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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uromi Jul 09. 2023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배가 끝나면

요가를 생각하는 5월 주말의 단상

요가에 얽힌 나의 이야기,

요가를 떠올리는 나의 초심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던 건

0에 수렴하는 운동량에 대적하기 위한 단순 운동의 차원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요가를 시작했던 건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였다.

마음이 괴로우니 몸으로나마 그 빚을 덜어보고자 했던 것 같다.


많은 운동 중에서

요가가 추구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내 모든 걱정과 괴로움을 위로해주었고, 온전히 내가 설정한 목표에 따라 달성해내는 성취감이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었다. 운동이 아닌 수련에 가깝다는 요가의 신성함이 나의 내면까지 단단히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의 내 시간을 함께 채워나가고 싶은 요가가 되었다.


물론

이 다짐이 민망하게 수련 내내 잡념과 스트레스에 휩싸여 집중하지 못한 적도

다시 또 현실이 나를 괴롭게 할 때면 가장 먼저 놓아버렸기에 내 몸 안에 쌓아온 그간의 시간과 노력들에 면목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현실 속에도 나는 어느새 다시 매트 앞에 서게 된다. 잠시 멀어졌어도 나다움을 찾는 여정에 요가의 세계를 놓지는 않았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여전히 주말이 되어야만 온전히 나로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주말의 일상은 내 온 정성과 진심을 쏟는 시간이다.


쉼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나를 위한 에너지를 쓰는 것.

이토록 상반되는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음에 순간 모순적이다가도 사실 에너지의 근원적 차이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몸과 상태에 따라 필요한 에너지와 쉼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에너지는 어디에 있는가.

대개 이것은 본능과 이성의 싸움이다. 즉각적인 쾌락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것은 본능의 영역이다. 그럼 내 이성은 묻는다. 내가 살고자 한 삶은, 내가 되고 싶었던 인간상은 무엇인가.

나는 한동안 본능에 이끌려 무()로 돌아가는 쉼을 추구했다. 일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쾌락만을 만끽하며 내일을 대비하듯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에너지에 대한 갈증과 쳇바퀴 같은 삶에서 느껴지는 무력함은 다시 나를 매트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곳에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만나는 과정이었다.


오랜만에 매트 앞에 섰을 때 경직된 나의 몸과 각종 번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여러 번의 호흡과 흐르는 땀과 함께 놓여지는 근육의 긴장은 이완된 마음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나만이 알 수 있는 나의 에너지와 성장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배에 도전하는 글로벌 요가말라에 참여했다.

나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여의도 IFC몰 잔디광장 앞에 요가인들이 모여 108배를 수행하는 행사인데, 108배가 현재의 나에게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평화를 기원한다는 마음만으로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배를 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나를 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이다.


나는 건강하고 좋은 몸과 마음을 지니고 싶었고, 낭만을 잃지 않고 행복을 꿈꾸는 것, 나다운 삶을 향해 다양한 빛깔 속의 나를 깊이 있게 채워가기 위해 계속해서 수련하는 것. 그것만을 위해 나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요가를 하고, 예술을 가까이 하며

반복과 단련으로 나에게 보다 공격적으로 집중해 보려는 것이었다.


"행복은 그 자체에 요령이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조건은 큰 의미가 없다는 한 요가 선생님의 말씀.

그저 내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자체의 마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보았다. 나를, 요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108배로 향하는 시간의 열기와 열정을 깊이 새겨보았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배가 마침내 끝나고, 사바아사나를 한다.

큰 깨우침이 나를 덮쳐올 것 같지만 여전히 쨍쨍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한 켠, 그리고 기타 소리만이 남아있다.

그저 난 108배의 상징성이 주는 염원의 마음으로

지금 잘 하고 있다고, 너는 너가 되고 싶은 너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음으로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애틋한 바람을 담았던 시간이었음에 108배의 의미를 부여해보기로 한다.


또 하나 분명했던 건,

슬프게도 아직 108배는 내게 무리였다.

이튿날부터 교통사고를 당한 듯 허벅지는 불안정했고, 햄스트링이 찢어진 듯한 근육통으로 꽤 고생했다. 결국 마사지를 받으며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고, 반신욕으로 달래주며 재활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햇빛에 타서 요가 브라탑 자국대로 그을려진 피부가 그날의 추억으로 남아 있음에 또 괜히 흐뭇해지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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