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생활 및 주의사항 등
내가? 폐쇄병동에? 그 정도인가...
처음에 교수님이 입원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실 때 딱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 어느 정도 정상이 아님은 이미 이전에 다닌 개인병원에서의 검사 결과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살면서 정신과에, 그것도 폐쇄병동에 입원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또 웃긴 건, 그 와중에 '아~ 그럼 이제 며칠이라도 독박 육아에서 좀 벗어나는 건가?'하는 생각도 했다는 것이다.
기관절개를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정말로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생활이다. 어쩌면 감옥도 이런 감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내 아이니까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터진 코로나까지. 절대로 걸리면 안 된다고 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정말 이보다 더 조심할 수는 없는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나의 병은 심각해져 갔던 것이다. 늘 긴장하는 생활 덕에 내 몸의 자율신경은 전부 밸런스가 깨져있었다. 조울증은 심해질 대로 심해져 우울상태가 아주 깊게 와버렸다.
입원 수속을 하면서 놀랬던 건, 내가 입원치료를 권유받았던 당일엔 자리가 없어 바로 입원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세상에 마음이,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놀라면서도 뭔가 모르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별나서 이렇게 아픈 건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토닥토닥해주는 거 같았다.
입원 날짜가 되어서 짐을 싸고 아이를 맡기고 병원으로 갔다. 내가 들어갈 자리의 환자가 퇴원을 해야 내가 입원할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렸다. 저녁 늦게 병동으로 올라오면 된다는 연락을 받고 올라갔다.
진짜 폐쇄병동이네...
떡하니 버티고 있는 철문을 보고 든 생각이다. 벨을 누르니, 간호사가 나왔다. 함께 들어갔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대서 갈아입었다. '나 진짜 환자구나...' 그제야 때아닌, 현실 파악이 되었다.
나 많이 아프구나.
나 많이 힘들었구나.
왜 그동안은 몰랐을까. 아니, 외면했을까. 진즉 힘들다고 했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간호사들은 짐을 살폈다. 유리병으로 된 화장품은 반입이 안 된다고, 보호자가 다시 들고 가야 한다고 했다. 신발도 내 크록스엔 파츠가 많이 달려있어서 안 되고, 병원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고 그래서 신랑에게 들려보냈다. 핸드폰 반입도 안 되었다. 핸드폰 없이 어찌 살라고!? 싶었는데, 있어보니 또 있어지더라는.
입원생활은 이렇더라고요
처음엔 핸드폰을 못 보는 게 제일 불편할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의외로 씻는 게 제일 불편했다. 샤워실은 하나였고, 한 사람이 사용하면 30분간 환기시키는 텀을 갖은 후에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러니, 이게 생각보다 눈치 싸움이 장난 아니었다. 처음엔 일찍 일어나면 씻을 수 있겠지 싶어서 일찍도 일어나 봤는데 이미 샤워실 앞에 바구니가 2개나 있었다. 점점 눈치가 생겨서 사람들이 잘 안 씻는 시간대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일단 샤워실 앞에 바구니가 없으면 내 바구니를 갖다 놓는 센스까지도 생겼다. 그런 시간까지 합치면 샤워시간이 1시간이 훌쩍 넘어버리지만 솔직히 상관이 없었다. 폐쇄병동에서는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먹는 거였다. 당시 나는 거식증 마냥 먹는 대로 토해대서 잘 못 먹는 상태였다. 그런데 때가 되면 먹어야 되니, 그게 가장 힘들었다. 정말 한 두 젓가락 깨작거리고 나오곤 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먹는 것을 거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프니까 그렇게 되더라. 그때는 평생 이러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약이 나에게 잘 맞춰지고 나니, 세상 입맛이 그렇게 돌아올 수가 없었다. 못 먹어서 빠진 살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제일 좋았던 건 핸드폰이 없는 거였다. 사실 엄청 불안할 줄 알았다. 사전에 중요한 지인들에게는 현 상황을 말하고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전하긴 했다. 그래도 혹시 중요한 연락을 못 받을까 봐 처음엔 엄청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딱 하루였다. 이틀째부터는 나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생각 외로 너무 좋았다. 외부로 연락을 할 때엔 병동엔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이것도 사실 눈치싸움이긴 했는데, 어쨌든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자유로울 줄 누가 알았을까.
정신과 폐쇄병동도 그저 병원일 뿐
처음엔 그렇게 좌절스러웠는데, 막상 다녀와보니 정신과 폐쇄병동도 그저 병원일 뿐이었다. 많이 아픈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는 건 당연한 것처럼 똑같았다. 물론, 세세한 부분들이 다른 과 병동들과 조금 다를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침대와 침대 사이에 커튼이 없다는 것, 병실 문에 창문이 있다는 것 등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픈 곳이 낫기 위해 오는 곳이고 똑같이 매일매일 아침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