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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Sep 12. 2023

[코로나 특별편]선별&생활치료센터 모리 간호사 에피소드

코로나19관련 직무에서 다양한 고민을 가진 간호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의료 최전선에서 분투한 간호사들의 회고록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노고는 점점 잊혀 간다. 간호사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힘들게 코로나19와 싸웠을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팬데믹은 은유적으로 우리 인생의 고난기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선별& 생활치료센터 모리 간호사 에피소드)

팬데믹은 은유적으로 우리 인생의 고난기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든: 안녕하세요! 선생님. '코로나19에 맞선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에 처음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오늘 모리 선생님과 함께 생활치료센터와 선별진료소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리: 네 반갑습니다.




이든: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모리: 안녕하세요. 현재 상급종합병원 국책과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모리라고 합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코로나 기간 동안 다양한 커리어를 경험(방황)했던 이야기들이 오늘 인터뷰에서 여러분께 나눌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든: 좋습니다. 그럼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는 얼마 정도 하셨나요?


모리: 저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첫 직장에서 3년간 근무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의 일들이 잘 맞았고 조직 분위기기도 좋은 곳이기는 했지만, 학부 시절 생각했던 커리어 트랙이 사실 중환자 간호사는 아니었기에 계속 마음이 뜨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고민이 이상하게도 카페 사장이 되고 싶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퇴!사!를 선택했지만! 마침 코로나가 왔고, 창업은 고이 접어두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순환기 전담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계속되는 진로 고민을 갈 때까지 가져가 보기로 마음먹고, 우선 코로나19 업무를 경험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든: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어떻게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하시게 된 건지 궁금했거든요.


모리: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장기적으로 간호사로 경력으로 가져가고 싶은 분야가 없었고,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그렇게 퇴사를 결정하고 이후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에 단기적인 계획으로 코로나19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첫 직장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고도 음압 격리시설을 경험해 보았었고, 응급실 파견을 통해 내원 환자 선별도 얕게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감염 환자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코로나19 관련 부서에서 처음 근무했을 때 소감은 어땠나요?


모리: 코로나19와 같은 공기매개 주의 감염질환은 임상 환경에서 접해 왔었고, 중증도가 더 높은 감염질환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크게 무섭지는 않았고, 생활치료센터에 중증 환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차분히 업무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클레임 대응이 힘들다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임상에서 잔뼈 굵은 간호사라면 누구나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든: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부서에 근무하셨던 경험이 있으셔서 여러 가지를 여쭤보게 되네요. 먼저 고도 격리시설은 어떤 시설인가요?


모리: 고도 격리시설은 기본적으로 ICU 세팅이 되어 있으며 환자 베드가 1개가 있었고 음압 시설을 갖춘 독립된 공간이었습니다. 고도 격리시설은 메르스 때 만들어져 이후 중동 환자들이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는 경우 주로 운용했습니다. 고도 격리시설의 업무는 지금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을 보는 의료진들의 업무와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동호흡 보조장치를 포함한 전신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보고, 인력 로테이션상 4시간씩 음압 시설 내부 근무를 수행했습니다. 단순히 음압 시설을 갖춘 곳이라기 보단 동선이라든지 기본 세팅이 더 철저하게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든: 고도 격리시설에서 처음 코로나19를 대응 했을 때 업무 환경은 어땠나요?


모리: 코로나19 초기에는 원내 인력을 빼서 고도 격리시설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력이 충분치 않았고 간호사들의 쉬는 날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코로나19가 더 확산하면서 병원에서도 코로나19 중환자실을 더 만들었고, 다른 부서 인력 및 베드를 줄여서 지원을 해주어 점차 시스템을 더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 개인으로는 힘든 부분도 있지만, 병원 차원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관련된 수당이 정부에서 나왔는데, 기대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니었고 임상 간호사들이 고생이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근무했던 곳이 큰 규모의 병원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코로나19에 빠르게 적응하여 시설 및 인력을 갖추어 잘 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든: 그렇군요. 고도 격리시설 이후 선별진료소에 파견 갔을 당시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모리: 코로나19가 성행하기 시작하고 1~2달 동안은 응급실 바깥에 설치된 선별 진료시설에서 선별업무를 도왔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매일 새로운 혼란을 마주해야 했고, 중증 응급환자가 코로나19 선별 프로세스 때문에 진료가 늦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중환자 간호사로서 참 초조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감염관리의 중요성과 응급환자가 가지는 무게감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이든: 선별진료소에서는 어떤 업무를 주로 했었나요?


