치면 곰이 ‘효과’하나 따고 들어가는 모양새라고 하며, 사자․호랑이가 함께 하마한테 덤벼도 꼼짝 못한다고도 하고, 악어나 코끼리에게도 진다는 것이다. 이런 땐 우렁차게 사자후라도 해야지 도무지 점잖기만 하다. 그런데 사자후(獅子吼)란 원래 불교에서 부처님의 한 번 설법에 악마가 굴복하여 귀의함을 비유함이라 한다지.

“할아버지, 사자가 호랑이한테 자전거를 주면서 하는 말이 뭐게?”

“.............”

“타, 이거!”

요 녀석 봐라. 손주의 넌센스 퀴즈에 번번이 당한다. 옆에 있는 유모차를 가리키며

“타, 이거!”

했더니 싱거운 사람이라고 노려본다.

“타이거씨, 곶감 무서워 도망갔죠?”

“이런 호랑이 물어 갈 놈 보게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라면서 대꾸 않고 일어서는데, 아닌게아니라 위압적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멸종이 됐으며, 이 시베리아 호랑이는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수놈 팬자와 암놈 로스토프를 들여왔다고.

반달곰에게로.

“어이, 반갑네 그려!”

“...........”

듣는 둥 마는 둥 발바닥만 핥고 있다.

“피임하지 말고, 새끼 좀 많이 낳게나. 양육비 걱정은 말고....”

토종인데 멸종 위기라니 아쉽다. 다행히 지리산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가 10년만에 성공적이라는데, 지난 2월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나는 과정이 동영상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산한 한 마리를 어미가 먹어치우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그대로 두면 냄새로 인해 천적에게 노출될 우려 때문이라니 지혜롭구나. 그 후 8월에 생후 8개월 된 새끼 두 마리를 또 야생으로 보내었는데, 어미 으뜸이가 식음을 전폐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하이에나. 요놈이 날 닮은 건지, 내가 요놈 닮은 건지. 맹수들의 먹다 남은 고기 찌꺼기를 먹고 산다니까 말이다. 밥상에 남은 음식 깨끗이 치우고, 누군가 어질러 놓은 거 치우는 일이 내 몫이니, 난 하이에나 팔자로 태어났지.

“안녕!”

“누구세요?”

“어렸을 적에 한 번 만났잖아?”

“글쎄. 혹시 내가 개인 줄 아는데, 나 늑대예요.”

늑대! 어렸을 적에 산에서 만났지. 외숙모 마중가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 그런데 산속에서 웬 개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게 아닌가? 숯 굽는 아저씨들 도움으로 무사하게 돌아왔지만, 그 게 늑대라는 것. 말로만 들었으니 늑대를 봤으랴. 하마터면 큰 일 날뻔했다고.

“네 엄마는 누구야?”

“개”

“그럼 아빠는?”

“늑대.”

“히야! 희한하다”

2006년 수컷 늑대 귀의 체세포에서 핵을 제거한 후, 개의 난자에 이식하여 수정난자를 얻어,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스눌프와 스눌피 2 마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로 보고 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지. 그러나 아쉽게도 스눌프가 사인을 알 수 없이 폐사했는데, 그 후 몽골에서 들여온 늑대와 자연 번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 한다. 성공하길....

아이들이 많이 모여 깔깔대는 곳에 가니까 코끼리다. 덩치 큰 녀석이 응가하는 모습이 그토록 재미있단다. 그런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코끼리의 발통 갯수가 서로 다르단다. 상상(想像)이란 말이 견골상상(見骨想象)에서 나왔다는 군. 그 옛날 중국에서 코끼리가 거의 사라져버려, 그 뼈를 구해 상상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象이라 말한다’하여, 想象이 곧 想像이 되었다는 이야기.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띄는 기린에게로. 역시 아이들에게 인기다. 속담에 ‘성현이 나면 기린이 나고, 군자가 나면 봉황이 난다’고 했다.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면 기린․봉황이 나타난 것처럼 상서로운 일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그 기린은 이 기린이 아니고 상상의 동물이라고. 곧 사슴의 몸, 말의 발굽, 소의 꼬리, 온 몸이 영롱한 비늘로 덮여 있으며, 살아있는 풀이나 벌레를 밟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란다. 그런데 그 기린은 공자가 태어날 때 옥서(玉書)를 토하여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임을 암시했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기린은 공자를 가리킨다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동물원은 좁은 창경원이었다. 구경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84년에 이 넓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왔다. 그 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세계적인 공원으로서 발돋움 하리라 믿는다. 동물의 왕국이여, 날로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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