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가 있다는 것
나는 그런 한계를 좋아했다. 아껴 마땅한 시간을 아끼게 해 주어서. 하루하루 이 테라스에서 보낼 시간이 줄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김신지 지음
하루를 이렇게 알뜰 살뜰히 돌보며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육아휴직을 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과거의 휴직처럼 아이와 딱 붙어있는 그런 휴직이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보내고, 어떤 날은 오후에 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맞이하여 저녁을 보내는 엄마의 일상. 이 굵직한 점들 사이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인 휴직. 진짜 '휴'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럼에도 새벽기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 소중한 하루를 새벽부터 끌어당겨 쓰고 싶어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난 뒤 책상에 앉는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오늘의 계획을 적는다. 운동, 독서, SNS, 글쓰기, 카페 가기 등등. 어떤 날은 평일 낮의 여유로운 전시회 관람을 하고, 또 어떤 날은 글쓰기 모임 사람들을 만나 함께 쓰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자기 전 다시 다이어리 앞에 앉는다. 한 일들을 체크하고, 하지 못한 일들의 이유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짧은 회고, 한 줄 감사일기, 끝으로 5년 일기를 쓴다. 회고의 단계도 이토록 다채로워졌다.
하루의 계획을 세워보며 살지 못했다. 회사에서 매일의 업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익숙했지만. 일상을 회고해 보는 일 역시 낯선 일이다. 그 흔한 감사일기 역시 그렇다. 5년 일기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는 생각만 해도 손사래 치던 일이다. 업무 계획만 세우던 내가 지금은 이토록 살뜰히 나의 하루를 계획하고 되돌아본다.
귀하게 얻은 이 시간을 잘 쓰고 싶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매일 도착하는 하루가 무척 실감 나서.
그렇다. 주어지는 오늘을 소중히 쓰는 그 시작은 바로 '한계성'이다. 말 그대로 휴직이니까. 다시 돌아갈 거니까. 이 시간은 이벤트 같은 일시적인 시간이니까. 감사하게도 이번 이벤트는 무려 6개월! 제법 넉넉한 한계성이다.
마치 6개월 치의 스케치북을 받은 느낌이다. 초등학교 1학년, 딱 그 품에 들어오는 작다란 8절 스케치북이 아닌 고학년의 넓은 4절 스케치북! 내 품보다 펼쳐놓고 마음껏 그려낼 수 있는 커다란 스케치북이 제법 도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얼 그릴 지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그려도 된다고, 어깨 반경을 더 넓게 써도 괜찮다고, 오늘에 모든 걸 걸지 않아도 된다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여러 장 있으니.
그래서일까? 매일 가득한 계획을 세우며 출발하지만 다 해내지 못해도 웃어넘기게 되었다. 오히려 끝끝내 손이 가지 않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 필요한 일인지, 원하는 일인지.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에 욕심부리던 일들을 놓아주며 가벼워지는 경험 역시 해보고 있다. 그러고 나면 진짜 중요한 알맹이가 남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들에 관대해지고 있다. 어떤 실용을 위함이 아니니 무용하다고 볼 수 있는 일들에 시간을 내는 것. 나는 이런 일들 앞에 시간의 계산기를 두드려보곤 했다. 서울까지 달려가 전시회를 보는 것도,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한낮에 브런치 카페에서 읽고 쓰며 나와 데이트하는 것도,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쯤 챙겨보는 것도.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었더라면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서 해내기 어려울 일들이다. 어쩌다 하루 휴가를 내야 가능한 일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회사와 가족에게 내 시간을 나눠줘야 하니까.
반대로 쭉 일을 하지 않는 일상이라면, 이 일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지금과 같지 않을 것 같다. 계속 주어지는 날들이니까, 언제든 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하나 해내는 것에 커다란 의미부여도 애틋함도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 같다.
고로 지금이어서 할 수 있고, 지금이어서 소중한 일들! 그 가치를 바라보고 기꺼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 역시 제법 널찍한 한계성 덕분이다.
어제는 점심때 카페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거실을 보았다. 바깥은 눈이 내려 시려운데, 우리 집 거실에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소파까지 덥히고 있었다. 바로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어울리는 책을 집어 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시간의 제한 없이 흐르는 냇물처럼 계속 문장을 내리읽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물살이 자꾸 멈췄다가 다시 흘렀다. 졸고 있었던 것. 그래도 이 책 속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졸음과 아웅다웅 사투를 벌이며 계속 읽었다. 하지만 햇살의 따스함, 소파의 푹신함, 책의 평온함. 이 모든 것은 너무도 적절했고,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까무룩 짧은 잠에 빠졌다.
'아, 깜빡 잠이 들었구나.'
그런데 이 뒤의 감정이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 같았다. 눈을 떴을 때의 환함, 커튼을 열었을 때의 쏟아짐. 기쁨이었다. 원하는 일을 망설임 없이 바로 한 것도, 그러다 잠이 들 수 있는 것도, 깨어났는데 후회가 아닌 웃음이 나온 것도(낮잠을 절대 자지 않는다,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다. 앉은 채로 자다 깬 나는 웃음이 먼저 났다. 웃겼다. 웃을 수 있어서 기뻤다.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매일 도착하는 소중한 오늘을 실감하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열심히만 살며 빡빡하게 굴지는 않는 일. 좋아하는 일들에 기꺼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 하루를 되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 일.
이 모든 것은 6개월의 휴직이라는 제법 커다란 스케치북이 주어진 덕분이라고 말해본다. 언젠가 끝이 날 시간이어서 소중하다고. 하지만 그 끝이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니니, 오늘의 기쁨을 누리는데 시간을 써도 된다고. 그 또한 소중하다고. 이것이 행복이라고 말이다.
시간은 유한하기에 소중하다는 걸, 그러기에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배우며 만끽하는 시간, 휴직자의 삶.
딱 두 가지만 바라본다. 이 감사한 시간을 잘 보내보자고, 이 시간이 끝나도 삶의 감사함을 알며 살아가자고.
휴직만 한계성을 가진 게 아니니까. 삶도 그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