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실컷 책을 읽고 싶던 날들

독서는 사치일까

by 클로드
어디 숨어서 실컷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회사에 다닐 때 한번씩 들던 혼잣말이다. 일과 육아가 양쪽에서 옥죄며 들어올 때 차마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저 어두운 구석에서 홀로 책을 읽고 싶었다. 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도망 아닌 도망. 현실로부터의 잠시 로그 오프.




생각해 보면 삶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책을 찾았다. 그 시작은 신생아 육아 시절이었다. 나만 이렇게 육아가 어려운가 답답하고 절망스럽던 시절, 육아서를 읽으며 지혜와 공감을 얻었다. 책으로 위로받은 시작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책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다시 책을 찾은 건 또 다른 위기, 공황 장애가 찾아왔을 때였다. 나를 일으키려고 손을 뻗은 곳에 책이 있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시간이 흐르며 공황과는 굿바이 했지만 책은 습관으로 남았다. 심지어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 속 시끄럽던 내 세상이 잠잠해져서 좋았다. 불규칙하게 요동치던 파도가 잔잔한 물결로 남아 그제야 햇살을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몰랐던 여러 삶을 들여다보는 게 좋았고,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감정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뭉클했고, 시원했다. 읽고 난 뒤의 나는 어딘가 정화되어 더 잘 살아내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토록 나는 책에 기대고, 책을 향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출근 전 새벽에 책을 읽고, 퇴근 후 저녁에 아이가 숙제하는 동안 옆에서 책을 읽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틈이 나면 읽었고, 주말에 아이와 남편이 노는 동안 읽었다.


하지만 틈틈이로는 부족했다. 읽고 싶은 책들은 계속 생겨났고, 읽고 싶은 갈증도 때때로 밀려왔다. 없던 욕심이었다. 현실과 상관없이 커져가는 욕심이었다. 필사적으로 독서 시간을 확보하려는 나에게 내 안의 어느 목소리가 물어왔다.

'어떻게 이 이상을 바라니? 그건 사치야.'


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사치인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여러 역할로 24시간이 꽉 짜인 30대가 그랬다. 하필 그때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버렸고, 동시에 독서는 사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육아 휴직 중 버킷리스트가 실컷 책 읽기였다. 하루를 책 읽는 시간에 펑펑 써버리는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자기 계발, 실용서와 같이 명확한 '도움'을 주는 책도 좋지만, 나는 더 한 사치를 원했다. 소설을 읽고, 시를 읽고,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고, 두꺼운 고전을 착착 읽어내는 사치.


그 사치를 이번 휴직 기간에 이뤄내고 있다. 제한 없이, 절제 없이 읽고 있다. 회사를 안 가니 따사로운 오후 햇살 아래서도 읽을 수 있다. 한 달 동안 한 권을 끌어안고 조금씩 들이키는 게 아닌, 단기간에 깊고 짙게 읽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도 제일 앞부분이 아득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있다.


어디에 숨을 필요 없이 한낮에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게 무척 행복했다. 실컷 읽는 게 이렇게 좋은 걸 보면, 괜한 갈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휴직의 날들만큼 많은 책들이 완독 리스트에 쌓이고 있다.




"그렇게 읽고 무엇이 남았는데?"

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동공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행복했고, 평온했고, 깊어졌다. 다양한 세상에 눈을 떴고, 다양한 인물들에 감정을 대입했다. 그렇게 변화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나의 대답이다. 어떤 면은 말랑해지고, 어떤 면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곧 복직하면 이렇게 못 읽어서 어떡해?"

물론 그리울 것이다. 실컷 자유롭게 읽던 이 시간을 또다시 고파하며 살 것이다. 책 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날들이 문득문득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그 여행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책에 흠뻑 빠져있던 이 시간은 어떤 모양으로든 내게 남아있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추억이 쌓이고, 책이 쌓이고. 그렇게 채워진 내가 또다시 뚜벅뚜벅 살아갈 일이다.


그렇게 지금 저물어가는 휴직 앞에 균형을 잡아본다. 책과 함께 계속 걸어갈 날을 향해.

화, 목 연재