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토리 May 16. 2024

영어보다 중요한 '이것'

아이를 키우면서 학습에 대한 고민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고민의 비중이 큰 것은 영어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영어에 대한 부분만 놓고보면 한때 교육 열정이 샘솟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외국어는 학습이 아닌 습득 방식으로 교육 돼야 한다며 모국어와 동일하게 듣기-말하기-읽기-쓰기 순으로 '언어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나름의 개똥 철학도 가지고 있었다. 36개월 무렵부터 하루 약 1시간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며 듣는 환경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집중해서 영상을 봤다거나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2년 반 정도 해보니 어느덧 캐릭터 대사를 외우기도 또 읊어대기도했다. 전반적인 스토리를 짧은 단어로 나열하듯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귀가 좀 트이는지 동요건 팝송이건 들리는대로 부르기도 했다. 나아가 엄마 아빠와 하는 역할놀이에서도 영어를 섞어서 하는 자신감과 아웃풋을 보여주었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방식에 확신이 생기는 순간들 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는 영상 속 캐릭터에만 푹 빠져서 대화와 다른 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6살에는 한글영상도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하루에 1시간 정도 보는 영상에 집착하는 모습이 잦아졌다. 아이는 하원길에 온통 영상과 캐릭터들 생각으로 가득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영어를 습득하게 하기 위해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불현듯 들어 당분간 영상보기를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놀이와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여기는 엄마였기에 마음 속 갈등이 시작되었다. 3년 가까이 영어노출 잘 해줘서 영어에 흥미가 생겼고, 리스닝 실력도 많이 좋아졌는데 교육전문가들이 흔히 말하는 황금기에 잘 유지해오던 것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과감히 좀 내려놓기로 했다. 하원 후 루틴에서 영상보기를 빼버리고 우리는 일단 밖에 나갔다. 동네 공원 산책을 하거나 넓은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놀았다. 낮은 산을 올라가기도 했다. 매일 철쭉이 조금씩 필때였다. 오늘은 얼마나 폈을까, 다음 날은 이만큼 폈구나. 하면서 주변 식물들 변화를 직접 보며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저녁식사때에는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는데 그냥 철쭉꽃이 예뻤어 라고만 이야기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궁금했다. "알록달록 예쁜 철쭉을 모두 뭉뚱그려 철쭉이라고만 불렀는데, 각기 다른 이름은 없을까?" 이름을 알면 우리의 대화가 풍성해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산책하면서 보이는 꽃마다 '포털 꽃검색'기능을 이용해서 꽃이름을 찾아보았다. 자산홍, 영산홍, 산철쭉, 백철쭉 각기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가시가 나있는 빨간꽃은 모두 그냥 장미인가봐 하고 지나가던 나는 이제는 하나한 검색하며 알아가는 재미도 생겼다. 아이와 이름을 찾아보며 함께 이름을 익히는 이 나에겐 재미로 다가왔다. 엄마가 재미있어하니 아이도 덩달아 함께 신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한 동안 매일 새로운 꽃을 마주할 때마다 이름을 찾아보면서 문득 "동물, 식물, 사물을 직접 보고 그 이름을 아는 것이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데 꽤나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사람의 우주는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언어세계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생각을 한번 해보자. 생각을 할 때 추상적인 도형과 형상, 소리로 하지는 않지 않는가. 즉 내가 알고있는 언어로 사고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추억을 마음속에 떠올릴 때 그려진 이미지를 내 언어로 상세히 묘사하듯설명할 수 있을때에 그 추억은 비로소 5000만 화소급으로 선명해질 것이다. 어린시절 주변환경과 사물 이름에 크게 신경쓰고 자라지 않아서인지 나의 어릴적 추억들 대부분은 흐릿하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들이 많지 않다. 


영상안보기 일주일만에 나온 아이의 변화가 하나 있었다. 온통 머릿속에 영상생각으로 가득찼던 아이는 땅에 핀 꽃들도 살피고 어떤 꽃이 새로피었는지 스스로 관찰을 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똥그란 눈을 하고와서는 하얀 민들레가 있는 줄 엄마는 알았어? 하며 신이나서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 늘 샛노란 민들레만 보던 아이가 하얀색 민들레가 신기했던가 보다. 사실 나도 하얀색민들레를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작은 양동이를 가지고 나가면서 실험을 하나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얀색 민들레에게 양동이를 씌워 놓으면 꽃잎을 오므릴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연관찰 책에서 보았던 내용을 직접 해보고 싶은 욕구도 생겨나게 되었다. 


며칠간만 영어영상 보기를 내려놓아 보자던 나는 큰 용기를 내보았다. 엄마가 주도하는 아이의 영어습득 환경을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를 말이다. 학교 들어가기 1년 전에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중에 후회가 되는 날도 분명 오겠지만 영어영상 시간에 아이와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며 우리 주변의 식물, 사물의 이름을 아이에게 많이 알려주기로 다짐했다. 먼 훗날 어린시절이 보다 선명하게 기억되길 바라면서. 시간관리는 포기의 기술이라 했다. 한정된 아이의 귀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게 현명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엄마가 되어보기로 한다. 


철쭉의 다양한 종류를 알게해준 철쭉공원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만 한 게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