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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19. 2022

열정만으로 버티기엔 힘겨웠던 시간들

패션 디자이너로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꿈을 찾아보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답은 안 나오고 질문만 늘어간다. 나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과거 내가 했던 일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집안 형편상 대학에 보내줄 수 없다, 그러니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라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나는 별다른 꿈도 없었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졸업할 때쯤 엄마가 이제는 형편이 나아져 대학에 보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공부에 손을 놓아버린 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회사 사무직으로 취업해 3년을 일했다. 회사생활이 지겨워져 2년제 전문대학 의상학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학교에 갔다. 공부가 재미있었다. 열심히 했다.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지만 나이도 많고 피팅 사이즈가 되지 않아 면접을 잡을 기회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숙녀복 회사는 막내 디자이너가 피팅을 하기 때문에 키 163cm 이상에 55 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몸을 가진 신입사원을 원했다. 취업을 보류하고 디자인 연구원을 6개월 수료하고 백화점에서 남성복 판매 아르바이트를 6개월 정도 했다. 안 그래도 늦은 나이에 1년을 더 허비한 후에야 내가 적극적으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보니 내가 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내 디자이너로서의 첫 직장은 청담동에 있는 부띠끄였다. 의류회사 경력이 있다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어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원부자재 시장에 직접 다닐 수 있는 막내 디자이너를 원했는데 내가 전 직장에서 원부자재 관련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1층에는 매장이 있고, 2층에는 디자인실, 3층에는 자재과, 4층에는 공장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옷이니 만큼 외주 공장으로 돌리지 않고 자체 공장에서 소량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의 막내 디자이너는 온갖 잡일을 다 한다. 책상에 우아하게 앉아 그림을 그릴 일 따위는 없었다. 주로 동대문 시장이나 광장시장에 원부자재를 구하러 다니거나 생산된 옷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살피고, 선생님 심부름도 해야 했다.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경력이 1년인 선임 디자이너가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저는 ○○씨라고 부를 테니, 선배님이라고 부르세요."

입사 첫날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여우 같았던 그녀는 몇 안 되는 타 부서 여직원들하고는 굉장히 잘 지냈다. 나는 그곳 사람들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원부자재 핑계를 대며 거의 광장 시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최저시급이라는 게 없던 때이다. 처음 수습기간 6개월간 월급은 50만 원이었고 6개월이 지나자 80만 원으로 올려 주었던 기억이 난다. 돈을 벌고자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월급을 받고 나면 좀 억울하기는 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광장시장 단골 단추 가게 사장님이 디자이너를 구하는 업체를 소개해 주셨다. 기회다 싶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규모가 큰 회사였다. 20~30대 여성이 주 타깃인데 동대문시장에서 꽤 잘 나가는 매장을 몇 개 운영하고 있었다. 그 회사로 옮기고도 2~3년은 동대문 시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동대문 시장과 광장시장을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돌면서 샘플용 원단이나 부자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녔다. 공장도 돌아다녔다.


2000년 초반 동대문 의류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회사는 점점 성장했고 직원들도 늘었고, 더 이상 디자이너가 부자재를 사러 다니거나 공장을 돌아다니지는 않게 되었다. 나도 원부자재 시장에 나갈 일보다는 백화점에 시장조사를 나갈 일이 많아졌다.


3개월에 한 번 정도 매장 사장님들이나 샾 마스터들을 불러놓고 품평회를 했다. 평소에도 퇴근시간이 없지만 품평회 전에는 새벽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느지막이 백화점에 다녀온 기획이사와 실장이 이런 것도 품평회에 걸어보라며 백화점에서 사 온 제품 하나를 던져주면 완전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옷을 보고 샘플 지시서에 도식화를 그리고 '급행'이라고 적는다. 패턴실 실장님께 "내일 아침까지 꼭 해주세요~" 온갖 아양을 떨며 음료수를 내밀어 본다. 그리고 급하게 비슷한 원부자재를 찾아본다. 재고가 없으면 내일 아침에는 원단시장으로 바로 출근이다. 품평회 시각은 다가오는데 샘플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으면 샘플실에 앉아 단추를 달거나 장식으로 들어갈 코르사주 등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늘 날카로운 날이 선 디자인실의 분위기, 누군가의 실수로 샘플에 차질이 생기기라도 하면 겨울왕국처럼 얼어붙어 버린다.


어찌어찌 품평회가 시작되었다. 샘플들을 보여주고, 현재 판매 중인 상품들의 반응을 들어본다. 매출이 좋은 매장 샵마스터의 말은 입김에 세다. 디자이너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가끔은 품평회에서 별로라고 했던 옷이 판매가 잘될 때가 있다. 모두가 별로라고 했던 디자인인데 2차, 3차 리오더까지 갈 때가 가장 뿌듯했다.


회사에서 원하는 디자인은 명품 브랜드 디자인의 카피, 현재 백화점에서 잘 팔리는 옷의 카피, 전 시즌 우리 브랜드에서 잘 나갔던 디자인과 비슷한 디자인 등이다. 패션 회사 소속의 디자이너는 창작을 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디자이너가 그린 옷이 패턴사와 봉재사의 손을 거쳐 실물로 나왔을 때 좀 다른 옷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수정을 거치면 되는데, 대량 생산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원부자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작업지시서에 표기가 잘못되는 경우, 공장에서 실수하는 경우도 생긴다. 원부자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원부자재를 제대로 체크 안 한 디자인실의 책임이고, 작업지시서가 잘못 표기되는 경우는 당연히 디자인실 책임이고, 공장에서 실수하는 경우도 제대로 전달 못한 디자인실 책임이었다.


디자인실 팀장이 되면서 이 모든 책임들을 져야 하는 것과, 실수를 하고 야단맞고 못 견디고 나가버리는 디자이너들을 관리하는 것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도 몇 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술 한잔 하면서 털어버릴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할 이야기도 많고 공감도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친구들이었다.


팀장급 이상은 1년에 몇 번씩 출장을 다녀왔다. 주로 가는 곳이 유럽(파리, 밀라노), 일본, 중국, 홍콩이었다. 내 여권에는 수많은 도장이 찍혔지만 내가 해외에 나가서 가본 곳이라고는 백화점, 쇼룸, 원단업체, 의류업체들 뿐이라 어디 가서 해외 어디 가봤다고 하기도 참, 그렇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디자이너로 일하던 2005년도까지는 디자인실 분위기가 열정을 강요했다. 퇴근시간이 없었고, 휴일에는 백화점 시장조사를 해오길 바랐다. 가정이 있는 실장님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렇게 항상 야근을 하고, 출장을 다니고, 휴일도 없는데 가정이 잘 유지되고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면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패션 디자이너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멋지게 차려 입고 앉아서 그림만 그리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환상을 가지고 시작하려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버티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패션 디자이너는 발로 뛰는 직업이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그림 그리는 연습보다는 체력을 기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라고 말해주고 싶다. 옷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서의 협업이 필요한데 이 부서들을 조율하여 최고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디자인실의 역할이다.




서른두 살에 결혼을 하고 서른셋에 첫아이를 낳기 직전에 디자인실을 그만두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지만, 일이 지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아쉬운 결말이었다. 열심히 씨를 뿌리고 키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한 기분이랄까. 지금 어딘가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는 분이 있다면 열매를 따먹게 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나처럼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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