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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Sep 26. 2022

다정함이 메꾸는 기억

인터뷰어 은빛 / 포토 콩알



* 성균관대 모닝글로리 양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양희님과 모닝글로리를 늘 다정함으로 기억한다.

책갈피나 편지지를 꼭 두어 장씩 챙겨주셨고.

어떤 날은 아이 손만 한 다이어리를 학생들 가져가라며 문 앞에 놓아두시기도 했다.

그 다정함이 나를 이끌었다.



학생들, 여기 커피 마시면서 얘기해요. 가끔 대화하러 오는 교직원들이나 학생들 있는데, 그럴 때마다 커피를 줘요 내가. 문구점 일이 이래서 좋아. 매번 다양한 학생들을 보니까 그게 참 재밌는 거예요. 법대생이나 행정고시 보는 학생이 주로 기억에 남아. 이 학생들은 특히 펜에 엄청 민감해. 펜 하나를 고르는데 1시간 반이 걸릴 때도 있고, 어떤 학생들은 펜을 앞에 놓인 것부터 맨 끝의 것까지 다 써보기도 해요. 처음에는 왜 저럴까, 의아하면서도 약간 스트레스더라고. 나도 이해를 못 했어요. 근데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중요한 거야 그게. 고시 공부를 하면 10년 가는 경우도 많잖아요. 펜을 한 번 쓰면 그것만 사용하게 되고, 시험 볼 때 징크스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고. 한 3~4년 지나고 나서야 이해했어요. 이해하고 나니까 내 마음도 편해지고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학생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다 잘돼야 하는데, 바랄 뿐이죠.


전산용품이나 잉크 같은 것들은 계속 모델이 바뀌니까 오래되면 쓸모가 없어져 버려요. 처음엔 오래된 물품들을 전부 쌓아 두었어요. 도저히 못 버리겠는 거야. 아까워서, 또 누가 찾을까 해서. 근데 재고가 쌓여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답답한 거 있죠. 그래서 어느 날 마음먹고 하나 둘 버렸어요. 내 것은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살면서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꼭 있어.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걸 늦게 깨달았어요. 친구들이 참 많아요 제가. 좀 나대는 성격이거든요. (웃음) 처음엔 친구들이 많은 게 좋은 줄 알았어. 그래서 아끼는 친구와 멀어지면서도 여기저기 오지랖 부리며 잘 다녔어요. 근데 정작 중요한 순간엔 남아 있는 친구가 많이 없더라고요. 참 외롭더라고. 나이가 들어 이런저런 일들을 거치면서 깨달은 거야. 내가 여러 사람들 만나며 동시에 잃고 있구나, 하는 걸. 그러니까 혹여 내 정성을 몰라주는 친구가 있다면 조금씩 끊기도 해야 해요. 반면에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한테만큼은 진심을 다해주는 거죠. 그게 사람 관계인 것 같아요.


성대에 2002년도 월드컵 때부터 있었어요 제가.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을 보냈네요. 오랫동안 학교에 있다 보니 아는 얼굴이 많다는 걸 실감해요. 한 번은 재계약을 하러 자연과학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는 직원이 4분이나 계신 거야. 교직원들은 캠퍼스끼리 서로 로테이션을 하며 근무하거든요. 명륜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을 수원에서 오랜만에 보니까 좋더라고. 그리고 그때 많이 느꼈어요. 내가 정말,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걸. 좁은 세상에서 누굴 어떻게 만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성대에서 20년을 지내면서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 우리 학교 벚꽃이 참 예쁘다는 거. 특히 도서관 올라가는 길에 피는 벚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꽃 핀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학생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더라고. 근데 가끔은 어딘가 힘들어 보이기도 해요. 그게 참 안타까울 때가 많죠. 난 우리 학생들이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어요. 남 눈치 보지 말고. 겁이 나서 못한 것들이 많거든 나는. 근데 지나고 보니까 후회되더라고요. 왜 참고 망설이기만 했을까, 그냥 아쉬움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주저하지 말고 뭐든 했으면 좋겠어. 지금 나이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면서 살아봐요.



인터뷰 당일의 기억은 감각으로 남아있다.
라디오 소리와 커피 냄새.

라디오가 나지막이 틀어져 있었다. 모닝글로리의 오전은 이런 모습이구나, 처음 알았다. 언뜻 들려오는 음악이 마치 대화를 메꿔주는 비지엠 같아 좋았다.

양희님은 따듯한 커피를 건네주셨고, 깊은 향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온기에 민감한 나는, 커피를 쥔 따듯함이 꼭 잊히지가 않는다. 사람의 다정함이 그리울 땐 그 날의 대화가 떠오른다.



인터뷰어 은빛 / 포토그래퍼 콩알

2022.02.24 모닝글로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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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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