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없는 시간, 흙과 함께
"수요일, 회사가 끝나면 도예공방에 간다."
<모든 요일의 기록> / 김민철 지음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입사 1년 차, 퇴근 후 이런저런 취미 생활에 기웃거리던 시기였다. 그러다 SNS에서 학교 선배가 미국 유학 중에 도자기를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내게도 어떤 전율이 왔던 것 같다.
'그래! 도자기를 배울 수도 있구나!'
그 길로 바로 자취방 근처 도자기 공방을 검색해 보았다. 운이 좋게도 동네에 배울 곳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를 마친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나의 도예 생활이 시작되었다.
퇴근 후 금요일, 불금이라 불리던 그 금요일을 누군가는 화려한 조명 속으로 혹 누군가는 시끌벅적한 목소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을지도. 20대 후반의 나는 사회 초년생의 복장으로 빌라 단지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카페도, 클럽도 아닌 그곳에 나만 아는 은밀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연다.
턱수염을 기르시는 나의 선생님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셨으며 철학이 뚜렷하셨다. 말수가 적으신 탓에 딱 필요한 가르침만 주실뿐, 더 이상의 수다는 없었다. 나머지는 흙과 나의 시간이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각자 멀찍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자기만의 시간을 빚고 있었다.
흙이라는 건 생각보다 단단했다. 일어서서 상체에 힘을 실어 반죽을 치대듯 해야 만질만해졌다. 흙과 손이 서로의 수분을 빼앗듯 점점 건조해질라치면 물 먹은 스펀지로 적정 수분을 공급해주어야 했다. 밀대로 밀어 고르게 펼 때면 지금 빵을 만드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향은 분명 짙은 흙의 향이다.
내가 주로 했던 작업은 석고 틀 위에 흙 반죽을 감싸서 그 모양을 본뜬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다. 동그란 밥공기도 만들어보고, 넓은 접시도 만들어보았다. 무늬를 새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공들여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을 흙만 만졌다. 말도 없었고, 텍스트도 없었다. 달성해야 할 과업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었다. 회사도, 가족도, 남자친구도 없었다. 그 시간은 오롯이 흙과 나만 존재했다. 그 시간을 나는 퍽 사랑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신입사원으로 긴장하며 한 주의 일들을 끝낸 시간. 신입사원이어서 더 밝은 목소리로 텐션을 올려야 했던 시간. 선배와의 대화에 생기는 공백을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시간. 정해진 일을 해내고, 남들의 속도에 맞추고, 응당 해야 할 것 같은 리액션을 해내던 시간.
그 한 주를 끝낸 금요일 밤에 나는 고독하면서도 외롭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말없이 즐거울 그 시간이. 흙이 그 상대가 되어주었다.
무념무상으로 빚어내고 심혈을 기울여 마무리 작업을 마친 기물은 이제 건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주에 만나면 처음 내가 빚은 모습보다 한결 단단하게 건조되어 있다. 그리고 1차 소성, 초벌구이에 들어간다. 이후 만난 기물은 이전의 짙은 흙빛 대신 한결 밝고 바삭바삭해진 자태로 변해있다. 그러고 나면 선생님과 함께 유약을 고른다.
흙과 유약은 신기하게도 만나는 조합마다 다른 빛깔로 구워진다. 유약에 들어간 금속 산화물에 따라서 옥빛을 띄기도, 짙푸른 바다색, 붉은 갈색, 차분한 연보라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화학반응을 좀 더 깊게 공부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도예라는 것은 미술과 화학의 하모니인지도.
이렇게 구워지고 만들어진 그릇들은 몇 년 뒤 나의 신혼 그릇이 되었다. 밥그릇, 국그릇, 면기, 반찬그릇, 귤 가득 담는 대접, 쌈장그릇, 수저받침까지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 화병도 있었지. 내가 만든 그릇만으로 신혼 식탁에 충분할 만큼 많이도 만들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환상 못지않은 비애도 있었으니... 설거지를 할 때면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효니 그릇 무거워~"
그랬다. 내가 만든 그릇은 기성품에 비해 훨씬 두껍고 투박해서 무게가 상당했다. 물레를 제대로 익혔다면 훨씬 얇은 그릇을 쭉쭉 뽑아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물레 작업을 배우다 실패했다.
물레 작업. 아직 풀지 못한 나의 도자기 숙제처럼 남아있는 이름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엄청 빠져서 본 세대는 아니지만, 도자기를 만든다고 하면 무릇 물레질하는 손길을 떠올리곤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흙덩이에 손을 살짝 대기만 해도 금세 아름다운 곡선의 기물을 만들어내는 그 모습!
나도 열심히 배워보았다. 물론 선생님도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힘이 없었고, 요령이 없었다. 그 느낌을 끝내 체득하지 못했다. 억지로 힘을 주어 오른 팔목은 물이 찬 듯 부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물레와 작별했고, 서서히 공방과도 작별했다.
도자기는 누구와 공유할 수 없는 나만 아는 기쁨이자 한켠의 아쉬움이다. 그래도 충분히 좋았다. 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스트레스가 없는 그 시공간에서 한껏 몰입한 그 자체로 충분했다. 나만 알던 뜨거운 불금. 실제로 도자기는 1000도씨 가까운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지니, 이래보나 저래보나 불금이 맞다.
올 겨울, 내가 사랑하는 그 대접에 귤을 한가득 담아놓고 도란도란 먹어야겠다. 내가 만든 도자기를 자랑할 그 계절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