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의 장점 중 하나는 저녁 술자리 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사 초기인 7,8년 전 연말에 한 뒤로 회사에 이런저런 일들과 코로나로 인해하지 않다가 작년 연말에 한 번, 그리고 지난주에 회식을 했다.
지난주 회식에는 본사 사무실 외에 현장에서 근무하는 팀장들까지 모두 열댓 명이 모였다. 그동안 현장 팀장들과는 메일이나 전화 통화를 하며 일을 했을 뿐 얼굴은 처음 보는 분들이 몇 명 있었다. 전화통화와 메일로만 대할 때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과는 달리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나니 그간 오해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 같아 좋았다.
1차는 장어구이 집이었다. 나는 사장님과 최대한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팀장들은 사장님께 술을 권할 것이고 사장님은 술잔 돌리는 걸 좋아하신다. 나는 장어를 부지런히 집어먹으며 술을 최대한 자제했다. 나름의 직장생활에서 얻은 회식 자리에서 취하지 않는 법은 1차에서 달리지 않는 거다.
2차는 작은 라이브바로 갔다. 맥주와 커다란 과일 접시들이 테이블에 놓였다. 사장님을 졸라서 양주도 시켰다. 나는 얼음잔에 양주를 마시다가 양주처럼 보이는 헛개차를 마셨다. 이제 모두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내가 술을 마시는지 물을 마시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조절하기 나름이다. 내 목표는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는 거다.
상무님이 노래를 고르라고 재촉했다. 몇몇 용감한 분들이 먼저 나가 노래를 한다. 나는 손뼉 치고 소리를 지르며 평소 보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을 열렬히 환호했다. 상무님이 나한테도 노래를 하라고 한다. 나는 아는 노래도 없고, 음치라고 하는데도 자꾸만 노래를 해야 한단다. 평소 상무님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나는 웃으며 물었다.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술을 안 마셔도 되는데, 왜 노래 못하는 사람한테는 노래를 강요하시는 겁니까?
-분위기 깨져서 안돼.
-앗, 그런가요?
여기서 더 따지다가는 진짜로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 나는 용기를 내서 노래를 하기로 했다. 다른 여직원과 듀엣으로 불렀다. 흥겹지 않은 노래를 박자도 못 맞추고 부르고 나니 더 이상 내게 노래를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어떤 남자 직원이 말했다.
-저 노래 잘하는데 저한테는 아무도 노래하라고 안 하대요?
그러고 보니 왜, 여직원들한테만 노래를 하라고 강요하는지... 요즘엔 그래도 예전처럼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노래 정도는 억지로 시켜도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건 진짜 싫다. 반면에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그 사람들이 여러 곡 부르면 되지, 왜 꼭 모두, 특히 여자들이 노래를 해야 회식자리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건가???
잠시 뒤 나와 업무연관성도 없어 완전 초면인 팀장이, 언제 봤다고 친한 척 다가와 술을 따라달라며 잔을 내밀었다. 한 잔 따라줬는데 두어 번 더 따라달란다. 손이 없나?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잠시 뒤 그 팀장은 술에 취해 부장의 멱살을 잡았고... 그렇게 회식자리는 끝이 났다. 너무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간 나는 혼자서 3차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