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것은 슬픔일까 기쁨일까

나는 너와의 나란히가 즐거워

by 클로드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싫지만은 않은 작은 슬픔에 윌리엄은 잠깐 목이 메었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아장아장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제법 자란 등으로 가방을 메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애잔하게 말했다. 크는 게 슬프다고.

집에 와서 친구들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모습에도 슬퍼했다. 아이의 세상이 엄마, 아빠를 넘어서서 친구들로 넓혀가는 성장. 부모의 자리가 점점 물러나는 그 느낌을 서운해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향해 달려가고, 혼자 옷의 지퍼를 능숙하게 올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혼자 계단을 올라갈 때도 남편은 애잔해했다. 어린아이가 커가는걸, 그래서 지나보내야 하는 이 시간이 그러기에 다시 오지 않을 과거가 아쉽고 슬픈 그런 마음. 아이가 크는 게 아깝다는 부모의 마음.


그런 남편의 글썽글썽한 마음에 웃음으로 대비를 끼얹는 자가 있으니, 나란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나는 왜 다를까?


"나는 너무 즐거운데?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 더 재밌는데~?"


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잔뜩 신이 나서 말하는 나다. 아이의 성장이 반갑고 즐겁다. 아기 시절부터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도 재밌고, 유모차에서 내려 같이 발을 맞춰 걷게 되어 즐겁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아져서, 같은 맛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카페에 앉아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도 좋고, 글을 읽게 되어 메뉴판의 주스 종류를 읽어주지 않아도 아이가 고르는 모습이 좋다. 메뉴판 앞에 나란히 서서 각자의 메뉴를 고르던 첫 순간, 나는 어떤 희열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아이와의 나란히가 좋다.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을 받는 자의 서로 다른 행동과 생각의 단계를 넘어서서 동등한 시선과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것. 나에게 아이의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부모로서 해주는 기쁨도 있지만, 아이가 커가며 점점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게 나는 마음이 펄럭일 정도로 즐겁다.


한번씩 아이는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묻는다.

"엄마, 커피 맛있어? 나도 먹어보고 싶어."

"나중에 스무 살 되자마자 엄마가 커피 맨날 사줄게. 우리 딸이랑 커피 마시면 너무너무 재밌겠다."

커피뿐이겠는가! 술에 대한 대화도 이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나중에'를 이해시키기 위한 말이었지만, 말하다 보니 내가 설렜다. 어른이 된 아이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겹고 신이 나는 일.


10살, 초등학교의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아이. 아이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자라나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그 단계 단계마다 글썽이며 "너무 슬퍼~"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 "나는 아이가 크는 게 너무 재밌는데~?"로 웃으며 말한다.


둘 다 맞겠지. 둘 다 공존하겠지. 아이가 자란다는 건 한 편으로는 품에서 멀어지는 슬픔이오, 다른 한 편으로는 내 키와 비슷해지는 반가움이겠지. 그러다 보면 정말 나를 훌쩍 넘어서서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멀리서 보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어쩌면 함께 하는 시간보다 상상하며 그리는 시간이 더 많겠지. 그때도 즐거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 젊은 날을 떠올리며, 아이가 겪을 모든 경험과 감정을 즐겁게 흐뭇하게 흥미롭게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내가 키워내는 건 품 안의 아이를 넘어서서 하나의 삶이니까. 내가 살아보지 못할, 하지만 가장 깊게 연결될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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