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만,

나 탐구 생활

by 클로드

꾸준함은 근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이다.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 부아C



내 꿈은 취미 부자 할머니다. 4년 전에 이렇게 글로 쓰면서 정했다. 두 손 가득 취미를 쥐고 심심할 틈 없이 즐겁게 지내는 할머니가 꿈이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묻는다.

"지금 취미가 무엇이세요?"

그런데 막상 대답할 거리가 없다. 책 읽고 글 쓰는 것... 이외에 떠오르는 취미가 없다. 이상하다, 내 꿈은 '취미' 부자 할머니인데... 나 왜 취미가 없지?


대학원 졸업 까지는 취미를 모르고 살았다. 나의 취미는 취업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저녁이 있는 안정적인 삶을 맞이한 나는 의식적으로 취미 쇼핑에 나섰다. 백화점, 마트, 지역 체육센터의 문화센터 강좌를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요일마다 학생이 학원 다니듯 나는 이 수업, 저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빵을 굽고, 플루트를 불며, 도자기를 구웠다. 춤도 췄다. 그동안 취미 없이 산 데에 대한 한풀이 하듯 신명 나게 다녔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저 중에 내게 남아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분명 재미있게 했는데, 지속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과거 한 때의 취미로 남아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바깥으로 취미 활동을 하러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불가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정말 불가능했다. 하지만 평생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는 자랐고, 그만큼 여유 시간이 생겨났으니까. 심지어 지금은 육아휴직을 하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저 취미들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취미 중 딱히 다시 하고 싶은 게 없다. 싫증이 난 것일까? 해서 뭐 하나 싶어서? 다시 할 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미술을 좋아한다. 감상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하는 걸 좋아한다고 믿었다.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했으니까.

코로나19로 긴 집콕 생활이 이어질 때, 당시 유행하던 컬러링 북과 48색 고운 색연필을 주문했다. 정갈한 마음으로 펼쳐놓고 그 얇은 색연필로 세세하고 세밀하게 색을 입혔다. 튤립 꽃 한 송이에 무려 7가지 색을 쓸 만큼 공을 들였다. 색칠하는 그 순간 힐링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채워지는 꽃들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통 그 한 장을 다 채우는 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세세한 작업에 매몰되어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2주 넘게 그림 한 장으로 씨름하는 나를 보다 못한 아이는

"엄마, 내가 완성해 줄게."

하더니 본인의 굵은 색연필로 벅벅 시원스레 색을 채워주었다. 순간 벙쪘다. 고심해서 고른 이 한 장을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색칠하고 있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앞에서도 '나는 그림을 좋아하니까'라는 마음으로 미련스레 붙잡고 있었는데, 아이가 단숨에 끝내주었다.

그동안의 정성을 생각하면, 나는 그때 화가 났어야 했을 것이다. 허무하고 당혹스러워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원했다. 아이와 그냥 깔깔 웃어버렸다. 엄마 혼자 못 끝내고 있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고까지 말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컬러링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난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할 거라고 믿었던 컬러링은 막상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그럼에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고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다고. 중단한다는 건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을 수 있고, 그러면 돌아서도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 끈기를 발휘해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그것이 취미를 찾는 일이라면 더더욱.


과거의 잔잔했던 취미 생활들을 뒤로하고, 지금 내게 남은 건 읽고 쓰는 것이다. 틈만 나면 책을 붙잡고, 마음이 힘들어도 책을 찾아든다. 책 속에 빠질 때가 가장 재미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는 게 무척 행복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맴도는 말들을 글로 써낸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4년 정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4년 동안 결코 놓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가고 싶은 일이다.


나의 꿈, 취미 부자 할머니는 앞으로 어떤 경로를 달리게 될지 미지수다. 그 길에 또 여러 취미들에 기웃거릴 수도 있고, 생각보다 큰 흥미를 갖지 못한 채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챙겨가고 싶다. 헤맨 것도 의미가 있다고. 스쳐 지나간 것 후에 남아있는 취미를 중요하게 보자고. 찔러보는 시도, 헤매는 여정이 있었기에 진짜 챙겨가고픈 알맹이도 만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이쯤 되니 꿈을 수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취미 부자 할머니 말고, 끝까지 나를 탐구하는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내고 즐기는 할머니로.

어쩐지 나 탐구 생활은 평생에 걸친 과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