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부럽다고, 심지어 누군가는 꿈이 주재원 와이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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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또 출장 갔다.
얼마만에?
출장 다녀온 후 나랑 이야기좀 하고 (응 왔어 여기 좀 앉아봐 나랑 이야기좀 해...) 다시 갔다.
아이는 하교하면 방문을 꼭 닫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그룹톡을 한다고 시끄럽다.
한국에서 쭈굴하게 지내던 재외국민 어린이는 여기 온 후로 공기가 꽉 찬 은박풍선처럼 팽팽해져서 활발하게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낸다.
다들 여기 오자마자 자기 삶을 잘 찾아 가고 있는것 같다. 아니, 아이와 남편은 일부러 찾지 않아도 해야할 일들이 쌓여 있고 매일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살아 간다.
나는
세탁실과 키친에서 일하다가 너무 더워졌다.
알고보니 실외기가 두 대나 키친에 숨겨져 있었다. 아주 저소음이다.
이 곳에서 주인들은 일을 안한다.
세탁 완료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철망으로 눈부시게 비쳐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양말을 하나하나 옷걸이에 걸었다.
건조대가 너무 높아서 벽에 있는 줄을 당겨 건조대를 내렸다.
줄 한쪽이 걸려 비뚜름하게 내려오다가 갑자기 쾅 하며 줄이 풀렸다.
세탁실 벽에 기대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쓰레기를 묶어서
고용인용 엘베를 타고 쓰레기장으로 내려갔다.
이것이 내 해외 생활의 디폴트값이다.
일을 중단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나는 별로 재미있지 않은데.
이제 내 분야에서 더이상의 승진도, 명예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50이 다 되어 다시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그 자체로 감사하게 여길 것을 안다.
하지만 감사하다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남미에서의 나날들은 착실히 쌓여서, 남편과 아이가 미래에 다른 일을 할 때에 도움이 될 자산으로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나에게는 이력서의 빈 공간이 될 뿐이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일단 글을 쓰기로 했다.
심각해지지 말고 내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자.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내 영혼의 분노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돌려 가정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고통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한 예술가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냥 갖다 버릴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탈출할 방법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게 되는가 보다.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1. 다음 빈칸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은?
--------------<보기>-------------
내 영혼의 고통으로 가족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니 ( ).
--------------------------------
1) 그지같다
2) 현실을 믿을 수 없다
3) 왜 종교에 빠지는지 알겠다
4) 정말 이럴수는 없는 일이다
5) 내가 전생에 밀정이었나 보다
출제오류입니다.
전부 다 정답처리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
한파가 휩쓸고 지나간 뉴욕을 반팔입고 간 남편은
한인마트에서 ( )을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