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아낸 것은
이것은 카메라 안에 갇히는 자연이 아니다. 천국은 그렇게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기록할 순 없어도 기억할 순 있다. 매일 오면 되니까.
<무정형의 삶> / 김민철 지음
가을이 흠뻑 내려앉은 잔디에서 어느 가을을 먼저 눈에 담아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앞에 떨어진 모과 두 알이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그리로 갔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모과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노랗게 익어 떨어진 열매, 어디 썩은 데가 있지 않은지 조심하며 들어 올렸다. 보드랍고 깨끗했다. 나는 다시 살짝 긴장했다. 지난번 연두색 모과 열매는 향이 전혀 나지 않아 아이와 살짝 실망했던 일이 떠올랐다.
'부디, 향도 무르익었기를!'
내 코에 먼저 가져가 보았다. 단단한 열매는 부드러운 껍질을 뚫고 달콤한 풍미 가득한 향을 뿜어냈다. 역시! 오랜만에 맡아보는 모과 향이었다. 이제는 자신 있게 그것을 아이 코 앞으로 가지고 갔다. 노랗고 둥근 열매가 동그랗게 여문 아이 얼굴 앞에 멈췄을 때,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눈 감고 향을 들이마시는 법을.
동그란 작은 얼굴은 순식간에 활짝 미소를 펼치며 감탄사를 뿜어냈다. 노란 열매와 그 앞의 열매 같은 아이가 각각의 향과 기쁨을 쏟아내는 순간이었다. 안도했고, 기뻤다. 모과향을 전할 수 있어서, 그 향에 기뻐해서. 우리의 작은 수확이었다.
사실 이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아이의 감은 눈을 의식하지 못했다.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모과향을 아이가 맡고 기뻐하는 것! 그것이었다. 그 외의 것은 담아내지 못했다. 아이가 그 순간 눈을 감은건 다른 이가 기록했다.
카메라.
나는 그저 아이가 모과 향을 맡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다. 한 손에는 모과를,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 찰나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사진 속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향을 느끼려고 나머지를 닫아둔 모습. 감각의 소중함을 절로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진을 확인하고서야 뒤늦게 감탄을 한 것이다. 그 찰나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이었는지.
햇살이 아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은 시간, 머리를 마구 쓰다듬은 듯 머리카락은 얼굴 위로 아무렇게나 드리워져있었다. 그조차 햇살의 모습인 듯 예뻤다.
당시에는 놓친 이 모든 요소들을 나는 사진으로 알게 되었다. 그제야 감탄하고 기쁨에 번졌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지 모를 아름다움.
담고 싶은데 담아내지 못해 아쉬워하던 밤이 있었다. 나트랑을 떠나오던 밤, 좋아하던 산책길을 열심히 사진 찍어보았지만 플루메리아 꽃 향기는 담을 수 없어 순식간에 서글퍼졌던 기억이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는 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몸 가득히 꽃 향기를 담아보려고, 그렇게 기억해 두려고 애쓰던 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반대의 일. 사진을 보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기쁨을 경험했다. 나의 목적에 충실하던 그 순간 아이는, 모과는, 가을 햇살은 나 모르게 더 큰 환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새로운 기억으로 저장되고 있다. 모과를 코 앞에 내밀자 아이는 눈을 감고 향을 음미했다고. 그 순간 가을 햇살이 다정히 내려앉고 있었다고.
사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당시 놓친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모든 감각을 담아낼 순 없어도, 내가 경험한 그 이상의 감정을 피워낼 수 있구나. 찍히는 그 순간보다 더 큰 시간을,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담아낼 수 있는 거구나.
더 잘 읽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기계 안에만 가두기에는 아까운 장면들이 삶에 얼마나 많을지! 나는 또 매번 찰나를 놓치겠지만, 사진으로 붙잡은 순간을 더 우려내고 현상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과 향을 맡을 때면 눈을 감던 아이의 마음을 모과 향보다 더 선명히 기억하며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