모리: 코로나19가 퍼지게 되면서 병원에 어떤 경로로 방문하는지와 상관없이 호흡기 증상, 발열 등의 코로나 증상이 있는 경우 선별진료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동 입원 예정인 환자분들께서 해당 증상이 있는 경우 선별에서 문진 및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필요시 추가로 선별 진료소에서 이동식 엑스레이 기계로 흉부 X-ray 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병동 입원 환자와 마찬가지로 외래 및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 중 코로나와 관련된 증상이 있으면 일단 선별에서 1차 검진을 시행했습니다.





이든: 증상이 있는 환자분들이 선별에 오시면 문진과 검사를 하고 선별 진료소에서 대기를 했나요?


모리: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8시간 정도 선별진료소에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응급실에 내원했는데 호흡기 증상 및 발열이 나타나 선별에 방문한 환자들이었습니다. 복통이나 중증 증상이 있는데 코로나 검사를 받고 대기를 해야 하다 보니 대기 도중 통증을 호소하거나 불편감이 있어도 선별 진료소에서 바로 처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께서 고생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난로 하나에 의지해서 새벽 내내 기다리는 환자분들께서 가장 힘드셨을 겁니다.





이든: 당시 환자 및 보호자들께서 선별 진료소에 다녀오시면 입원 시 컴플레인이 많았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얼마나 근무하셨나요?


모리: 퇴사 후 다른 직장을 거친 뒤, 구립 생활치료센터에서 반년간 근무했습니다.





이든: 생활치료센터의 근무 환경 및 업무는 어땠나요?


모리: 제가 근무한 생활치료센터는 숙박시설을 시 차원에서 대여하고, 내부공사를 통해 생활치료센터로 활용했던 생활치료센터였습니다. 제가 있던 시설에서는 5명의 간호사가 평균적으로 60명(최대 150명) 정도의 입소 환자를 관리했습니다. 경증 환자 위주이기에 의학적인 처치보다 확진 이후 생활치료센터로의 입소와 격리기간 동안의 관리, 퇴소에 이르기까지 흐름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역할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입소 초기 2~3일간 가장 증상 호소가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약물 복용이 필요한지 평가하고 중재하고자 했고,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입소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되, 유관기관 간에 규정 준수가 중요했습니다. 생활치료센터에는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력들이 상주하고 있고, 내외부로 연결되는 기관들이 많기 때문에 큰 절차와 규정을 잘 이해해야 환자에게도 매끄러운 절차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든: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코로나19 환자들을 보면서 주의할 점은 없었나요?


모리: 생활치료센터의 환자들은 경증이지만, 연령이나 기저질환에 따라 얼마든지 중증 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경험이 이러한 임상적 판단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가 의료인 중 가장 정확한 임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간호사는 임상적 경과의 맥락과 흐름을 살피는 부분에서 의사와 다른 존재 의미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임상경험이 부족한 간호사가 생활치료센터에도 오는 경우가 있는데, 부족한 경험을 배우면서 쌓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경증 환자들에 대한 중재는 병원 환경에서 익숙지 않은 경우가 있어 판단에 있어서 편향될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병원 경력 간호사들이 생활치료센터에서 많이 겪는 공통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생활치료센터와 관련된 기사를 종종 봤었는데, 입소한 환자들의 컴플레인은 많이 없었나요?


모리: 생활치료센터의 경우, 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곳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 나뉘었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이 되면 역학조사관이 역학조사를 하여 증상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거나 기저질환으로 인해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의료기관에서 맡아서 하는 생활치료센터로 갔습니다. 증상이 심하면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 외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 지자체가 운영하는 생활치료센터로 가게 됩니다. 이때 제가 근무한 곳은 성동구, 종로구 생활치료센터에서 각각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경증 환자분들이라서 그런지 활동하는데 무리가 없었고 격리 병동에 입원한 환자분들보다 생활 반경도 넓은 편이라 심각한 컴플레인이 많지 않았습니다. 생활치료센터는 주로 호텔을 렌트해서 공조 시설을 개조하여 운영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병동보다 환경은 나은 편이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택배를 요청하거나 택배 중 반입이 어려운 물품을 거르는 것 때문에 생기는 컴플레인이나 생활치료센터에서 제공해드리는 물품이 부족하여 들어오는 컴플레인이 주로 있었습니다.






이든: 그렇군요. 생활치료센터의 경우 간호사들이 환자를 어떻게 돌보나요?


모리: 생활치료센터의 경우 각각의 호실에 CCTV가 있진 않았습니다. 복도와 통로 등에는 있었지만요. 그러다 보니 환자분들과 전화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니터링 규정상 하루에 1번 살펴보게 되어 있는데 3교대 하다 보니 간호사들이 듀티마다 환자 컨디션을 살펴보았습니다. 환자가 바이털을 측정하면 전화로 바이털을 듣고 기록을 하고 환자분들의 증상에 대해 문진을 했습니다. 또 그때그때 증상이 있으면 필요한 조처를 했습니다. 약을 한꺼번에 많이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약을 올려드렸습니다. 간호사들이 하나하나 식사나 약을 배달하진 않고 생활치료센터 보조 인력들이 있어서 간호사 자체 업무 과중이 심하진 않았습니다.




