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도 저렇게 바뀔까?”
군입대를 앞두고 주말에 가족들과 거실에서 둘러 앉아 연예인들이 입대해서 군인 체험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때 TV에서 콜라 하나를 걸고 연예인과 일반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께서 궁금해 하셨다.
나는 콜라와 초코파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 콜라와 초코파이의 무자비한 단 맛은 먹을 때마다 나의 몸을 베베 꼬게 만든다. 먹고 나서 입안의 텁텁함과 갈증, 칼로리에 대한 양심의 가책 또한 내가 콜라와 초코파이를 공통적으로 안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요즘 군인들이 콜라 하나에 저렇게 열심히 하냐”라며 냉소적으로 답했다. 입대 후, 콜라를 두고 경쟁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예능보다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8월의 땡볕은 너무나도 더웠고, 훈련을 받으면서 달구어진 수통안의 물은 기분 나쁘게 미지근했다. 그러니 나도 눈 앞에 시원한 콜라를 먹을 수만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의 병사들처럼 목숨을 걸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하지만 훈련병들에게 제공되는 사회 음식은 주말 종교활동에서 주는 초코파이 2개와 캔커피가 전부였다.
두 개의 초코파이 마저 귀해 종교가 없는 병사들도 주말이면 부지런히 종교활동에 참여했다. 나 또한 종교는 없지만 훈련단 교회에 가면 군종 병사로 있는 친척형을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 줄에 서서 종교활동에 참여했다. 첫 종교활동 때 수 많은 빡빡이 대열에서 나를 알아본 친척형은‘조용히 교회 화장실로 오라’는 무언의 사인을 보냈다.
화장실에서 만난 형은 나에게 “훈련을 잘 받고 있냐, 몸 상태는 어떠냐, 먹고 싶은 음식은 없냐”며 안부를 물어봤다. 이 빡빡이들 사이에서 나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울컥해하며 나는“건강하게 잘 있는데 콜라가 너무 먹고싶다”라고 답했다.
형은 다음주에도 교회로 오라고 했고, 두번째 종교활동 때 형은 화장실에서 숨겨놓은 검은색 봉다리를 꺼내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 안에는 달콤한 초콜릿 과자와 캔콜라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열고 입에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훈련 받을 때 마다“콜라먹고 싶다”같이 이야기하던 동기들이 생각나서 그들과‘은총’을 나누기 위해 화장실로 조용히 불렀다.
“치이이익----탁!”
다들 숨죽이며 내가 캔콜라를 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듣는 알루미늄의 경쾌한 파열음이 빡빡이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우린 은총 받은 포도주를 음미하듯이 경건하게 한 모금씩, 형이 준 캔콜라를 돌아가며 마셨다. 6명이 넘는 인원이어서 각자 한 모금씩 밖에 못 마셨지만 달달한 검은 물이 나의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그때, 오랜만에 느껴보는 목구멍을 톡 쏘는 칼칼함과 동시에 나의 뇌에 미처 모르고 있던 미의 영역이 봉인 해제되는 것 마냥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콜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몇몇 전역자들은 야간근무를 서고 와서 먹던 라면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때의 콜라의 맛을 잊지 못 하고, 그 만큼 맛있는 콜라를 이 이후로 먹어 본 적이 없다.‘그 사이 라면과 콜라의 맛이 많이 변했나?’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변한 건 편한 것에 다시 익숙해진 내 자신이다.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하고 나서, 그 다음 내가 결정해야할 건‘어디로’였다. 한국은 약 20여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고, 나는 그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 나라를 선택해야했다. 체결국들의 리스트를 보다, 유독 눈에 띄는 한 나라를 발견했고, 보자마자 나는 이 나라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칠레
고생길이 훤한 저 이름, 시차 12시간 지구반대편의 남미, 체결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보도 없는 나라.
“칠레 위험하지 않아?”“칠레 워킹홀리데이가 있었어?”“왜 하필 칠레야?”라는 주변의 우려와 궁금의 답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많고 많은 워킹홀리데이 나라 중에 고생길이 뻔한 칠레를 선택한 나를 보고 질문하던 주변사람들에게“그냥 원래 고생하는걸 좋아한다”고 대답했지만, 정확한 대답은 칠레에 가면 내가 또 어떤 단맛에 익숙해져, 놓치고 있던‘소중한 단 맛’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 같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별다른 고생 없이 자라온 나는 앞으로 고생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놓일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깨닫지 못하는 나는, 내가 놓치고 있었던 단맛들을 평생 놓칠 것이 분명했다. 또 나는 옛날부터 머리가 나쁜 편이라 몸으로 배우는게 편한 편이었다.
그리고 고생한 만큼 배움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가 ‘고생하기에(?)’딱 좋은 시기였다. 그 뜻 깊은 고생을 시켜줄 나라는 워킹홀리데이 협약 체결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남미이자, 스페인어 사용국인 칠레가 제격이었다.
시급이 3천원 밖에 안되지만 지구 반대편 있는 칠레는 분명 시급으로 계산할 수 없는
‘단 맛’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 정보도 없는 미지의 영역인 남미에 나를 내던지면, 또 다른 잊지 못할 단맛을 느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부푼 기대를 안고 2018년 2월 13일, 칠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