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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Sep 19. 2023

[코로나 특별편] 격리 중환자실 구름빵 간호사 에피소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나가며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많은 보람이었습니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나가며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많은 보람이었습니다(격리 중환자실 구름빵 간호사 에피소드)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간호사들이 하는 역할들을 사회가 잘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든: 안녕하세요! 선생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구름빵: 반갑습니다.



이든: 인터뷰에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구름빵: 저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4년 차 간호사 구름빵 간호사입니다.



이든: 선생님께서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이 추가로 생길 때 파견을 가셨다고 들었어요. 당시 새로 생기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지원한 이유가 있나요?


구름빵: 이전에도 코로나 환자들이 증가할 때마다 병동에서는 코로나 중환자실로 파견을 갈 지원자를 모집하고는 했었는데요, 보통 파견을 가게 되는 사람들이 우선 신규 선생님들은 빼고, 그 신규 선생님들을 키울 수 있는 올드 선생님들도 빼면 남는 사람들이 이제 갓 1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위 사번 선생님들이나 동기들이 코로나 중환자실 파견을 많이 다녀오기도 했고, 저도 코로나 시기에 간호사 생활을 했으면 한 번쯤은 코로나 환자 간호 경험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오미크론 변이 때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자 파견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원을 하던 시기에는 코로나 중환자실 중에서도 기존에 존재하는 코로나 중환자실이 아니라 새로 오픈을 하는 곳으로 파견을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평소에 새로운 부서를 세팅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이든: 그렇군요. 기대했던 만큼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했을 때 소감은 어땠나요?


구름빵: 제가 근무하던 코로나 중환자실 시설이 다른 중환자실이 확장 이전을 하려고 리모델링을 했다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이전이 연기되고 임시로 코로나 환자를 위한 시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베드로 치면 20명 정도의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공간에 4명의 환자를 받았으니까 공간 자체는 넓고 쾌적했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환자 수에 비해 공간이 많이 넓다 보니 동선적으로 비효율적인 경우도 있었고, 넓은 공간이라고 물건을 집약적으로 배치하지 않았다 보니 물건이 어디 있는지라던가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요, 코로나 환자를 처음 보는 것인데 어떻게 간호하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든: 임상에서 환자만 돌보다가 병동을 세팅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다양한 고민을 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군요. 그 외에도 코로나19 환자를 보면서 느낀 점도 있을까요?


구름빵: 음... 근무 초반에 만났던 환자가 전동을 왔는데 많이 irritable 한 환자였어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환자였는데 근무 당 4명의 간호사, 그것도 1명의 간호사는 고정적으로 밖에서 spotter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까 섬망이 오거나 acting-out의 상황에서 이를 제압할 manpower가 부족했고, 그만큼 간호 필요도가 가중되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어중간한 연차가 주로 파견을 갔기 때문에, 저희 부서에서도 올드 선생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 동기들이나 저보다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이 주로 파견을 가게 되었는데요, 간호사들이 신규 때 의례적으로 올드 선생님들에게 혼나고 나서 ‘우리끼리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실제로 구현한 곳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니 기대감도 있었지만 응급상황이 터졌을 때 올드 선생님들처럼 잘 대처를 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만약에라도 환자에게 안 좋은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원인으로 일하던 사람들의 업무 미숙이 대두된다면 어떡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저도 병동에서 동기들끼리 비슷한 연차끼리 일하면 일할 때 분위기는 좋은데 연차가 낮을 때는 응급상황에 대한 부담도 생기더라고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서 선생님께서 주로 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구름빵: 코로나 중환자실이라고 일반적인 중환자실과 해야 하는 업무 자체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 중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해야 하거나, 지속해서 혈액투석기를 돌려야 하는 환자들이 왔기 때문에 환자를 직접 볼 때 주로 하는 업무 자체는 크게 이전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덥고, 답답하고, 섬세한 과정을 요구하는 술기에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점만 빼면 말이죠.





이든: 앞서 spotter 역할을 하는 1명의 간호사가 있다고 하였는데, 처음 듣는 역할이에요. 어떤 일을 하는 간호사인가요?


구름빵: 저도 종종 격리구역 밖에서 spotter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기본적으로 격리구역 내부에서 모든 물품이나 약품들을 관리하면 오염될 수도 있고, 반납이 어렵기 때문에 격리구역 밖에서 물건들을 넣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spotter는 병동의 행정적인 업무를 하거나, 신환이 오면 관련 절차들을 처리해야 하는, 일반적인 중환자실로 치면 챠지 간호사의 업무를 같이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든: 일반적인 병동이나 중환자실에는 없는 역할이네요. 주로 어떤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았나요?


