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있는 시간도 내 것이라니

내게 없던 시간

by 클로드

휴직을 하니 세상이 밝아졌다. 마음의 빛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눈앞의 세상이 환해졌다. 일상에 햇빛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땐 새벽의 푸르름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운전을 해서 회사에 다다를 때쯤 차 뒤편으로 눈부신 해가 떠올랐다. 그 후 시간은 하얀 LED 조명 아래 실험을 하거나 사무실 업무를 봤다. 퇴근길 풍경은 계절에 따라 달랐지만,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너머 이미 자취를 감춘 해의 흔적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는 게 전부였다. 출퇴근길에 해 대신 달이나 별을 보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이게 당연하고 익숙해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휴직을 해보니 그간의 결핍이 실감 났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내 것이었던 적 없었던 그 시간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아이보다 먼저 집을 나서는 대신 아이와 아침밥을 먹는 아침이 시작되었다. 함께 손을 잡고 아이들로 북적이는 등굣길을 경쾌하게 걸었다. 학교 담장 너머 봄을 알리는 산수유 꽃도 살펴보고, 4월에는 벚꽃 잎 아래를 기쁘게 걸었다.


아이 등교 후 오전 시간은 되도록 집 밖을 나가서 지냈다. 휴직과 동시에 가장 먼저 실행한 일은 요가원 등록이었다. 이전에는 마음먹고 운동을 다니려면 저녁 8시 수업만 겨우 갈 수 있었는데, 휴직을 하니 오전 수업도 선택지 안으로 들어왔다. 사부작사부작 걸어 요가원으로 가는 길, 등교와 출근 인파가 지나간 조용한 동네 길이 새삼 낯설었다. 평일 낮에 동네를 홀로 걸어보다니!


고심해서 고른 요가원은 통창 너머 나무가 가득한 곳이었다. 오전의 싱그러운 햇살이 마루 바닥에 드리우는 곳. 햇살의 온기를 느끼고, 창밖 나무에 계절이 찾아옴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요가 수련을 했다. 매트에 앉아 초록으로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낮에 운동을 하는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네!'

운동할 시간이 생겼고, 그게 한 낮이라는 게 혼자 괜히 감격스러웠다.


동네 도서관도 자주 다녔다. 주말에 아이와 어린이 열람실을 가곤 했지만, 평일에 혼자 일반 열람실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앉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한번씩 고개 들어 바깥을 보았다. 언덕 아래 길고양이도 보이고, 저 너머 아이 학교도 다정스레 보였다. 급할 것 하나 없이 푹 앉아서 책을 읽는 여유가 무척 좋았다.


동네를 산책 삼아 걷기도 했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으며 글을 쓰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햇살 아래 하나 둘 꺼내어 펼치고 누렸다. 퇴근 후 짬짬이 주어지는 시간이 아닌 넉넉히 통으로 쓰는 시간 속에서 조급함 없이 나를 채워갔다. 오전에는 어딜 가고, 오후에는 무얼 할까 떠올리며 하루를 넉넉하게 바라봤다.




낮시간을 이토록 귀히 여기며 쓸 수 있었던 건 그동안의 결핍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있는 줄도 몰랐던 한낮의 시간, 막연히 갖고 싶던 내 시간. 없던 시간이 생겨나고, 그 시간이 단 몇 개월이라는 한도 안에 주어지니 하루가 그렇게 귀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매일 주어지는 선물 같은 날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실감하며 살진 못했다. 휴직 덕분에 드디어 이 선물을 알아차렸다.


복직을 하면 이 시간은 다시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햇살 아래 나풀나풀 움직이던 나는 다시 네모 반듯한 내 자리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다. 그 행복을 다시 쥐고 싶어 빈 손만 바라보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징징거리며 회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다시 일상에 몰입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휴직을 시작하기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복귀할 것이다. 휴직하며 보낸 낮 시간은 이미 삶 곳곳에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켰으니까. 주체적인 하루의 소중함을 알았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발견했으니까. 태양 가득 받은 에너지로 또 잘 살아가야지. 그러기 위해 복직까지 남은 한 달, 매일의 햇살을 기쁘게 쬐야지.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