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캠핑 1_2020.10.10
벌써 추억이 되려고 한다.
10여 년 전에도 주말마다 캠핑을 가고 싶은 마음에 늘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그 캠핑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지는 않았나 보다.
코로나 때문에 늘 근교 정약용 생가에 토요일 저녁마다 피크닉은 갔어도 캠핑은 생각지도 않고 살았다. 그런데 우연히 추석에 바닷가 캠핑장을 보는 순간 나도 떠나고 싶다는 맘이 동했다. 그렇게 해서 10년 전에 사모았던 집안의 캠핑 장비들이 하나둘씩 거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몇 번의 이사로 인해 장비들은 집안 구석구석에 박혀 있어서 찾는다고 찾았지만 온 전체가 되기는 어려웠고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장비들은 보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았다. 테이프로 붙이고 끈으로 잇고 그렇게 그렇게 해서 10년 만의 첫 캠핑을 떠났다.
금요일 휴일에 가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토요일 아침 남편은 출근시키고 아들과 내가 철수를 하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서울 근교에 전철로 출근이 가능한 캠핑장 위주로 검색을 했다. 카카오 맵을 열고 캠핑장이라는 검색어로 1시간 이내의 캠핑장을 검색하니 의외로 북쪽에 많은 캠핑장들이 검색되었다. 그것도 거의 전철역 바로 앞에!! 참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십여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편리함이다.
그렇게 몇 개의 후보지 중 가장 괜찮아 보이고 출근이 편리할 것으로 생각이 되는 곳, 도봉산 숲 속 캠핑장 (서울 YMCA 다락원 캠핑장)
금요일 한글날 아침, 우리는 아침에 캠핑 준비를 하면 넉넉히 점심 전에 도착하여 캠핑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캠핑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찾아놓은 캠핑 장비를 줄이고 차 속에 밀어 넣고 하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가서 먹을 음식재료들을 사모으는 데에도 생각 보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오후 네시가 다 되어서였다. 캠핑장에는 이미 휴일을 즐기는 캠퍼들로 꽉 차 있었다. ㅎ
도봉산 숲 속 캠핑장은 오래된 곳을 새로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산세도 좋았고 캠핑장도 고즈넉하고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하지만 우리는 뭐 그런 걸 즐길 세가 없었다. 텐트를 치고 사이트를 구출하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
사이트를 구축하고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라.... 저녁을 대충 데워 먹고 구워 먹고 등산로를 구경하려고 보니 이미 주변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어서 간신히 조명이 있는 등산로 초입까지만 다녀오고 다시 텐트 앞에 앉았다.
아주 많이 추운 날씨는 아녔지만 문제는 조명도 제대로 세팅되지 않은 우리의 장비 덕에 저녁 7시부터 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은 보드게임 한 가지.... 오롯이 자연을 즐기자는 마음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노트북도 배제하고 온 터라...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좀 황망해지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하는 불을 붙일 화로대도 없고 밤을 밝혀줄 변변한 조명도 없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노트북도 없고...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지 아들이 신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여의 보드게임을 마치고 피곤했던지 나는 이른 잠을 청했고 남편과 아들도 곧 연이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엄청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캠핑장 옆을 지나가는 지방 국도에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마치 청천벽력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 갑자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에서 물소리에 대한 대목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낮에는 그리 크게 들리지도 않더 도로의 차 소리가 밤이 되니 마치 청천벽력처럼 크게 들리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첫 캠핑은 청천벽력과 같은 도로 위의 차 소리를 밤을 하얗게 새웠다. 물론 거기에 추위도 한몫을 했다. 마치 그냥 도로 위에 누운 듯 들어오는 찬 기운은 소음과 함께 잠을 청하기 어려워지는 시간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출근을 시키고 철수하기로 한 계획은 전격 변경되었다. 그냥 바로 철수!
식사는 대충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일단락을 짓고 부랴 부랴 짐을 쌓다. 옆 캠퍼들은 여전히 나른한 아침 캠핑을 즐기고 있는 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엔 더 잠자리를 곤곤히 하고 캠핑장을 찾더라도 도로와의 거리를 꼭 생각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2020년 가을 첫 캠핑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벌써 이주 전인데도 기억이 아주 오롯하지는 않다. 바로바로 적지 않으면 정말 추억이 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