구름빵: 저희는 다양한 부서에서 파견을 오고, 특히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파견 온 선생님이 spotter를 주로 맡아서 했는데요, 만약에 그 선생님들이 듀티에 없는 경우에는 그 듀티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사람이 주로 맡기는 했습니다. 주된 업무 중에 행정적인 업무를 해야 하다 보니 중환자실 간호사보다 병동 선생님이 행정적인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맡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격리 구역에 들어가는 일이 적으니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행정적인 업무가 낯설기도 하고 신환이 오면 맡아야 하는 생소한 업무들이 많다보니 기피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경우는 평소와 다른 업무를 하고 싶어 갔었으니 전자의 경우였지만요. 사실 원래 있던 중환자실에서는 어차피 신규 간호사를 키우는데도 도움이 안 되어서 파견이 보내진 상황인데, 저년차 간호사가 사실 챠지 간호사의 업무에 대해 근시일 내에 수행하게 될 일도 없잖아요. 그래서 해당 업무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코로나 중환자실에서는 연차가 비교적 낮은 간호사도 차지 비스름한 업무를 하게 되며 간호사 역할에 대해 더 알게 되어 spotter 업무가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새로운 간호사 업무 범위를 알게 되었다니 정말 인상 깊네요. 그렇다면, 코로나 환자들 보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간호와 관련해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나요?


구름빵: 중환자실 자체도 환자들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 중환자실은 더욱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환자가 불안함을 느끼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픈된 환경에 놓인 중환자실 베드에서도 불안함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은데 여러 겹으로 음압 처리 되어있는 코로나 병동에서는 오죽했을까 싶기는 하네요.

그리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부담감으로는 저희가 갔던 코로나 중환자실이 프로젝트성 유닛이다 보니 당장 다음 주에 내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었습니다. 실제로도 3주만 유지되었다가 다른 중환자실에 통폐합되기도 했었고요.





이든: 3주 만에 통폐합이 되어 간호사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구름빵: 제가 파견을 3월 중순에 갔었는데 4월 근무가 나온 상태에서 첫 주는 병동 세팅하느라 바쁘게 보냈죠. 그래서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회의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그 당시 통폐합 이야기가 나오면서 수간호사 선생님께서도 코로나에 걸리고 그 사이에 통폐합이 결정되면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가장 큰 불안감은 원래 부서로 다시 돌아가는 건지, 앞으로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궁금했죠. 결국 한 팀은 원래 부서로 돌아가고 한 팀은 통폐합된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로 가게 됐어요. 그걸 나누는 기준도 딱히 없었고 당장 3~4일 뒤 근무도 알 수 없으니 그것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감이 컸습니다. 저는 당시 통폐합된 병동으로 옮기게 됐고요.





이든: 실제로 격리 중환자실이 통폐합 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표에 변동이 많았나요?


구름빵: 네. 통폐합된 부서의 수선생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시려고 했지만, 개개인의 일정을 다 맞추긴 어렵다 보니 많이 바뀌게 됐죠.



이든: 통폐합되면서 옮겨간 곳에 적응을 바로 해야 했을 텐데, 옮긴 곳과 원래 있던 곳의 업무 통일성은 있었나요?


구름빵: 새로 간 곳에서 실무적으로 약품 투약 방법이나 사용하는 물품이 달라서 통일성은 낮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부서는 1년 정도 된 부서라서 코로나19에 대응하여 그 부서만의 루틴 업무나 매뉴얼이 있어서 오히려 적응할 때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중환보다는 경증 환자를 간호하게 해주셔서 적응하는 것이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세팅할 때보다 여기서 마음은 더 편하더라고요.





이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네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구름빵: 열악한 manpower와 비교적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나가며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많은 보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일 각 코로나 병동과 중환자실의 환자 현황을 집계하고 수합되어 우리나라의 코로나 현황판이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다 보니, 어쨌든 내가 국가적인 주요 사업의 구성원이 되어있구나라는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든: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일도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구름빵: 저희 코로나 중환자실에 처음 왔던 환자가 irritable 해서 손이 많이 갔는데, 섬망이 와서 acting-out을 했을 때 사람들이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옆에도 다른 환자가 새로 입원해서 바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A-line도 뽑아버리고 HD Cath로 뽑으려고 하면서 난리를 치는 상황이었거든요. 인계 시간이라서 당시에 그나마 간호사들이 많은 편이었는데도 진정이 안 되어서 다른 처치를 하러 온 인턴 선생님도 함께 환자를 붙잡고 있었고, 심지어 수선생님도 격리복을 입고 들어와서 함께 환자를 holding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환자가 제 팔을 깨물려고 하는데 수선생님이 ‘선생님 조심하세요’라고 하면서 분리를 시켜줘서 다행히 팔을 지켰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이든: 인계 시간이라 그나마 간호 인력이 있는 편이었지만, 근무 중 4명 밖에 없을 때는 응급 상황 때 굉장히 힘들겠어요.


