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이 철저해서 집 밖을 못 나가는 아파트

한국을 떠나 가택연금의 길로

by 정이안
20260224_111926.jpg 저 철조망을 보면 가택연금 느낌이 낭낭하지 않은가



내가 동그마니 앉은 거실에서는 아파트 수영장이 아주 잘 보인다. 앞동과 우리 동은 디귿자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 동만 높고 다른 동들은 낮다. 그 디귿자의 가운데 부분 옥상이 수영장이다. 그곳은 층수가 우리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옥상 수영장이 너무나 훤히 잘 보인다.



저길 가고 싶다.

나가고 싶다.



일단 아파트를 드나들 때 차만 이용했더니 걸어서는 어떻게 출입을 하는지 모르겠다. 주차장과 우리 집현관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만 타봤다. 그렇다고 걸어서 통행하는 방법을 모를 수가 있나 싶겠지만 사실이다. 이곳은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곳이기 때문에 좀 괜찮은 건물들은 모두 이 모양이다. 우리 아이 학교도 걸어서 드나드는 문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스쿨버스용 차고를 통해 학교를 진입하거나 또는 학교마크를 단 차량을 가드들이 일일이 확인 후 차고를 열어주는 지하주차장 입구가 곧 학교 문인 듯 싶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건물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교문이라던가 아파트 주출입구 부분이 아예 없는 거다. 모두 차량으로 드나드는 것이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 근처에는 샤넬과 디올 등이 입점한 초고급 주상복합 쇼핑몰이 있는데 여기 또한 따로 입구가 없고 넓은 거리에 걸쳐서 지하주차장 진입로만 여러 개 있다.



우리 아파트와 국제학교, 그리고 고급쇼핑몰에 걸어서 드나드는 사람은 대개 그 장소에서 육체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이며 대부분 짙은 피부의 원주민 또는 흑인 계열 인종이다. 이들을 위한 입구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보안검색용으로 작게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까지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이 나라는 사실상 인종에 따른 계층이 나뉘어 있으며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이곳의 노예해방이 된 지 백 년이 넘었으나 과거의 노예계층은 현재도 여전히 육체노동과 가사노동에 주로 종사한다. 자본주의 체재 하에서 조금의 돈을 받는 대가로 과거의 주인계층에게 고용된 일꾼이 되어 그들 전용의 거주지에서 모여 살아간다. 그중에는 거대한 범죄소굴이 된 거주지들도 있다.






난 가십걸 Gossip Girl 같은 미드에서나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바로 집이 나오는 구조를 보았고, 그 장면들을 볼 때마다 대체 어떤 구조인가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지내는 곳이 그렇다.



이 아파트의 엘베를 설명하려면 아파트 입구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파트 입구이자 지하주차장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에는 가드가 여럿 서있는데 낮에는 보통 검은 양복 아저씨가 검문하고 오후 늦게부터는 방탄복을 입은 유사 군인 복장의 아저씨가 검문한다.



밖에서 보면 지하주차장 입구는 두 개의 철창 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왼쪽 철창 우리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고 오른쪽 철창 우리는 지하 1층으로 간다. 나는 왼쪽 철창 우리로 진입하는데, 철문을 열어줘서 진입을 하면 다시 철문을 닫고 밀폐된 공간에서 가드의 검문을 받는다. 내가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해서 낮의 보안요원들은 이제 나를 좀 안다. 어차피 동양인은 나밖에 안 보여서 외우기 쉬울 것 같다. 그런데 저녁팀 요원들은 진짜 웃지도 않고 짤 없이 차문을 열고 내부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본다.



그렇게 지하주차장을 열어줘서 지하 2층에 진입을 하면 지정자리에 주차를 한다. 그리고 많은 엘리베이터 중에 우리집 엘베를 탄다. 그 엘베는 우리 라인의 공동엘베이자 집주인들이 타는 엘베이다. 그러나 한 층에 한집만 서기 때문에 엘베는 거의 비어있다.



