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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20. 2022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일단 하면 된다


서른세 살에 첫째를 낳고, 2년 후에 둘째를 낳아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첫째를 낳기 전에 일을 그만둔 이후 몇 년간 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다시 일해볼 것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솔직히 그 골치 아픈 세상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아이들과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다섯 살쯤 되니까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운영하던 피부관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말에 피부 미용사 자격증 공부를 독학으로 하였다. 열 번씩 불합격한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한 번에 쉽게 합격을 했다. 집에서 지인들 피부관리를 조금씩 해주며 직업으로 연결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나랑 딱 마흔 살 나이 차이가 나는 막내딸이 나에게 온 것이다.




또다시 육아에만 전념하던 마흔네 살의 봄날, 홈쇼핑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물건을 샀다 반품했다를 반복하며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디로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돌봐야 할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게다가 막내는 아직 어리다. 새로 시작하기엔 내 나이도 너무 많다. 그래도 일단 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아보기라도 하자.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아갔다. 센터 상담 선생님을 만났지만 내가 뭘 하면 좋을지를 결정해 주지는 않았다. 일단 전에 했던 일 관련해서 구인처가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이력서를 작성하고 나오는데 벽에 붙은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보험 총무사무원 과정을 접수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 다시 가서 그 과정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4개월간 보험사 전산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는 무료교육으로 취업이 잘 되는 편이라 경쟁이 치열하여 면접을 본다고 한다. 자신은 없지만 지원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열다섯 명 모집에 두 배 이상의 인원이 지원을 한 것 같았다. 한 번에 여섯 명이 함께 들어가 면접을 보았다. 내 얼굴에 아이가 셋이고, 막내가 아직 네 살 밖에 안됐다고 쓰여 있기라도 했던 걸까. 내게 아이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나의 취업에 대해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와 상의한 적도 없는데 친정과 시댁이 가까이에 있어서 급하게 야근이 잡혀도 언제든지 아이를 돌봐 주시기로 약속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교육만 받고 취업을 할 의사가 없거나,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뽑지 않으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합격을 했다.


보험 총무사무원 교육은 30~40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교육이었기 때문에 나 같은 주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보험 관련 경력이 있는 분도 있었고, 나처럼 보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도 있었다. 보험이 어렵고 골치 아프다고만 생각했는데 배우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대부분의 보험 사무실은 국내 전 보험사 30여 군데가 넘는 곳을 다 취급하며 판매를 하는 GA (General Agency) 대리점 형태이다. 각 대리점에는 설계사를 도와 전 보험사의 전산에 접속해 전반적인 전산업무를 담당하는 총무가 있다. 총무 업무를 하기 위한 교육을 날마다 4시간씩 받았다. 그때의 나는 마치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처럼 즐거웠고,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전산 연습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들었던 것처럼 취업할 곳이 많기는 했는데, 집에서 거리가 가깝고 일찍 끝나는 곳은 대부분 나이 제한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출근 시간이 다른 곳보다 한 시간 늦은 열 시 출근인 대리점에 취업을 했다. 최소한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시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저녁 시간이었다. 오후 네 시에 하원하던 아이를 갑자기 일곱 시까지 어린이집에 있으라고 하기엔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아이 돌봄 서비스 신청을 했지만 오래 대기해야 한다고 들은 터라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언니의 지인이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아이를 봐주기로 해서 일을 시작했다.


십여 년 만의 직장생활은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날마다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설렘이 좋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아이를 봐주시던 분이 갑자기 못 하겠다고 하셔서 위기가 왔지만, 그때 정말 운이 좋게도 아이 돌봄 서비스에서 연락이 왔다. 더 운이 좋았던 건 너무나 좋은 선생님이 오셨다는 것이다. 선생님도 아이를 셋 키우며 힘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아이가 셋인 우리 집을 선택해서 오셨다는 말씀에 '간절히 원하니 하늘도 날 돕는구나.' 싶었다. 


첫 직장은 작은 개인 대리점이라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세금을 안 내서 급여 실수령액이 많아 좋다고 생각했으나 일 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최저 시급, 연차 적용 등 기본적인 법 규정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국민연금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세금을 내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른 자리를 알아봤다. 

  

지금 다니고 있는 두 번째 직장은 물류회사이다. 보험 업무를 하다가 물류회사로 이직한 계기는 대표가 보험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전에 하던 보험 업무와 물류회사 관련 사무 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전 직장처럼 많이 바쁘지 않고 갑작스러운 아이 문제로 휴가를 사용하게 되어도 정당한 연차 사용이므로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최근 2년간은 고용보험공단에 육아 단축근무를 신청하여 2시간 일찍 퇴근하면서도 기존 급여를 받았다. 덕분에 막내딸의 초등학교 1학년 시기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일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연차와 가족 돌봄 휴가를 쓰면서 버텨냈다. 어느새 이 회사에서 만 4년, 전 직장까지 합하면 만 5년의 경력자가 되었다.




혹시라도 경력단절 기간, 나이, 아이 양육 등의 많은 걱정들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의 시작은 망설임 속에 반복되던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거리를 걸으면서부터였다. 망설임은 발걸음을 늦출 뿐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자! 갈 곳이 없다면 날마다 동네 산책이라도 하자. 할 수 없는 이유 열 가지가 있고, 하고 싶은 이유 한 가지가 있다면 하는 게 맞다. 내 마음이 간절하면 할 수 없는 이유들은 다 해결된다. 일단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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