구름빵: 네 맞아요. 근무조 당 간호사 대 환자 수의 비율은 1:1이지만, spotter를 제외하면 격리구역 내에서는 3명의 간호사가 4명의 환자를 보게 됩니다. 세팅하느라 지냈던 중환자실은 베드가 적어서 간호사 팀도 적기 때문에 한 근무 시간 당 간호사가 적었어요. 통폐합되어 옮겨간 곳은 베드가 많다 보니 근무조 당 간호사가 거의 2배 넘게 많았는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비슷해도 응급 상황이나 중환 간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간호사들이 많으니 업무적으로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간호사가 적은 곳은 내가 돌보는 환자도, 동료 간호사가 보는 환자도 응급상황이 동시에 생기면 정말 대처하기가 힘듭니다.




이든: 정말 공감되는 말씀이네요. 이 전 근무지와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 겪고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구름빵: 개인적으로는 한 부서에만 있는 것 보다 잠깐이라도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업무수행 방식도 보고 하니까 어떠한 업무수행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원칙에 합당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우리 부서에서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만 집중을 했다면 이제는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에 대해 더욱 생각하면서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부서 선생님들과의 친분도 쌓여서 더 간호라는 업무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점도 있고요.




이든: 간호사의 부서 이동의 장점이 되는 부분이네요.


구름빵: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본 병원에서는 코로나 양성이 보고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코로나 병동이나 중환자실에 보내지 않고 각 병동에서 케어하도록 하는 변동사항이 있기도 했어요. 물론 동기들이 대부분 코로나 중환자실 경력이 있는 등 많은 간호사들이 코로나 환자 간호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또한 기 경험자의 입장에서 원 부서에서도 코로나 환자를 보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든: 선생님께서 경험한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의 근무 환경은 어땠나요?


구름빵: 처음에 세팅하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서는 휴게 시간이 30분 정도였어요. 일반적으로 간호사들이 평소 휴게시간이 그 정도 인데, 격리 중환자실은 장비나 업무가 과중하니 1시간을 쉬는 것이 좋다고 권고는 있었으나 중환자실이 바쁘다 보니 30분밖에 쉴 시간이 없어서 모니터링 하는 곳 앞에서 밥을 먹곤 했어요. 편하게 나와서 식사하거나 그러기에는 무전 받아주고 모니터링을 대신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나마 옮겨간 곳은 아무래도 지원 물품도 많고, 인력도 늘어나다 보니 조금 더 편하게 밥도 먹고 잠시 숨돌리며 이야기를 할 시간도 있었어요. 솔직히 예전에 일반 중환자실에 근무할 때에는 내 업무도 하기 바빠 죽겠는데 챠지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오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잔소리처럼 받아들였어요. 코로나19 격리 중환자실에서 제가 그 역할이 되어 챠지 간호사 자리에 앉아서 보니 다른 간호사들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마음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얼른 잠깐이라도 밥 먹으면서 쉬어라’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경력이 조금 더 차서도 있겠지만, 가능한 상황이면 어떻게든 밥을 먹고, 여유가 있을 때는 너무 급박하지 않게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이든: 힘들었지만 또 얻은 것도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네요. 코로나 간호사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구름빵: 솔직하게 말해서 코로나 간호사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른 간호사들과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 간호를 제공해주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든: 그 외에 코로나19와 관련되어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구름빵: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백신 패스 등으로 대표되는 코로나 방역에 대해서 이전에 너무 과한 것이었다고 하거나, 정치적인 행위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코로나가 지금은 치명률이 낮고 심한 감기나 독감 정도로 치부하지만 지난 상황들을 고려하면 전혀 과한 대응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코로나 방역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을 하였다면 인구 밀집도가 높고 의료서비스에서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더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고, 의료계에 가해지는 부하가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미래의 사람들이 코로나 시절의 방역과 정책들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든: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간호사를 어떻게 기억해주었으면 하나요?


구름빵: 물론 코로나 상황에서 간호사의 업무가 가중된 부분도 있지만, 사실 평소에도 간호사 선생님들은 충분히 힘들고 굳은 업무들을 도맡아 하고 있었고, 그러한 부분이 코로나를 통해 더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전쟁이 나야만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감사할 일이 아니듯,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간호사들이 하는 역할들을 사회가 잘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든: 오늘 인터뷰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무리 인사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구름빵: 두서없이 당시의 이야기들을 적었는데 여기까지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간호하느라 힘드셨던 선생님들이 이 글을 본다면, 그저 그때 이러한 곳들도 있었고 거기에는 이러한 고충들도 있었다고 좋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고, 가능하시다면 널스터뷰에 제보를 해주셔서 더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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