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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소미 Oct 26. 2024

10. 나의 첫딸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나의 분신 첫딸이 태어났다. 친정아버지는 "네가 인형을 좋아하더니 살아있는 인형이 생겼구나!" 하셨다. 딸하나를 키울 땐 옷도 나랑 세트로 입히고 정말 이쁘게 키웠다. 친정아버지께서 아가씨 때는 그렇게 멋도 잘 부리고 살던 애가  아이 키우느라 새장 같은 아파트에 갇혀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나를 안쓰러워하셨다. 결혼 후 마른 나를 걱정하시고 부모님이 함께 오셔서 지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데리고 가셔서 비싼 보약도 지어주셨다. 한의원에서도 결혼 후에 내가 결혼 전에 안 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더하니 몸이 이겨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해삼도 좋다고 수시로 싱싱한 해삼도 사다 주셨다.


  그래도 다행히 나의 역량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키우기 수월하게  잘 땐 잘 자고 먹을 땐 잘 먹고 하나 알려주면 열을 하는 순하고 영특한 아이를 주셨다. 언어능력도 좋아 말도 굉장히 빨리했었다. 어릴 때 콘도 갔을 때  엘베이터에서 안에서나, 전철에서 마주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네가 이뻐서 너 보느라 못 내렸다, "라고 이야기하실정도로 귀엽고 예뻤다. 길거리 캐스팅을 받아 어렸을 때 아기모델도 했다. 그냥이라도 찍어서 남기고 싶은 예쁜 사진을 모델료까지 주며 사진을 찍어주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했다. 몇 번 하다가 어린 딸의 컨디션 좋을 때를 기다려주는 여러 명의 스텝들도 신경도 쓰이고 아이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설사 미래에 딸이 연예계의 길을 걷고 싶다 해도 그건 딸이 커서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했기때문다. 그 이후 한 번 더 길거리 캐스팅 제의가 있었다. 첫딸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이웃집 사람들과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에 갔는데 내가 화장실간사이에 같이 아이를 데리고 갔던 엄마가 쫓아왔다. 가보니 우리 아이들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정중히 거절했다. 다른 아이들 다 놔두고 우리 아이들에게만 제의가 들어오니 기분은 좋았었다. 그러나 연예인이란 직업이 특별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므로 부모가 자기 결정권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장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두 아이는 정확하게 둘 다 출산예정일에 태어났다. 몸무게도  3.2kg, 3.5kg 정상으로 태어났다. 첫아이는 시댁에서 시아버님 병간호하다가 예정일 전날 친정으로 보내주셔서 친정에 가자마다 다음날 낳았다.


  임신하면 배만 볼록했다가 빠지는 스타일이고 아픔을 잘 참는 편이라서 그런지 친정엄마아버지와 산통이 있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직 아이 나올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집에 갔다가 산통이 좀 더 규칙적으로 올 때 다시 오라 했다. "집에 다시 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같이 간 엄마가 "아니다 네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 보면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다"하셔서 엄마말을 듣고 병원에 있다.  네 시간 반 만에 아이가 나왔다. 남편은 애들 컸을 때 사람들한테 농담으로 내가 애도 잘 난다고 했다. 진통시간이 긴 건 더 힘들겠지만 네 시간 반이라도 엄청난 고통의 산고는 다 겪는 거라서 그 말 들으면 서운하다. 친정아버지는 본인이 아이를 낳아본 것 같이 아기를 낳고 나온 나에게 "굉장했지!"라고 말씀하셔서 위로가 되었다. 남편은 와서 딸을 보고 딸이 자신한테 윙크를 했다고 좋아하며 시아버지가 계신 시댁에서 와서  바로 다시 갔다. 가기 전에 아이를 낳고 나온 나를 처음 보고 고생했다라든가 힘들었지라는 말도 안 하고 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언니가 같이 있었는 줄 알았다고 이해되지 않는 말을 했다. 옛날사람이라 주위 눈치 보고 표현 못하는 성격이 있긴 해도 꽃다발도 없이 그렇게 햐 잘못된 행동을 한 남편은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시아버지도 위중하신 건 이해하지만 시댁에는 어머니, 아주버니, 형님 다 있는데 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 그러고 바로 간 것도 서운했고 딸을 낳아서 나중에 딸이 나와 같은 산고를 겪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남편이 시댁으로 간 후 바로 위의 언니가 병원에 남아 좌욕하는 것도 도와주고 남편이 해야 될 일을 해주었다. 결혼하기 전이었던  언니가 아기난 나의 뒤처리를 해주느라 처음 보는 장면들로 속이 울렁거려 밥을 못 먹으면서 며칠을 해줬다는 것이 미안해서 기억이 난다.


  시댁에는 아들들이 많아서 딸이 귀했기에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아들 낳아서 네가 좋지 뭐"그러 실정도로 아들딸에 크게 신경 쓰시지는 않았다.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도 남편은 아들을 낳았다고 남편회사로 전화한 언니에게 나랑 아들이 건강하냐고 묻고 일을 다 보고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당시 아랫직원 누나도 나와 같은 날 아기를 낳아서 그 직원은 누나 병원에 갔는데  우리 남편이 안 간걸 특이하다듯이 나에게 말해줬다.  남편은 내가 아기 낳으러 병원 간다고 연락을 하고 갔는데도 일을 다 보고  온 거다. 이때부터 내가 생각할 때는 남편이 가정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가정보다 회사일, 다른 사람을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여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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