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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외식하다 깜짝 놀란 딸아이의 배려

by 윤아람

얼마 전에 주문한 딸아이(초5)의 옷을 택배로 받았을 때,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금방 커서 한 계절이 다 지나기도 전에 옷이 작아질까 염려되어 치수를 크게 주문했더니 옷이 커도 너무 커 보였다. 내가 입어보니 바지 기장이 바닥에 끌렸다. 지금 딸의 키는 나와 비슷한데 말이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옷을 입어보라고 재촉했다.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옷을 입는 딸아이.

"어라, 이게 맞는다고?"

내 예상과 달리 옷이 너무 잘 맞아서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어느새 나보다 살짝 큰 것 같다.


3년 전, 내가 글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글 쓰지 말고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던 딸아이. 이제는 내가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해도 "싫어" 뭐 좀 해달라고 해도 "싫어" 나중에 내 말에 따르더라도 일단은 싫다고 대답하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친구와의 약속이 중요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같이 외출할 일이 없던 우리가 꼭 필요한 일로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됐다.

"오늘은 너 좋아하는 초밥 먹자."

딸아이의 최애 외식메뉴 초밥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딸아이가 컵에 있던 물을 다 마시고 더 따르려고 물병을 들었다. 자신의 컵에 물을 따르고 나서 조금 멀리 떨어진 내 컵을 기울여 안에 물이 남았는지를 살피는 딸아이.

'어라?'

막내라서 다른 사람 챙기는 거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라 살짝 놀랐다.



초밥을 다 먹고 일어나 나는 계산을 하러 가고 딸아이는 문쪽으로 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밖에서 문을 연 채로 잡고 서 있다가 계산을 마친 내가 문 앞으로 다가가자 말했다.

"엄마, 밑에 계단 조심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문밖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많이 놀랐다.

'어라?'

내 딸에게 이렇게 세심한 면이 있었다니.


나의 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길에서 뒤쪽으로 차가 다가오면 딸아이가 나를 자꾸 안쪽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했던 행동을 딸아이가 내게 하고 있었다.

'어라?'

이제 딸아이 눈에는 자신보다 작은 내가 약자로 보이는 걸까.


집에서는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딸아이와 오랜만에 외출을 해보니 내가 몰랐던 모습들이 보였다. 딱히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 것 같아 놀라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소하게 감동받았던 일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큰애의 일인지 작은 애의 일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아이가 한 말이 정말 의외라 놀랐던 기억은 있는데 그 말이 정확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 안타깝기도 하다. 글로 써놨더라면 잊지 않았을 텐데.


막내딸이 커가는 모습만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는데 몇 달 전에 딸아이가 무서운 말을 했다.

"이제 내 얘기 쓰지 마!"

그래서 한동안 쓰지 못했다.


날마다 보는데도 아이는 나 몰래 쑥쑥 자라고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에라, 모르겠다. 딸아이 몰래 이 글을 쓴다. 기억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딸아이도 이해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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