이든: 생활치료센터에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모리: 생활치료센터는 거의 2인 1실로 구성되었습니다. 마침 NP 환자가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먹는 약을 관리하고 반입하는 데에 문제가 좀 있었고 같이 생활하는 환자와 트러블이 있어서 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메디컬 이슈는 간호사 및 의료진들이 해결하지만, 이렇게 운영과 관련된 문제는 보건소나 구청 공무원분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운영에 관해 조정하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또 행정 업무를 하는 부서나 근무자마다 알력 싸움이 은근히 있어서 간호사 마인드로는 NP 환자와 함께 방을 쓰는 환자 모두를 위해 2인 1실 중 자리가 남으면 1명씩 방을 쓰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방마다 소독을 또 해야 하고 운영이 번거로워 환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서로 합의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공공 서비스이다 보니 간호사로 환자의 입장을 많이 대변해서 말하긴 하지만 다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든: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곳에서 근무하셨는데 코로나19에 대응하며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모리: 많은 컴플레인과 매일 바뀌는 규정 속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환자나 민원인에게 보수적으로 대응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규정이 허용하는 권한 안에서 최대한 입소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려고 신경 썼던 것 같아요. 꼭 코로나19 업무가 아니더라도 간호사는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조금 더 신경 써서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고, 필요하다면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요구를 해야 하는 직업이죠. 규정과 작은 권한을 핑계로 삼지 않고 환자들을 살피던 좋은 선배 간호사들에게 그런 행동들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든: 이 전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했을 때와 비교하여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모리: 사실 언젠가 팬데믹이 끝난다는 전제하에, 함께 일하던 간호사들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사직이 많은 직종이다 보니, 코로나19 관련 직무에서 다양한 고민을 가진 간호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게 참 흔치 않은 기회였었던 것 같네요. 저 또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시기에 코로나19 간호사로 일하면서, 동시대를 사는 동료 간호사들의 고민과 삶을 들어보고, 제 삶에 대한 그림을 더 넓게 그려볼 수 있었어요. 이후 저는 병원 임상환경이 아닌 의료시스템과 의료기반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차세대 의료, 의료기기와 인허가, 디지털 헬스케어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간호학이라는 넓은 도화지 안에서 이리저리 방황했지만, 이제 다시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올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라는 힘들던 시간이 지나간 것처럼, 제 젊은 날의 고민도 지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든: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또 발생한다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리: 저도 생활치료센터에 근무했지만, 기존 임상 환경에서 일하던 의료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보수가 높게 책정되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도가 높지 않은 생활치료센터라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코로나19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의사와 간호사 같은 의료진의 페이 수준이 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재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방식이 장기적인 의료자원 관리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많은데, 코로나19 업무의 높은 보수가 이를 더 부추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의료인력을 관리하는 부분은 의료기관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기관에서 간호사 및 의사를 채용하게 된다면 의료진의 자격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우니까요. 임상에서 어느 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인지 알기 어렵고, 코로나19에 대응하기에 필요한 적절한 간호지식을 갖추었는지 알 수 없기도 하구요. 생활치료센터에 온 간호사들 중 제가 느끼기에 자격 미달인 경력 간호사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관절 전문 병원에서만 근무했던 사람도 경력을 인정해주어 생활치료센터 간호사로 온 경우도 있었는데, 코로나19와 같은 호흡기계 환자들을 잘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팬데믹이 발생한다고 하면 병원이나 의료기관에서 인력을 관리하고, 질병관리청과 같은 유관행정기관에서 지원, 지휘하는 구조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간호사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하자면?


모리: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몸으로 겪어낸, 또 한 명의 평범한 직업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의료진들이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저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작은 한 역할을 수행한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워낙 의미가 큰 사건을 가까이서 겪어냈고 그런 경험들이 스스로 큰 의미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히 칭송을 들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군분투하던 시간이었고, 간호사들은 간호사대로의 특별한 경험을 가진 사람- 그런 의미 정도의 일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든: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널스터뷰>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리: 코로나19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진로 고민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한 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팬데믹은 은유적으로 우리 인생의 고난기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게, 희망과도 같은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황’도 오답이 아니고, ‘포기’도 오답이 아니고, 기다리고 고민하다 보면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을 찾는 날이 온다는, 그런 의미로 저는 코로나19를 기억할 것 같아요. 아마 독자분들도 지난 3년을 돌이켜 본다면, 저와 비슷한 혹은 또 다른 의미를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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