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건들 속을 향유하는 거라며
미니멀은 최소한의 생필품만을 남기고 죄다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나와 맺은 관계를 살피고 그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집생각> / 김대균 지음
요즘 부쩍 자주 드는 혼잣말,
"나 맥시멀리스트였네."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니멀리스트의 모습을 동경했다. 간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 그 속에 남아있는 물건의 특별함. 빛이 없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한 물건들은 더욱 품위 있어 보였다. 비움 속 선택된 물건의 이유가, 쓰임이, 가치가 궁금해질 정도로.
아니, 그냥 미리멀리즘이 돋보이는 인테리어가 멋져 보였다. 감각과 센스가 잘 정돈된, 취향이 은근히 드러나는, 누가 봐도 시야가 탁 트이고 호감 가는 공간. 무에서 오는 깔끔함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회사에서도 깔끔하게 정돈된, 어쩌면 정돈할 물건조차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동료들의 책상이 더 인상 깊었고, 누구 자리인지 한번 더 보게 되었다. 무엇을 가져서 부러운 게 아니라, 비우고 살 수 있어서 드는 부러움이랄까!
이토록 미니멀리즘을 동경해 왔던 것 같다. 나는 어디 있는지 점검해보지 못한 채.
휴직을 하고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우리 집 내 책상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똑같은 책상을 두 개 사서 나란히 붙여놓았고, 그중 하나가 내 것이다. 처음에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책상이 휑하니 깔끔했다. 결혼하고 8년 가까이 내 책상 없이 살다가 가진 책상이니 무슨 짐이 있었을까? 그저 요새 읽고 있는 두세 권의 책, 몇 자루의 펜이 꽂힌 머그컵,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 다이어리가 전부였다.
그랬던 책상이 만 3년을 지나오며 제법 묵직해졌다.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 자연스레 병렬독서가 몸에 익었고, 한 번에 쥐고 있어야 할 책이 7권 가까이 되었다. 내 전용 노트북이 생겼고(남편에게 물려받음), 이것저것 종류별로 필기한 노트는 물론 문구류도 불어났다. 이들을 정리할 수납공간이 절실해진 것이다.
처음 책상을 살 때 아이 책상에만 상부장 책꽂이와 서랍 옵션을 선택하고, 나는 말 그대로 달랑 책상 하나만 샀다. 그때만 해도 가진 게 없었으니, 책상만 있어도 충분했고 감개무량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 책상 상부장을 바라보며, '내 책상에도 저게 딱 필요한데...'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결국 들였다, 그때 안 산 상부장 책꽂이를. 책꽂이가 배송되던 날, 나는 책상이 들어오던 그날처럼 기뻐서 맘으로 폴짝 뛰었던 것 같다.
이제 공간도 생겼겠다, 채움을 행할 때. 요즘 읽고 있는 책, 중단했지만 조만간 다시 볼 것 같은 책, 완독 한 지 얼마 안 되어 찾아볼 수도 있는 책들을 꽂았다. 어느새 다이어리도 몇 권, 쓰는 노트도 몇 권으로 늘어났다. 환경을 생각한다며 이면지도 쌓아두었다. 다이어리를 쓰다 보니 점점 색색의 펜이 늘어갔고, 머그컵에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게 되자 '어차피 매일 쓰는 펜인데 뭘'이라는 핑계로 책상 위에 굴러다니게 두었다. 쏘 내추럴!
책상 정면 벽에는 좋아하는 명화 엽서를 붙이고 (이 또한 한 개가 두 개 되고, 세 개 되더니, 급기야 더 늘어서 전시회 하듯 한 번씩 바꿔 붙이고 있다.), 책상 위 한편에는 직접 만든 도자기 트레이 위에 선물 받은 향초, 아이에게 선물 받은 오밀조밀한 귀요미들(주로 클레이 작품, 종이접기, 작은 피규어 등)을 올려두었다.
그렇다. 책상 위 물건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이전에는 가진 물건이 없어서 딱히 정리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난장판이 되어 책 펼 곳이 없어지는... 아이에게 "책상 정리해야지."하고 잔소리할 수 없어지는 그런 상황. 그런 내 자리를 마주할 때마다 문득 혼잣말을 한다.
"나 맥시멀리스트였네."
그랬나 보다. 나는 가만 두면 자연스레 맥시멀리즘으로 흐르는 맥시멀 성향을 갖고 있었나 보다. 나름 정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어딘가에 차곡차곡 둘 뿐, 다 쓰임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이왕이면 손 닿는 데에 있어야 잊지 않고 쓴다고. 필요할 때 없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다고. 그리고 세상에는 예쁜 게 참 많다고...
의자에 앉아 책상을 조망해 보았다. 서른 권 가까이 꽂힌 책을 숲 보듯 바라보았다. 한그루 한그루 나무를 보듯 한 권 한 권 차례로 응시하며, 안방의 큰 책장으로 옮겨둘 책이 무엇인지 골라보았다. 그렇게 몇 권의 공간을 만들어두면 또 그다음 책들이 금방 채워질 걸 알지만, 알기에, 어쩌면 원하기에.
그러다 보면 반대로 남길 책들을 다시 한 권 한 권 눈길로 밟아보게 된다. 왜 읽고 있는지, 왜 잠시 혹은 잠정 중단했는지, 왜 다 읽었는데도 눈 닿고 손 닿는 곳에 두려는지. 그 의미로 책 기둥을 짚어보게 된다.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바라보며 쓰임과 의미를 생각해 보고, 아니다 싶은 것은 물러나지만 남는 것들은 다시금 그 이유를 입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 물건이 갖는 나와의 관계인지도. 그러다 보면 정리는 치우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남기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는 의식에 더 가까워진다.
물건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쓰임과 애정으로 귀결되는 것. 내가 쓰면서 기분 좋은 물건이라면, 곁에 두는 게 유용하고 행복한 일 아닐까? 맥시멀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물건에 치이는 삶이 아니라 향유하는 삶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가끔 스스로를 맥시멀리스트라고 놀릴지라도, 냉정하게 내치기보다 애정으로 안고 살아가련다. 다만, 그걸 사용하는 나를 한번씩 점검하며!
"나는 이 물건을 기쁘게 잘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