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봄의 일이다. 체육시간에 줄넘기 중 2단 넘기 (일명 쌩쌩이) 시험을 본다고 했다. 친구들은 최소 한두 개씩은 다 할 수 있는데 나는 하나도 못하고 걸리고 말았다. 내가 친구들보다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럽고 오기가 생겼다.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연습하고, 집에서도 줄넘기를 붙잡고 늘어졌다. 한 개 두 개 성공하게 되자 쌩쌩이가 재미있어졌다.
5학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나는 우리 학교에서 두 번째로 쌩쌩이를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줄넘기 대회를 자주 했다. 나는 언제나 2등이었다. 1등 하는 아이는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자세로 끊임없이 줄을 넘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6학년 봄 어느 날, K방송국에서 일요일 오전에 방송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우리 학교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내가 챔피언'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운동 한 가지를 선정하여 시합을 하는 코너였다. 우리 학교는 쌩쌩이를 했고, 나는 우리 반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인생 최초의 티브이 출연이라 긴장했었고 승부 같은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열심히 줄을 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매일 1등 하던 그 아이와 나만 남았다. 어느 순간 소란스러워지고 나만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으로 그 아이를 이긴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챔피언이 되어 그 프로그램 진행자 개그맨 아저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내가 챔피언'이라고 찍힌 커다란 메달도 받았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부끄러워 방송 당일 텔레비전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 초등학교 시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 쌩쌩이 이후 운동을 거의 하지 않던 내가 딱 한번 운동에 빠졌던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남편이 동네에 크로스핏 체육관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 본인이 해보고 싶으나 시간이 안된다며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살이 잘 빠진다는 말에 혹하여 6개월을 등록했다. 한 달에 2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운동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나는 돈이 아까워서 정말 열심히 했다. 힘들어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열심히 하다 보니 재미가 생겼다. 매달리고, 올라가고, 점프하고, 뛰어다니고 별거 다 했는데 나는 턱걸이가 제일 힘들었다. 학교 다닐 때 체력장에서 매달리기를 하면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벌벌 떨며 악으로 버텼는데 하물며 턱걸이가 될 리가 없었다.
크로스핏에서는 턱걸이를 할 때 발에 거는 밴드가 있었다. 실력에 따라 탄성이 다른 밴드를 걸고 턱걸이를 한다. 처음에는 탄성이 강한 밴드를 사용하다가 점점 밴드를 교체한다. 여자회원들은 거의 밴드를 걸고 턱걸이를 했는데 직업이 헬스 트레이너인 회원 한 명이 밴드 없이 턱걸이를 했다. 그게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그게 부러웠다. 나도 하고 싶었다.
운동시간이 끝나고도 남아서 연습을 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잡혔다. 굳은살에 물집이 잡히고 물집이 벗겨져 철봉을 잡기 힘들어지자 보호대를 끼고 연습을 했다. 보호대를 끼면 불편해서 보호대를 빼고 아픈 걸 참아가며 연습하기도 했다. 결국에 밴드 없이 턱걸이를 다섯 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초등학교 5학년 때 쌩쌩이와 더불어 나의 집념을 불태웠던 최고의 기억이다.
크로스핏은 1년 정도 계속했다. 운동을 하면서 몸이 너무나 좋아진 건지 마흔이라는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내 꿈을 물어봐 주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준 막내딸이 내게 와 준 것이다.
꿈을 찾겠다고 다짐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앞 선 글에 적었던 패션 디자이너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들, 재취업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했던 시간들, 그리고 쌩쌩이와 턱걸이 한 번 해보겠다고 흘렸던 수많은 땀방울들! 그때 느꼈던 설렘들이 내 가슴속 세포 하나하나에 남아 다시 꿈을 찾아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꿈도 없이 한심하게 살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무언가를 위해 열정을 쏟던 그 모든 순간들이 꿈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 성공은 못했지만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