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윤규 Nov 04. 2023

전역 후 일주일

길의 재정의


전역하고 약 1주일이 지난 지금,


내 소감과 기분을 가볍게 풀어보고자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사실 대부분 말하듯 큰 감흥은 없다. 휴가도 많이 나왔고, 일상의 우선순위도 마찬가지고, 다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가 그뿐? 너무 행복하거나 너무나 자유롭다는 이런 느낌은 아닌 듯하다.


대신 그 시간적 여유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사고들이 나오고 있다.


한 4월~ 5월 정도는 생각이 정말 많은 시기였다. 이제 딱 병장을 달 시기가 되면서 전역을 상상하게 되고,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을 계획함과 동시에 작년부터 진행하던 전시가 딱 정체기를 맞으면서... 그냥 정말 내 사고의 임계치를 훌쩍 넘을 만큼 무언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너무나 불안했고, 심적 공간마저 나를 옭아맸다.


허나 요즘은 좀 다른 느낌의 사고이다. 시간은 많고 그렇게 원했던 자유로운 시기가 막상 다가왔으나, 평소 그리 간곡히 기대하던 내 삶의 모습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진 만큼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의 밀도가 그다지 크지 않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더라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고, 그 여백을 메꾸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아직은 떠오르지 않아 그 시간이 부유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 사실 이건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았었다 생각하는 시절의 밀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이상의 밀도를 넘어서면 그땐 자유가 자유가 아니게 된다.




요즘 내 삶의 형태는 인센스와 비슷한 것 같다.


너무나 향기롭다.


이런 향수를 언제 느껴봤다 싶을 만큼 내가 원하던 향을 내 삶이라는 공간에 메우고, 찬찬히... 또 여유롭게 피우며 스멀스멀 떠오르는 연기를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고와 함께 바라보고 있다. 스틱이 스근히 타는 그 일정한 시간에 발맞추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마지막 재가 떨어지는 순간까지 그 일들을 마무리 해나간다.


연기가 더 피어오른다고, 재가 더욱 빠르게 떨어진다고 내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삶의 템포는 그저 저마다 다르게 일정히 흘러간다. 아무리 빠르게 하려고 한들 그만큼 후일의 체력이 떨어질 뿐이고, 아무리 돌아가려 한들 그만큼 뒤에 해야할 일들만 쌓일 뿐이다.


그렇게 주제에 맞게, 분수에 맞게, 그 템포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더욱 절실히 배우며 느끼는 중이다.


어차피 이 시대에 이 나이대에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은 비슷할 거라는 것 또한 느끼면서 말이다.


클리셰처럼 자기만의 길을 가야 한다 말하는 요즘, 그 '자기만의 길'이라는 것을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지만을 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사이드 미러를 보며 동행하는 차량이 얼마나 가까운지도 보고, 백미러를 보며 누가 나를 바라보며 따라오고 있는지도 보고, 앞선 차량을 보며 나의 속도는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며 주변 세상을 다시 한번 보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디든 이어진 도로 마저 제한 속도가 있는 세상에,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다다르기 위한 그 길 위에서 견딜 수 있는 지정 속도 또한 존재할 것이다.


누구보다 조심하고 차분히 달려야하는 골목길부터,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까지. 상황에 맞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려야 한다.


제주도를 가보니 지정 속도만 지킨다면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지정 속도만 지킨다면 단 한 번의 정차 없이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단 한 번의 과속 딱지와 단 한 번의 주정차 단속 딱지를 받지 않는 삶을 위하여.


전역했으니 평소 생각하던 것처럼, 주변인들이 표현해주던 것처럼, 함윤규의 세상을 열자.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에 세상을 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