어 그러면 개인엘베가 아닌데 왜 지하주차장과 우리집만 갈 수 있다고 징징대는 거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호텔처럼 키를 대서 우리 층에 서는 건가?

> 아니다 키 패드가 없다.

비번을 눌러야 우리 층을 누를 수 있는가?

> 아니다 비밀번호 패드도 없다.





아주 평범해 보이죠?

한국하고 똑같이 생긴 엘베 내부이죠?



비밀은 바로 저 층번호들 자체가 비밀번호 패드인 것이다. 예를 들어 2- 11- 1- 9 -4를 누르면 우리집 층에 불이 들어오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각 집마다 자기 집에 가기 위한 비밀번호가 있다.



나에게는 이 엘리베이터가 정말 충격적이었다. 와우 너무 신기해 여기 가정집 맞나요. 빈 집에 라면하고 물만 있는 것까지 완전 이거 그냥 안가安家 아닌가요? episode 3 참고



엘리베이터 단추들이 거대한 비밀번호패드인걸 차음에는 몰랐다. 남편이 우리집 비번을 해제해 놓고 출장을 가버려서,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아무 설명도 못 듣고 우리 층만 눌러지는 이상한 엘베를 맞닥뜨린 것이다. 내가 바깥공기 한번 쐬려고 이거저거 눌러봐도 아무것도 안 눌러져서 결국 지하주차장과 우리집만 갈 수밖에 없었다. 출장 간 남편에게 연락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사람들 붙잡고 번역기로 물어보고, 청소하는 분들 붙잡고 번역기로 물어보고 해서 나는 일주일 만에 아파트 정원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옥상수영장에 이어 실내수영장까지 찾는 것은 이주일이 걸렸다. 다 엘리베이터가 달랐으며 해당 층에 도착해도 또 문을 해제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복잡하다.



밖에 나가는 게 왜 그리 간절했냐면 정말로 바깥공기를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창문은 철망으로 덮여있고, 집에서 바로 엘베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면 차를 타고 애 학교 지하주차장까지 가고, 이제 식량을 구하러 슈퍼를 가면 역시나 지하주차장으로 가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하 엘베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온다. 도대체가 햇살 아래를 걸을 일이 없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당부를 많이 들었지만 일단 밖을 나갈 방법 자체를 모르겠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 딱딱한 의자에 앉아 넓은 빈 공간을 바라보며 가택연금을 당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광활한 빈집에 대해서는 episode 4 참고.



나는 원래 지독한 집순이 스타일이라 나에게 가택연금은 휴식과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당해보니 좀이 쑤시고 답답했다. 창을 통해 푸른 하늘과 초록색 나무를 바라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느껴지고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창문의 철망 사이사이로 흰 구름과 이국적인 초록 풍경을 바라보자니 - episode 8 사진 참고 - 마치 무슨 동남아 조직에 잡혀서 밖에 못 나가고 밥하고 빨래하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 사용을 숙지한 후에는 아파트 단지를 샅샅이 돌아다녔다. 지상층을 돌아다니면서 드디어 주민들을 몇 명 만날 수 있었다. 전부 여자들인데 낮에는 집에서 내려와서 마사지를 받거나 운동을 하는 듯했다. (이 여자들의 삶은 대체 어떤 것인가?) 이들은 영어를 잘해서 덕분에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여기에는 수영장이 3개고 놀이터와 탁구장, 오락실, 트레이너가 상주하는 헬스장, 필라테스장 등이 있으며 매주 수요일에는 일식레스토랑이, 일요일에는 핏제리아 pizzeria가 출장뷔페를 오고 있었다 (출장뷔페장소를 찾는데 또 한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미용실과 마사지샵, 네일숍, 심지어 작은 무인마트까지 다 갖추어져 있었다. 작은 아파트단지이고 외부인이 못 들어오는 곳인데 어떻게 이게 다 운영이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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