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고마운 콤플렉스
“어떻게 세계여행을 하게 됐어요?”
휴가차 오신 단기 여행자들 사이에 나의 여행이 주는 이질감 때문인지, 세계 여행이 주는 궁금함 때문인지, 다른 여행자분들께 나의 조금 ‘긴 여행의 이유’를 말씀드릴 일이 많았다. 여행 온 자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떠난다는데 일주일도 아니고 2년씩이나 해외에 나와 있는 나의 모습을 보시곤 분명 2년짜리 이유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기대와 궁금증이 가득 찬 눈들을 앞에 두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냥 ‘콤플렉스’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충북의 한 시골 마을 진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들과 천렵을 하며 놀았다.‘천렵’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지만, 직장인 만큼이나 바쁜 요즘 학생들과는 달리 초등학생 때 나는 방학만 되면 족대를 들고 친구들과 집 앞 하천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하천 물 높이가 많이 높지 않아서 바짓가랑이를 접고 물에 들어가서 잡다가 해가 질 때쯤이면 잘라진 페트병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전리품을 하천에 풀어주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이런 투박한 일상이 어렸을 때 나에겐 전부였고, 나의 세계는 진천이었다. 나는 그런 진천을 좋아했다.
그러던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에 하나 있던 영어학원에서 모집한 ‘호주 한 달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2000년 초반 진천에서 호주 홈스테이는 꽤나 파격적인 교육 방식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여기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부모님께 여쭤봤지만 다들 모르셨다. 약 11시간 비행을 하고 가야 하는, 당신들도 한 번도 안 가본 먼 외국에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자식을 보내는 엄청난 결단을 하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학원이나 과외도 심지어 공부도 하라고 안 하셨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고 해서 보내신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한 달간 금발의 호주 친구들을 사귀고 와서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영어가 드라마틱 하게 느는 일은 아쉽게도 없었다. 하지만 10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면서 비행기로도 10시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걸, 내 방 안에 있는 농구공만 한 지구본이 사실 정말 컸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내 마음 한편엔‘세계는 넓은데 나는 영화관 하나 없는 작은 시골에 살고 있구나’라는 조그마한 열등감이 자리 잡혔다. 그때부터 ‘시골’에서 벗어나 ‘해외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 ’‘세계를 누비고 싶다’라는 철없는 꿈을 꾸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나는 필사적으로 진천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서 1등이어도 도시에 나가면 꼴찌 한다."라는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고등학교를 도시로 나가고자 했다. 정확히 말하면 진천과 멀어지려 했다. 다행히 시골에서 어느 정도 공부는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름 공부 좀 한다는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 있었다. 입학해서 만류하던 선생님들께 보란 듯이 도시에 가서 높은 성적을 받는 걸 기대했지만 성적은 처참했다. (심지어 나는 시골에서도 1등 해본 적 없었다.)
남중에서 사춘기를 보낸 나는 반에 20명이 여자고, 남자가 4명인 반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고 여자 짝꿍에게 말을 거는 데 한 달이 걸렸으며 ‘너 사는 곳에 맥도날드는 있냐’고 묻는 도시 애들의 장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 후 잠시 방황하던 나는 내가 잘하는 걸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과 학생회장을 해왔던 나는 고등학교 와서도 반장을 하며 청주 생활과 학교생활에 점차 적응을 했다.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자 성적이 점점 좋아졌고, 친구들을 사귀며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청주가 완전히 익숙해진 나는 이제 더 큰 세상으로 가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들의 스티커로 도배하며 매일‘서울로 가고 싶다. 제발 서울로 가자’고 썼다. 이런 나의 염원이 하늘까지 닿았는지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영화관도 없는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 뭔지 모를 성취감이 몰려왔다. 멀리서 올림픽 대교가 보이기 시작하자 서울에 오면 꼭 들어야지 다짐했던 ‘비프리-My City’를 틀었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노래와 몰려오는 만족감과 함께 이렇게 나의 여행은 끝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