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1 수영
나는 운동신경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아이였다. 그래서 체육시간이 정말 죽기보다도 싫었다. 달리기도 싫었고 구기종목 시간도 싫었다. 대학을 와서 가장 행복했던 이유는 체육시간이 없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제로 운동을 강요받지 않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운동' 따위는 하지 않아도 인생 사는 것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걸까 싶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남자아이였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의 유전자를 절반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면 이 아이도 체육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두어 살이 되면서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아들은 운동신경이 좋지 않고 겁이 많은 소심했다. 남자아이는 축구나 야구, 농구도 잘해야 아이들 틈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 텐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들은 목욕탕에 가면 무서워 믈 속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물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일곱 살부터 수영 레슨을 시작했다. 수영이 한참 붐이기도 했고 전신운동으로 이만한 게 없겠다 싶었다. 근력이 생기고 키도 크고 하면 자연스럽게 운동에 대한 자신감이 붙지 않을까 싶었다. 수소문 끝에 아들과 너무나 잘 맞는 레슨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아들은 그렇게 중학교 2학년까지 수영을 했다. 수영을 오래 시키다 보니 주변에서 수영 선수 시키려고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들은 예상대로 수영에 특별한 자질이 없었다. 다행히 수영시간을 좋아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많은 아이들이 수영레슨을 받는다. 내가 보기에도 소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해마다 수영 대회를 나가면 아들은 메달 순위권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 시간 때문에 수영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나는 학원 대신 꾸준하게 수영 레슨을 받게 했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아들이다 보니 수영이라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아들은 큰 대회에서 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다. 실력도 늘었겠지만 고학년 경쟁자가 줄어든 것도 원인이었다. 아마추어 선수로서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모두 경험하고 몇 번의 수상경력과 함께 중학교 2학년 즈음 아들은 수영 레슨을 마무리하였다.
운동에 둔한 아들을 수영을 곧잘 하는 아이로 만들어 놓고 보니 무척 뿌듯했다. 아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면 멋지게 접형, 평형 자유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제대로 수영을 못하는 걸까? 그저 운동 신경이 없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젠 경쟁도 없고 누구에게 평가받는 것도 아니니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나는 2년째 수영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한번 자유 수영을 한다. 일주일에 4회씩 가서 배우는 단체 수업보다 수업 횟수가 적다. 그러다 보니 진도는 무척 더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영을 하고 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젠 자유형을 곧잘 한다. 아직 접영과 평영을 더 제대로 배워야 하지만 나는 수영 시간을 즐긴다.
나는 수영을 마스터하려는 욕심으로 수영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4개의 유영 그러니까 접, 배, 평, 자를 모두 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매주 수영을 하기 위해 레슨을 받는다. 그렇게 나는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 경쟁도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다. 물론 그게 진도를 더디게 나가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 없는 상황이 내가 수영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바를 나에게 접목시키면서 꾸준함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이제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잘하는 사람은 아직 못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이다. 내가 하고 싶어 하고 좋아서 하는 그런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 될 것이다. 나는 체육시간을 좋아하지 않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든 꼭 소질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잘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