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선호가 May 22. 2024

싸우니깐 부부?

사무실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자꾸만 주저한다. 핸드폰 전화 기록을 뒤져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침 11시에 나와 만나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없다. 근처 아무 카페에라도 갈까? 그냥 집에 갈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그만 포기하고 사무실 문을 연다. 늦은 출근이다.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 외래를 가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움직였다. 7시 반에 남편과 약속을 했지만 혹시나 늦을까 싶어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 루틴인 요가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준비를 해 늦지 않게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꼭 7시 반까지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조바심을 내었다. 그런데 1층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아직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았다. 아침 출근길이라 강남에서 신촌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고 일찍 가자고 그리 당부를 하더니만 아침밥을 먹느라 늦었단다. 당여히 이른 외래를 보고 밥을 함께 먹을 줄 알았는데 본인은 밥을 먹다 늦었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진다. 좋게 생각해야지 하는 게 그리 되지 않는다. 벌써 일 년째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고 돈을 벌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깐 아침밥 한번 늦게 먹는 게 뭔 대수라고 그 밥을 먹겠다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신촌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우리는 말이 없다. 도착하니 8시 반이다. 9시 20분 외래이니 시간이 충분하다. 나 혼자 아침을 먹기 위해 푸드코트를 둘러보았다. 별로 땅기는 게 없어서 유부초밥 하나를 사들고 남편 앞에 앉았다.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는데 남편이 앞에서 삐딱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몸을 돌리다 휘청한다. 짜증이 난다. 의자에 앉을 때 똑바로 앉으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내가 화를 낸다고 나에게 화를 낸다. 거기에다 아들에게도 이렇게 하냐고 대뜸 쏘아붙인다. 거기서 왜 아들이 나온단 말인가. 화가 나서 아들 데려다 키우라고 했다. 그렇게 잘 키울 거면... 

대학1학년인 아들은 아빠를 똑 닮았다. 뭔가 잘못을 하고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은근슬쩍 지나간다. 상대방이 섭섭하거나 화가 났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나 배려가 없다.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은 매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곤 한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때마다 싸우게 된다. 인정하지 않는다. 한참을 싸우고 나서 상황을 설명하면 그제사 사과를 한다. 평소에 그 버릇이 아프다고 달라지랴. 


몸이 아픈 남편과 마음이 병들어버린 아내의 삶은 쉽지 않다. 남편을 병원에 도로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려니 마음이 무겁다. 일하기 싫어 어딘가 가고 싶지만 우울한 나의 이야기를 또 주변 누군가에게 하기가 미안하다. 그래서 그냥 마음을 꾹 다잡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정리해 본다. 

이전 02화 모든 게 그대를 우울하게 만드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