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10년 차에 알게 된 요리의 기쁨

내가 요리를 하다니!

by 클로드
내가 지금 뭘 만든 거야?

요즘 주방에서 부쩍 나오는 혼잣말이다. 뭘 만들었냐니...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무 맛있어서 스스로 놀라 튀어나온 감탄의 말이다. 모양새는 사진에 담기 부끄러운 수준인데 맛은 참 그럴싸하단 말이지.




초등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주방에서 베테랑이 돼있을 줄 알았다. 메인요리 하나에 반찬 두세 가지 정도는 뚝딱 만들어내는 실력을 장착하게 되는 줄 알았다. 도마 위 칼질도 타닥타닥 일정한 리듬으로 가지런히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환상 속의 모습은 내게 와주지 않았다. 엄마 10년 차인데 여전히 주방일에 서툰 새댁이다. 어설프게 대강대강 해내는 모습이 자취생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감자를 정말 좋아하지만 감자 깎는 게 세상 어렵다. 감자 깎이 칼에 손을 벨까 봐 고무장갑을 끼고 서는 요리조리 돌리며 한참을 조각한다. 두부 하나 썬다고 도마 쓰는 게 귀찮아서 포장 용기에 담긴 째 빵 칼로 숭덩숭덩 자른다. 내 손으로 썰어낸 모든 것들은 크기도 두께도 그냥 재미나다. 애초에 정확히 하려는 진지함이 없다. '매일 실험실에서 1 ul(= 1/1000 ml)까지 정확히 재는데, 주방에서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게 핑계라면 핑계다.




사실 이런 서툰 주방일도 휴직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이 키우며 회사에 다닐 때 우리 집 식탁은 철저히 외주를 맡겼다. 동네에서 제일 맛있고 깔끔한 반찬가게를 찾아내서 단골이 되었다. 가장 오래 산 동네에서는 사장님의 배려로 아예 커다란 스테인리스 용기를 맡겨놓고 거기에다 반찬을 배달받아서 먹었다. 퇴근 후 요리를 할 시간도 없거니와 주방일과 장보기를 위한 에너지를 아끼고자 했다. 마트에서 장 보는 것보다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게 더 경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휴직을 하니 나도 요리라는 게 해보고 싶어졌다. 마침 이사 온 집의 새 주방과 새 냉장고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요리할 맛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반찬 가게를 끊고 대신 마켓 컬리 배송 서비스를 들였다. 가끔 된장찌개거리나 양념 고기만 사던 내가 각종 채소에 육류, 손질된 해산물까지 주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냉동 주꾸미와 통마늘을 커다란 팬에 넣고 물과 함께 익히다가 나만의 특제 양념장(그때그때 느낌껏 믹스해서 만든다. 그래서 다시는 같은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게 함정이다.)과 양배추를 넣고 볶아보기도 했다. 아이가 어찌나 잘 먹던지 양념에 밥까지 삭삭 비벼서 두 그릇을 먹었다. 얼마전에는 봄동이 제철이라며 겉절이, 샐러드, 된장국까지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다.


SNS에서 본 요리, 레시피를 찾아본 요리를 대강 들어가는 재료와 end product만 떠올리며 과정은 내 맘대로 펼쳐낸다. 당연히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많다. 'SNS 속 사진과 달리 내 요리는 왜 이리 못생겼지?' 싶은 날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못 먹을 요리가 나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역시 다진 마늘, 참기름, 들기름, 매실액,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우리나라 전통 조미료들을 잘 조합하면 익숙하고 맛있는 맛이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리를 하니 말이다, 식구들의 반응이 기쁘면서도 슬프다. 감사하게도 남편과 아이는 관대한 입맛을 가졌고, 나에 대한 관대함도 그러하다. 내가 뭘 내놓든 맛있다며 칭찬한다. 두께가 다른 채소는 식감이 다양해서 좋다 하고, 찌개가 짠 날은 이래야 밥이랑 먹기 맛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어깨가 으쓱할 만큼 뿌듯하면서도 한편 슬프다. 그동안 집밥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게 슬프고, 이 시간 역시 나의 휴직이라는 이벤트 안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슬프다.


내가 이렇게 변했다. 유년시절에는 손으로 귤 까먹는 것도 귀찮아하던 내가, 라면도 내가 끓인 라면이 세상 맛없던 내가 이제는 식구들 입에 내가 만든 음식이 들어가는 게 이렇게 기쁘고 소중하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내 동생이 보면 놀라 뒤집어질 일이다. '언니가 이제 철들었구나!' 하고 놀릴 일이다.




이제 복직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더 열심히 주방에서 사부작 우당탕 해보려 한다. "엄마가 만든 게 제일 맛있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식탁을 하루라도 더 누리기 위해. 모든 재료와 조미료가 내 통제 안에서 건강하게 돌아가는 밥상을 가족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그리고 복직 후 요리 할 시간은 줄겠지만, 좀 더 능숙해진 내가 되어서 집밥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알게 된 요리의 기쁨. 이 일을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머릿속으로 저녁거리를 구상한다. 오늘은 돼지 뒷다리살과 시어머님표 칼칼한 김치가 조화롭게 보글거리는 김치찌개로 정했다. 노동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을 즐겁게 계획하는 걸 보면 변해도 단단히 변했다, 내가.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